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3장7-8절)
1, 악에서 떠나려면 우선 악이 무엇인지 규명되야 한다.
인간적인 악은 행위적인 것이다. 세상에서는 악인 중에서
덜 악인들이 선량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성경의 악인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자연인 그대로인 사람이 바로 악인이다.
그래서 시편은 하늘에 속한 의인들의 노래인데 그 첫 장에
악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도 주야로 묵상하지도
않는 지극히 자연적인 사람이다. 죄인으로 태어난 그대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시편적인 악인이다.
그래서 좀 누추한 예이지만 악(惡)은 한자대로라면 여러
마음이 바로 악인 거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이다.
2, 미국의 한 기독교 작가가 어릴 때 근본주의 교회에서
자란 나머지 그 교회의 독성을 빼는데 오래 걸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건 아마 법정신에 의한 율법주의로 인해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의 영향이었을 거다. 그들의 회개는
유대인들처럼 돌아본다 달아본다는 의미로 잘못을 바로잡는
회개일 거다. 유대인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이사야53장의 메시아의 예언을 금서로 정하고 있으므로 아직
그들은 회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합하는 세례를 받지 못하므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악인들의 자리에 버티고 있다. 악인인 줄 모르는 악인들이다.
만일 지금 당장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여부없는 불 못이다.
3, 만약 교회에 입교하자 마자 회개하라고 다그친다면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고치려고 할 거다. 반면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사심은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에서
속량하여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죄인인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리로 믿고
따라가는 회개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모르는 회개는 그야말로 맨땅에 해딩하는 거다.
교회의 독성이 아닐 수 없다. 아담 안에서 하나님과 단절이 된
악인으로 태어나서 선악의 기준의 양심을 따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악에서 십자가가 아니면 그 자리를 벗어날 탈출구는 없다.
4, 나를 위해 친히 그 몸으로 6시간동안 십자가에 달려서
지옥의 형벌을 대신 당하시고 다시 사셔서 보좌에 앉으시고
그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 나를 거듭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내게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긴다면
주를 경외하여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악인을 떠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으로 발견되기를 사모하는 건 당연하다.
자신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또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하는 가사를 늘 싱싱하게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목사의 길을 포기한 이가 있다. 참 솔직하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주께 돌아가면
그 피뿌림과 십자가의 화목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있는 영생으로 말미암아 싱싱한 가슴과 깨끗해지는
머리가 되지 않으면 진리의 공부를 머리띠를 질끈 매고 계속해야
할 것이다. 언제든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께로
돌아가면 우리의 악을 제하고 그 피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하시므로(요일1:9) 주의 생명이 링거처럼 온 몸에 퍼지고
뇌를 통해 상쾌함이 골수를 가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구원하심을 맛보는 것이다(계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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