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고기가 조선사람들의 인육
1918년 일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독일령이었던 남태평양 마셜제도를 점령했다. 2차 대전 중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미군의 반격에 대비해 마셜제도에 대규모 부대를 파견했다. 이때 마셜제도에만 조선인 3만6000여 명이
강제 동원됐다. 마셜제도 동남쪽 끝에 있는 밀리 환초에도 800여 명의 조선인 군속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170여 명이
체르본 섬에서 무차별 총살당했다. 반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에서다.
당시 생존자들은 일본군이조선인의 인육을 먹었다는 충격적 증언도 하고 있다. 60여 년 전 마셜제도 밀리 환초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밀리 환초로 끌려갔다 천우신조로 살아 돌아온 이인신(83) 씨가 1995년 집필한 수기를 토대로 당시
일제의 만행과 조선인 집단 학살 상황을 재구성했다.
식량보급 끊겨 풀잎으로 연명
1942년 초 일제는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선 청년들을 닥치는 대로 전쟁터로 끌고 갔다. 이 씨 역시
1942년 3월 23일 부산항에서 배를 탔다. 듣도 보도 못한 남태평양 마셜제도 밀리 환초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3일 뒤인 4월 6일. 뱃멀미로 초주검이 돼 있었지만 이 씨를 포함해 수백 명의 조선인 군속은 열대의 폭염
속에 바로 노동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주로 활주로를 만드는 일을 했다. 마셜제도는 미국을 폭격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일본인 감독관들은 작업이 더디면 여지없이 몽둥이찜질을 가했다.1943년 2월경 식량을 가득 실은
일본 화물선이 밀리 환초에 정박하려는 순간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받아 삽시간에 침몰했다. 이때부터
본국에서도의 식량 공급은 끊겼다.밀리 환초에 있던 일본군 지휘부는 더는 부대 운영이 힘들자
부대원을 40여 개의 인근 섬으로 분산 배치해 식량을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체르본 섬의 비극
체르본 섬으로 간 일본인, 조선인 수백 명은 콩잎과 같은 풀잎으로 죽을 쒀 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1945년 초 체르본 섬에선 조선인 군속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조선인들은 몇 명씩 조를 짜 여러 차례 이 조선인을 찾으러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체르본
섬 인근 무인도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조선인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실종된 조선인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허벅지살이 포를 뜬 것처럼 잘려나가 있었던 것.
이들이 더욱 경악한 것은 며칠 전 일본인들이 선심을 쓰듯 건넨 고래 고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모처럼 먹는 고기 맛에 포만감을느꼈지만 그 고기가 고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아무런 장비도 없는 일본인들이 고래를 잡아다
조선인에게 줄 리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조선인 군속이 또다시 실종됐고 그 군속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밀려드는 공포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섬을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섬 주변엔 미군 함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만 없애면미군 군함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
1945년 3월 18일 밤 드디어 조선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일본인 7명을 죽이고 탈출을 시도하려는 순간,
기관총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한 조선인이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루코노르 섬으로 가 이런 사실을 밀고했고 중무장한 일본군
토벌대 50여 명이 체르본 섬으로 들이닥쳤다. 손을 들고 항복한 조선인에게도 가차 없이 총알 세례가 이어졌다.
쓰러진 조선인에겐 총검이 날아들었다.
항거를 주동한 조선인 5, 6명은 무고한 조선인들을 죽게 한 책임감에 서로 껴안고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자폭했다.
당시 체르본 섬 학살 때 살아남은 박종원(2000년대 초 작고) 씨에 따르면 부상자 2명을 포함해 15명 정도만이 살아남다고 한다.60년간 악몽에 시달려
체르본 섬 학살 사건이 벌어지고 20여 일이 지난 뒤 인근 섬에서 시체를 정리하기 위해 체르본 섬으로 간
김재옥(82) 씨는 배가 섬에다다르자 시체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녔다며 온 섬이 엄지손톱만 한 파리 떼로
가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이 씨는
1995년 밀리 환초를 다시 찾아갔는데 학살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며 하지만 당시의 참혹한 기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아 수기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군 만행 피해자들
광복 독립군과 독립투사, 양민들이 잔학한 일본군에 붙잡혀 온 집결장이다.
