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요양보호사 시험장’ 현수막이 걸린 성남중학교 정문은 수능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학원들의 깃발이 난무했고 우리도 원장과 직원이 나와서 빵과 생수를 주며 격려해 주었다.
필기는 한 문제, 실기는 4문제에 확신이 없었다.
작년부터, 처제 둘이서 ‘언니와 형부가 같이 자격증을 따면 좋겠어요. 양로원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요!’
“정신 나갔어! 이 나이에 공부라니 말이 되나!”
그녀들은 자격증 덕에 시부모들을 간병하면서 용돈까지 벌었나보다.
지난주에는 미국에 사는 처제까지 합세해서, 형편이 나아지면 형부용돈도 줄 계획이라며 수강료까지 보내왔다.
아내는 종합병동이라 어쩔 수 없고, 가부장적이었던 지난날을 자격증으로 보상해볼까?
그때는 정당했지만, 지금잣대로선 잘못된 행동이었다.
부랴부랴 3곳을 수소문하고, 편의를 제공 하겠다는 학원에 개강 다음날 등록했다.
3권의 교재는 평이했고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오전만 강의를 들었다.
수강생은 주야간반을 합해 80명, 남성은 6명이었다. 여성 중엔 80세도 있었다.
40, 50대가 80%로 취업파고, 60대 이상은 배우자를 보살피는 게 목적이란다.
수업 중에 기출문제를 세 번, 모의고사를 한번 보았다.
내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아서 원장이며 필기문제 강사가 “000씨는 질문도 예리하고 점수도 월등해서 합격은 완전 빵이고 전국에서 수석 할 것 같습니다.”
등록일 부터 시험당일까지 80여 일, 합격이라는 목표로 하루에 1~2시간은 할 것이 있다는 게 마음까지 편해서 행복한 나날이었다.
1일이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10시가 조금 넘으니 국시원에서 문자가 왔다.
필기 35, 실기 44. 한 문제만 틀린 것이다. 학원에서도 만점자가 나오겠구나!
오후, 원장과의 통화에서 “000씨 축하드립니다. 학원도 영광입니다. 제가 예견했던 대로 점수를 얻으셨네요.”
다음날, 구청시니어클럽에서 3시간 근무조건으로 남성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령자를 채용할리도 없고 채용되기를 원하지도 않지만, 시장의 평가는 받고 싶었다.
50대 여성이 나이를 묻더니, 그게 끝이었다,
사흘 뒤 건강검진서와 합격증수령 수수료를 내러 학원실장을 만났다.
‘대다수가 합격했으나 만점자가 없어서 선생님이 일등입니다. 개원이래. 한 문제 틀린 분도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원장 부인이 “어, 오셨군요. 축하합니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을 맞듯이 반색을 하며 강의실로 이끈다.
강의에 앞서, 오리엔테이션시간이라며 20명가량이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분이 이번에 한 문제 틀린 분입니다.”소개를 하고는 시간은 많으니 한 말씀하시란다.
강사들에게 감사함부터 전하고 요약 집을 펴들고서 고득점 요령을 설명했다.
‘저 나이에 한 문제 틀렸다면 만점 받은 거네.’
‘혹시 전국 수석 아닐까?’
‘강사해도 잘 할 것 같아요.’
축하드립니다와 요란한 박수가 이어졌다.
퇴사한지 21년째.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이런 찬사와 환영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늘을 날고 구름 위를 걷는 일주일이었다.
즐거움도 잠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이런 사건이 없을 것 같아 서글픔이 스며든다.
(碧草. 2021. 06.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