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족과 함께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갯골 자연휴양림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는 막 지어진 듯 말끔하고, 나무 냄새가 은근하게 퍼졌다. 침대는 폭신하고 바닥은 뜨끈뜨끈,
창밖으로는 파란 산줄기와 이름 모를 새소리가 이어졌다. 이쯤 되면 굳이 집에 돌아갈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런 평온한 분위기도 그날 저녁, 샤워 후 욕실 문을 연 순간 와장창 무너졌다.
나는 물기를 훔치며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고, 그 타이밍에 아이들이 욕실로 뛰어들었다. 한 명은
양치질을 하겠다며, 다른 한 명은 그냥 심심해서 따라온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둘이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그것도 단순한 “악!” 수준이 아니라, 거의 화재경보기급이었다.
“아아아악!!! 거미야!!! 거미야아아아악!! 살려줘 엄마아아!!!”
내가 할아버지다. 왜 엄마를 찾니. 나는 수건을 대충 목에 걸고 문 뒤를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오우…”
하고 탄식이 나왔다. 그곳엔 왕거미 한 마리가, 마치 영화 ‘스파이더맨’의 엑스트라라도 된 양 점잖게 벽에 붙어 있었다.
몸집이 얼마나 큰지, 애초에 이 녀석은 ‘벌레’라기보다 ‘거의 포유류’에 가까웠다. 다리 길이는 아이 손바닥을 넘었고,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나도 몰라’라는 당황함이 서려 있었다.
아이들은 화장실 문 밖으로 후다닥 도망치더니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죽여!!! 아니, 그냥 없애줘!!!”
“아니지 아니지, 죽이면 불쌍해!! 근데 너무 무서워!! 그냥 투명하게 만들어줘!!!”
나는 심호흡을 세 번 하고, 주방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냈다. “자, 아가. 잘 좀 나와봐.”
신기하게도 거미는 웬일인지 순순히 봉지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아마도 사람보다 더 당황했던 건 거미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열고 봉지를 밖으로 들고 나가, 살며시 내려놓았다. 거미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기어 나왔다.
그런데 하필 거기가 도로였다. 아스팔트 위에서 녀석은 갈팡질팡, 마치 “여기가 어딘데!”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이러다 누가 차 몰고 오면 바퀴에 깔리는 거 아냐…?’
결국 나는 다시 봉지를 들고 조심스럽게 거미를 다시 담았다. “됐다. 이번엔 확실히 자연으로 가자.”
숙소 뒷편 수풀까지 걸어가서, 거미를 풀밭에 조용히 놓아주었다. 거미는 이내 풀숲으로 사라졌다. 빠르진 않았지만 뚜벅뚜벅,
마치 이삿짐 끌고 새 동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숙소로 돌아오자 아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할아버지, 또 들어오면 어떡해요?”
“그럼 너희가 다시 봉지 찾아오면 된다.”
“안 돼… 벌써 트라우마 생겼어요…”
그날 밤, 아이들은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잤고, 나는 샤워하면서 문 뒤를 유심히 살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거미는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걸까? 방충망은 완벽했고, 창문은 종이 한장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방 자체가 요새처럼 철벽인데…
아마 정말 운명처럼 문이 열리던 찰나, “No way go out!” 하며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배를 탈때 보면 대양을 횡단하는 새들이
가끔 배의 기관실 환풍구로 날아들었다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선원들에게 잡히기도 하고, 기진맥진하여 떨어져 죽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도, 새도, 거미도, 때로는 앞만 보고 가다가 그럴 수 있다. 엉뚱한 문으로 들어갔다가, 의도치 않은 공간에 갇히는 일.
다음엔 아이들보다 내가 더 먼저 고함칠 수도 있겠지만, 그땐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관대해질 수 있기를!
물론, 왕거미는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