일본인에 체포 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손을 뒤로 묶인채 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다.
1928년 이때부터 일본군은 악랄하고 잔혹한 살육의 강도를 높인다
독립투사 또는 양민을 학살 하기 위하여 일본도를 손질하는 일본군인들.
독립군, 독립투사를 처형장소로 옮기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일본군놈의 장칼에 목이 떨어지는 독립군
일본군들에 끌려 가는 독립군 의병장
독립군 간부의 처형 장면이다. 목을 치기전 뒷편 일본군이
웃는 모습을 볼 때 분노보다 일본의 양심을 묻지 않을 수 없게된다.
체포된 독립군은 결국 처형을 당했다.
칼로 목을 칠 때 넘어 가지 않도록 팔을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일본군들이 처형하기전 목에 수건을 감아놓은 것은
칼이 목을 치기전 잘린 몸통에서
품어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수건을 얹어 놓은 것이다.
일본도로 목을 자르려고 고개를 세우고 있다.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 처형하는 순간.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상태.
독립군의 목은 이미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 순간.
처형후 두병사가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양민들, 일본인 감시아래 손이 뒤로 묶여져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잔악 무도한 일본군들이 대량 학살 하고난 뒤 처참한 광경. 고랑에
즐비한 시체들 중에 뒤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애국지사의
가족들이 시신을 찾기 위해 살펴 보고 있다.
잔혹한 살육 장면(1942)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목은 잘려져 있고 얼굴 모습은 등뒤로 돌려져있다.
강간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한 장면.엉덩이에 총상
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성의 음부를 일본군이 가려
촬영하였다.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는 사진이다.
한국 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강간후 살해했다.이런 여성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은 항상
여러명의 한국여성을 데리고 다녔다.
수장된 시신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수장시켰다. 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에게는 긴막대기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곳으로 몰아 넣어 집단으로 무차별 학살한 후 불 태웠다.
여성의 옷을 벗기고 마구 살육했던 참혹한 현장.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
일본군이 1943년 후퇴하면서 최후 발악을 자행한 흔적들이다.
산더미 같은 시체.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성 잃은 일본군. 일본군은 여성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가 있다.
길거리에서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하고 맞아서 내장이 나온 상태.
갓난 아기의 죽음.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아이들의 시체.
일본군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했었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부녀자 집단사살. 엄마와 함께 도피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흐르는 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 사살 현장. 오른쪽 일본군이 죽은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작두로 처형 직전. 작두로 목이 곧 잘려나갈 것이다.
작두로 목을 자르고 있다.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작두로 수없이 잘려져간 양민들의 모습.일본군이 장난 삼아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부분을 가리키게 해놨다.
저런 끔직한 일은 일본군에겐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일본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명이 사망 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명을 피살하였다. (몽둥이,죽창으로 학살)
창고에서 독살. 엄청난 시체가 당시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일본군들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하기로 한것인가?
어린아이들 까지 죽여 불태워졌다.
온갖 수단으로 자행한 행위는 사진을 피할 수가 없다.
독립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유해들.
잔혹한 행위로 소리없이 죽은 영혼은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차마 볼수 없는 사진이다.
일본 토벌군인 들은 사정없이 민간인 까지 처형 했다.
떨어진 목을 손에 쥐고 미소까지 보이는 것은 사람 목숨을
장난삼아 학살하는 것을 증명 할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군들은 포로가 된 민간인 과 독립군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서
담장 밑에 상품처럼 진열하여 두고 있다.
독립군 용사들은 죽어서도 한결같이 한을 품고 눈을 감고 있다
일본군 의사 간부가 세균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없이 손을 묶고 해부하고 있다, 복부에 창자와 내용물이 나오고
일본인들은 입 마스크하여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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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역사적인 사진을 보면 반일 감정이 사라지겠어요 ... 반성도 안하는 일본놈들 우리도 일본을 360년동안 지배하여 똑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러면 안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