중앙SUNDAY 오피니언
[선데이 칼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진짜 문제는 정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4.02.24 00:12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미국과 달리 중국 경제 하향길
전체주의와 투자자 불신이 원인
한국 막장 정치가 경제 발목 잡아
국제금융 허브 경쟁력도 키워야
올해 초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계의 최대 화두는 글로벌 양극화 추세다. 예상보다 견고한 나 홀로 호황인 미국과 경기침체가 고착화된 중국은 성장과 물가 등 거시경제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나고 있으며 실물경제를 반영하는 주식시장에서도 그 격차가 뚜렷하다.
최근 1년간 주가 성적표도 미국 나스닥은 34%, 일본 닛케이는 40% 급등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중국 상하이지수는 -10%, 홍콩 항셍지수는 -20% 이상 떨어져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50조 달러가 넘는 반면 중국은 9조 달러로 떨어져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세계 주요 증시 동향을 보면 미국·일본·인도 등 자유시장경제 국가들이 약진한 데 비해 중국은 추락했다. 원인은 전체주의 통치 체제와 정책에 대한 투자자 불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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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올해 20차례 각종 증시 부양책을 줄이어 내놓았으나 약발이 안 먹히는 상황이다. 국부펀드 중심의 기관자금 동원, 공매도 제한에서부터 증권감독위원회 수장 교체에다 이번 주 주택담보대출금리 역대급 인하까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근본 원인이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다. 단기 부양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동산 시장 붕괴, 과도한 국가부채, 그리고 인구구조 악화 등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에다 원천적으로는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 상실로 빚어낸 사태이기에 그렇다. 정치 시스템, 즉 국가 지배구조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국내 주식시장도 같은 기간 중국과 비슷한 마이너스 수익률 기록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슈가 재부각됐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국내 주식의 낮은 ‘순자산 대비 주가 비율(PBR)’ 등 주요 지표로 볼 때 글로벌 평균에 대비해 크게 저평가된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정부가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배당 증액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확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정부의 ‘증시 밸류업’ 대책은 바람직하나 단기적 부양책은 자칫 거품이나 ‘빚투’ 유발 같은 부작용도 수반한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 더군다나 모든 정책이 그렇듯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 인공지능(AI) 혁명을 포함해 산업 대전환 시대를 맞아 기업은 미래 경쟁력을 위해 투자자금을 비축할 필요가 있고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는 잠재적 부실자산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자본확충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 증시 부진은 구조적 저성장과 기업실적 부진,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인 만큼 잠재 성장력 회복과 지정학적 리스크 축소를 위한 정부와 기업들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최근 중국 시장 침몰은 정치 체제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자본시장 흐름의 관건이라는 메시지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국내외 투자자에게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주고 있을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헌법정신인 나라에서 아직도 종북·반미 세력이 활개 치는가 하면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이합집산 등은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은 이런 정치 풍토에서 자라기 어렵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보다 정치 거버넌스 개혁이 더 시급한 과제다.
10년 전 출간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대런 에쓰모글루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가 요즘 재조명 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분기점으로 하향길이 완연해진 중국 경제를 보며 지속 성장의 핵심 요인은 ‘개방적 민주주의’라는 결론이 환기됐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식시장은 왜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의 답도 추론할 수 있다. 자본시장 발전과 주가 상승은 민간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전체주의 정치 체제에서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뜻이고, 투자수익을 올리려면 자유주의 국가 정체성과 시장경제 철학에 투철한 정부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국내 주가의 지속적 회복은 한국 금융산업과 자본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제금융 중심지로 성장하는 것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에 크게 일조할 수 있다. 국내 증시의 PBR(1.1) 수준은 세계 최대 금융센터인 미국 PBR(4.6)의 1/4, 선진국 평균의 1/3 정도로 턱없이 낮다. 국제자본의 탈중국 및 탈홍콩 와중에 싱가포르는 물론 도쿄까지 국제금융 허브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판에 서울은 국제금융 중심지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가 더 이상 금융 선진화의 발목 잡아서는 안 되며, 대한민국 수도의 금융 경쟁력을 높여야 부산을 위시한 지방의 금융 발전도 가능하다. 지역 갈등이라는 뺄셈이 아니라 덧셈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 지정학적 변화와 금융경제 패러다임의 변곡점에 선 오늘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근원적 해답을 요구한다. 한국 정치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와 해외투자자의 신뢰 확보는 지속적 경제성장과 역동적 금융시장 발전의 최대 관건이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린 다가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시기에 더욱 그렇다. 아울러 국제금융 중심지라는 비전을 앞당겨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국내 자본시장의 업그레이드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촉매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