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태닉 탑승을 놓친 유명 인사들
타이태닉 탑승을 놓친 유명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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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 타이태닉호가 첫 항해 중 침몰한 이후로,
타이태닉호는 끝없는 음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배는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책뿐만 아니라 역대
가장 성공적인 할리우드 영화 중 하나에 영감을 주었다.
당시 1,500명 이상의 승객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고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출발 전에 타이타닉은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한 배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것의 지위와 명성 때문에, 승객 명단의 대부분은
그 시대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배에 탑승했어야 할 사람들 중 일부가 마지막에 탑승을 포기했다.
이 행운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사진을 통해
타이태닉에 탑승할 뻔했던 유명 인사들을 확인해 보자!
밀턴 허쉬 (1857-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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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의 설립자와 그의 아내 캐서린은 종종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겨울을 보냈다.
1911년 12월, 이 부부는 또 다른 유럽 휴가를 위해 떠났고,
그들의 귀국 여행을 위해 그는 타이태닉호의 자리를
예약하기 위해 화이트 스타 라인에 US$300 수표를 보냈다.
밀턴 허쉬 (1857-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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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짧게 보내야 했던 허쉬는 타이태닉호가
출항하기 불과 며칠 전에 유럽을 떠났다. 대신에,
그는 나중에 타이태닉호에 위험한 양의 얼음에 대해
경고한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독일 정기선에 탑승했다.
존 피어폰 모건 (1837-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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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과 금융 산업에서의 그의 업적 외에도, J. P. 모건은
그의 국제 상업 선박 회사에 속한 화이트 스타 해운의
소유주였다. 화이트 스타는 타이태닉을 만든 회사이다.
존 피어폰 모건 (1837-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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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을 만드는 데 있어서 그의 중요한 역할 때문에,
모건은 배에 개인 스위트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유럽 휴가를 연장했고 침몰을 피할 수 있었다.
윌리엄 피리 (1847-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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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면, 타이태닉호의 가장 큰 후원자들 중 두 명이
이 끔찍한 항해에서 모두 빠져 있었다는 것이
약간 의심스러워 보인다.
윌리엄 피리는 자작이자 남작이었으며
모건의 국제 상업 선박 회사의 일원이었다.
윌리엄 피리 (1847-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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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때문에 타이태닉에 탑승할 수 없었던 그는 타이태닉의
자매 선박인 올림픽과 브리타닉의 설계자 중 한 명이었다.
타이태닉호 참사가 일어나기 몇 달 전, 그는 올림픽급 선박에 있는
구명보트의 수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피리는 위대한 배들은
가라앉지 않으며, 뗏목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은 그를 영원히 괴롭힐 것이다.
굴리엘모 마르코니 (1874-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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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리엘모 마르코니는 실용적인 전파 기반 무선 전신 시스템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발명가이자 전기 공학자였으며,
이로 인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타이태닉호의 침몰 후,
무선 라디오의 조난 전화는 주변 지역의 배들이
구명보트를 찾을 곳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굴리엘모 마르코니 (1874-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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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니는 타이태닉호의 무료 티켓을 제안받았지만,
대신 그는 3일 전에 루시타니아호를 탔다.
그는 해야 할 서류 작업이 있었고
다른 배에 타고 있는 속기사를 선호했다.
헨리 클레이 프릭 (184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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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사업가이자 예술의 후원자인 헨리 클레이 프릭과
그의 아내 애들레이드는 타이태닉을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예약했다.
헨리 클레이 프릭 (184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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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이 부부는 애들레이드가
이탈리아에서 발목을 삐어서
타이태닉 승선을 놓치게 된 후
그들의 여행을 취소했다.
J. 호레이스 하딩 (1863-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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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가 J. 호레이스 하딩은 헨리 클레이 프릭,
J. P. 모건과 유럽 휴가의 일부를 함께 했다.
J. 호레이스 하딩 (1863-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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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프릭이 타이태닉을 타고 항해하는 것을 취소했을 때,
그들은 모건에게 그들의 티켓을 주었고, 모건은 그 후 하딩에게
그의 티켓을 주었다. 하지만 하딩도 결국 여행을 거절했다.
