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삼국지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진학 후에도 삼국지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 중 제갈공명이 저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방대한 지식, 모든 변수를 고려한 전략실행, 침착함, 놀라운 상황대처 능력, 이 모든 것이 어린 저에게 존경심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밤 그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친구들과 놀면서도 항상 "군사"의 위치에서 모임을 이끌었고, 해결책을 제시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런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져 대학시절에는 교내 고등학교 동문회 회장, 축구동호회와 영어스터디등의 각종 동호회 활동에서 임원단의 자리에서 모임을 이끌었고, 지금도 최고의 "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꿈은 아버지 입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육군 하사로 복무 하셨고, 사우디에서 땀을 흘려 돈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귀국후 중장비 사업체를 운영하셨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업을 실패로 돌아갔고, '무'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기술 없이 양장점, 회사원, 싱크점등 안해본 일이 없으셨고, 아무리 아파도 가족을 위해서 살아가시는 아버지는 제게 성실함과 책임감이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4시간을 주무시면서 일을 하시는 아버지, 그래도 항상 웃으시며 '무슨일이든 항상 웃으며 니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존경해야 할 분들이 많으십니다. 하지만 '무'에서 '가족의 행복'을 창조하신 아버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습니다. 누군가 "니꿈은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제 꿈은 저의 아버지처럼 되는 것입니다."
■ 학창생활
강병장에게 맡겨라.
군생활은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라고 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군 생활중 공병대의 행정보직을 맡아 복무하였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데 자신이 있던 저는 누구보다 자신에 차있었습니다. 검열때가 되면 각 중대 중대장들이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병장에게 맡겨라." 상병때 부터 제가 속한 중대에 행정 인원이 배치 되지 않아 제가 3명분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대내의 거의 모든 행정일을 알고 있었고, 업무처리능력과 OA능력을 인정받아 무슨일이 생긴다면 타 중대 중대장들도 저를 찾았습니다.
바보? 천재?
학과 친구들은 저를 '바보야'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웃고 다녔습니다. '항상 웃음 잃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였고, '언제나 행복하게'라는 생활신조 때문이였습니다. 그런 친구들도 도서관에서 만큼은 부르는게 달랐습니다. '강박사' 그게 저의 또다른 별명이였습니다. 책과 씨름을 하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해결 했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꼭 해내고 말았고, 친구들은 모르는게 있으면 제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전기공부의 결과물인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여름방학내내 열심히 공부를 했고 2005년 11월에 취득을 하였습니다.
전기 물성 연구실과의 인연
전공 공부중에 전기물성과 전자기학이 재밌었습니다. 고등학교때 화학II를 배운 저는 전기물성 공학은 또 다른 세계였고 또 다른 도전이였습니다. 그 뒤에 전기물성을 가르치던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전기물성연구실과 인연이 시작됬습니다. 학부생이라 연구를 한 것은 없지만 석사 선배들의 실험을 도와주면서 MAXWELL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면서 점점 전기물성에 빠져들었습니다.
영어의 벽을 넘다.
모두들 TOEIC에 매달리던때, 저는 '그건 영어가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건방진 생각이였지만 저는 지금도 그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 외국인 관광 안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무'의 상태에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라 손짓,발짓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영어는 국제적 인재가 되기 위해 꼭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이겨냈습니다.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서 어느정도의 수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력을 밑바탕으로 유학박람회에서 통역 아르바이트 일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호주 어학연수과정에서 저의 실력을 검증 받았고, 개설 과정중 최고 레벨인 GIE3 level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 했습니다.
■ 지원동기 및 입사후 포부
세계의 디자인과 디지털을 이끌어가는 힘
지금 세계는 디자인과 디지털시대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세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가전과 자동차, 조선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를 자랑하고, 성능과 디자인의 모든 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유니온 스틸이 있습니다. 튼튼함과 견고함을 가진 동시에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최고의 표면처리 기술로 최고의 재료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 물성에 관심이 있던 저에게는 그 어떤 기업보다 매력적인 기업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더욱 멋진 디자인을 원할 것이고 더욱 튼튼한 제품을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유니온스틸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 최고의 표면처리 전문가가 되기 위해 지원을 하였습니다.
이시대가 원하는 인재 강덕준.
저는 꾸준한 과외 활동으로 단체생활을 이해하고, 임원단 활동등으로 리더쉽 또한 인정 받았습니다. 또한 많은 선배님들과 어른들과의 대화와 교류로 예의를 배운, 대한민국의 예의 바른 젊은이 입니다.
꾸준한 영어 공부와 어학연수과정 그리고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세계화 감각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군 복무기간 동안 증명된 업무처리 능력과 OA능력은 업무수행 시에 능률향상과 정확한 업무 처리로 이어질 것입니다.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 및 전기물성 연구실의 경험으로 귀사가 원하는 전기공학도로서의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하나를 둘로 만드는 창의력, 도전하는 젊은 열정을 가진 패기 있는 젊은 인재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노력하겠습니다.
1. 저는 입사후에도 자기 개발을 꾸준히 할 것입니다. 부산 공장의 가까운 곳에 저의 모교인 부경대학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신소재 공학과 또는 전기공학과의 대학원에 추가 수학함으로서 한층 더 발전된 표면처리 기술 개발에 적극 노력 하겠습니다.
2. 국내 민간 철강업체 중에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유니온 스틸인 답게 중국어 연마에 힘쓰고 영어능력 개발에 힘을 쏟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정받은 기술력을 발판 삼아 세계 시장 개척에 힘이 쓰겠습니다.
3. 제갈량의 미래를 예지하는 눈으로 타 기업과 차별화된 영역을 개척, 개발하는데 힘쓰겠습니다.
4. 식스 시그마의 적극 실천과 연구노력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위한 품질 개선과 불량율 개선에 더욱 힘을 쏟겠습니다.
5. 자신의 일에 책임질 줄 알고, 성실함을 몸으로 실천하겠습니다.
6. 지금과 같은 가족같은 분위기와 행복한 분위기의 유니온스틸의 기업문화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7. 웹진-칭찬합시다 코너에 제 이름이 오를 수 있도록 사우들에게 항상 웃음을 주는 친절한 사원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영원한 유니온스틸맨이 되겠습니다.
첫댓글 우선 좀 길구여..간추릴 필요가 있구요...군 경력은 경쟁력이 되지 못합니다. 저도 군경력이 화려하고 PR할 부분이 많은데...얼마전 대기업 면접시 인사담당자님께서. 어디가서든.군경력은 빼라고 하시더군요.
감사드려요~ 이번에 유니온스틸은 6000byte라서 좀 길어요..군경력을 빼라는 말씀 꼭 기억하겠습니다. 감사 (__) 꾸벅
대학원에 간다는 얘기는 빼라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 들은 경험이 있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