앨프리드 그윈 밴더빌트 (1877-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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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밴더빌트 가문의 일원으로서, 앨프리드 그윈 밴더빌트는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마가렛 에머슨과 결혼한 지 불과 몇 달 후에
타이태닉에 탑승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티켓을 취소했다.
앨프리드 그윈 밴더빌트 (1877-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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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1915년 그는 독일 유보트에 의해 침몰된
영국의 해양 정기선 루시타니아호에 탑승했다.
그는 이 사고로 사망한 1,200명의 승객들 중 한 명이었다.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 2세 (1862-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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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는 타이태닉의 탑승을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면한 유일한 밴더빌트 가족 구성원이 아니었다.
그의 조카인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 2세도
타이태닉에 탑승하기로 되어 있었다.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 2세 (1862-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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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손에 쥐었지만, 조지와 그의 아내 에디스는
전화를 통해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계획을 바꿨다.
대신, 그들은 타이태닉의 자매선인 올림픽호를 타고 항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14년 맹장 수술 후 합병증으로 곧 사망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1871-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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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고용주가 당신의 교통비나 숙박비에
돈을 덜 쓰기로 결정할 때, 그것은 나쁜 일이다.
하지만 소설가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경우는 아니었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1871-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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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는 표를 사지 않았지만, 그 거대한 배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홍보 담당자는 타이태닉호가 침몰하기
이틀 전에 그에게 더 저렴한 배인 크론랜드호를 타도록 설득했다.
존 모트 (1865-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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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청년 기독교
협회(YMCA)의 오랜 지도자였던 존 모트는
타이태닉에 탑승할 뻔한 또 다른 사람이었다.
존 모트 (1865-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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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트는 타이태닉호의 무료 티켓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는 SS 라플란드라는 더 보잘것없는 정기선을 탔다.
로버트 베이컨 (1860-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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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베이컨은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밑에서
국무차관과 국무장관을 모두 지낸 정치인, 외교관, 은행가였다.
로버트 베이컨 (1860-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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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부터 1912년까지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로 근무한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타이태닉을 타고 귀국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계획이 지연되어 그들은 파리에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제임스 캐시 페니 (1875-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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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타이태닉의 첫 항해 후에 여행을
계획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있었다.
제임스 캐시 페니 (1875-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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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타이태닉의 두 번째 항해를 계획한
JC페니의 설립자 제임스 캐시 페니가 그런 경우였다.
프랭크 세이벌링 (1859-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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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어 타이어 & 고무 회사의 공동 설립자와
그의 아내는 영국으로 자주 여행을 갔다.
프랭크 세이벌링 (1859-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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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사우샘프턴에서 뉴욕으로 가던
타이태닉이 가라앉으면서 연기되었다. 그들은
타이태닉의 두 번째 항해에 타기로 되어 있었다.
존 앨든 딕스 (186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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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앨든 딕스는 1911년부터 1913년까지 뉴욕의
38대 주지사를 지낸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다.
존 앨든 딕스 (186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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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벌링과 마찬가지로 딕스도 타이택닉의
두 번째 항해 승객 명단에 올랐었다.
헨리 브룩스 애덤스 (1838-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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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브룩스 애덤스는 역사가이자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의 후손이었다. 그 또한 타이태닉을 타고
유럽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예약했다.
헨리 브룩스 애덤스 (1838-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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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탈 배, 타이태닉호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애덤스는
1912년 4월 12일 편지에 썼다. "그리고 이 배가 나를
다른 곳에 내려주지 않는 한, 나는 2주 안에 셰르부르에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명백한 이유로, 애덤스는 결코 배에 탈 수 없었다.
출처:
(Grunge) (Insider)
(Smithsonian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