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선발이 없는 경기에서 송창식이 5이닝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주었습니다. 손끝에 피가 돌지 않아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 찾아왔을 때, 그래서 본인의 의지와 달리 마운드를 떠나게 되었을 때, 매일 밤 대전구장 마운드에 다시 서는 것을 상상하며 고등학생 야구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때 그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마운드 복귀를 꿈꿨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게 송창식은 머리로 응원하는 선수가 아니라 가슴으로 응원해야 하는 선수입니다. 삼진을 잡고 돌아서며 포효하던 그 모습에는 마운드를 떠나 있던 7년 세월의 아픔과 간절함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후반, 그리고 90년대 초반 이글스의 '불꽃투혼' 키워드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도 결국 마운드로 다시 돌아온 한용덕 2군감독입니다. 2000년대 이글스의 '불꽃투혼' 키워드는 철심밖은 팔꿈치가 아파 공 한번 던지면 밤새 잠을 못 이룰 만큼 통증에 시달리는데도 한국시리즈 마운드에서 뜨거운 공을 던졌던 지연규 코치, 그리고 발목이 산산조각 났는데도 이듬해 그라운드로 돌아온 최영필과 송지만입니다. 혈관염을 앓고도 7년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리고 무리한 등판으로 구위를 한번 잃고도 결국 제구와 힘을 다시 찾아낸 송창식이 이제 그 계보를 이어갑니다. 이제 겨우 31세, 앞으로 수년간 구위를 유지할 수 있는 나이이니 오랫동안 팀에 공헌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소금 같은 존재가 아니라 빛나는 주인공으로 말입니다.
현대 야구에서는 불펜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특히 투수진의 무게 중심이 비교적 뒤에 있는 현재 이글스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불펜 에이스 박정진과 권혁이 모두 좌완이므로 오른손 스윙맨의 역할은 특히 중요합니다. 지금 송창식이 그 자리를 맡아주고 있는데,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불펜이 아무리 중요해도 선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시합은 9이닝이고 경기 상황과 흐름을 고려해도 각 이닝의 중요도는 1:1과 비슷합니다 중반 이후에 2이닝을 잘 막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에서 5이닝을 잘 막는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죠. 송창식은 차라리 선발로 고정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버텨줄만한 구위와 제구가 있고, 버텨본 경험도 있으며, 그만한 배려나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도 가지고 있는 선수니까 말입니다.
요 며칠 사이 제가 계속 비슷한 글을 씁니다. [선발이 막았고 중심이 점수 내면 야구가 쉽다]는 내용입니다. [한화 득점 공식은 결국 정근우-김태균]이라는 얘기도 자꾸 하죠. 결국 어제의 대승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김태균 동점타-정근우 역전타-김태균 쐐기타가 순서대로 나왔죠. 송창식이 선취점을 뺏겼지만 5이닝을 버텼고, 김태균과 정근우가 불리한 경기를 쫓아가서 뒤집고 굳혔습니다. 물론 두 사람만의 공은 아닙니다. 안타치고 나간 사람, 후속타를 쳐준 사람, 번트를 성공해준 사람, 도루로 한베이스 더 간 사람 모두 다 잘해서 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여러 상황을 묶어 점수로 연결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한화에서 그걸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정근우 김태균 (그리고 최진행까지)입니다. 이용규 김경언 강경학 김회성이 그들보다 못한 타자여서가 아니라, 팀에서의 위치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김성근 감독이 정근우를 전력의 50%라고 말했던 것도, 부상당한 야수는 무조건 2군으로 내리면서도 김태균만은 매 경기 중요한 순간마다 큰 역할을 맡겼던 것도 아마 그래서겠지요.
김태균과 정근우는 최근 5경기에서 17타점을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의 방망이라면 댄블랙-마르테가 두려울 이유가 없고, 박병호를 부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박병호의 홈런이 물론 두렵겠지만, 현재 박병호는 50타점 /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했던 김태균이 현재 48타점입니다) 물론 정근우 김태균이 매경기 멀티타점을 올려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 배터리에게 "여기 너무 위험하다"는 인식은 계속 심어주어야 하는데 지금 두 사람은 그게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자를 쌓고 다른 선수로 하여금 또 다른 대량 득점이 가능해지도록 연결합니다. 삼성전의 신성현, 어제의 고동진처럼 말입니다.
고동진은 타구가 우측으로 갈 확률이 높은 선수입니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2루 방향 그라운드볼이 많고 반대로 컨디션이 좋으면 우중간을 뚫거나 우익선상으로 타구를 보냅니다. 최근 최진행이 바깥쪽 변화구에 너무 쉽게 당했는데 최진행이 약한 그 코스의 공을 우측으로 보낼 확률이 높은 선수가 바로 고동진이죠. 경기를 뒤집고 추격 의지를 끊어내던 상황에서 결국 그가 경기를 확정짓는 타점을 내 주었습니다. 감독의 선택이 훌륭했고, 그 선택이 훌륭해지도록 결과를 만들어낸 선수의 공 역시 컸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고동진은 최근 다소 부진한 모습도 보였으나 평소 선수단 안에서 굉장히 많은 역할을 하던 사람입니다. (어제 정민철 위원도 그 언급을 잠시 하더군요) 김태균이 주장 완장을 내려놓았을 때, 그리고 그 이듬해에도 선수단에서 하나같이 주장으로 추천하던 선수가 바로 고동진이었습니다. 5가지 툴을 모두 가지고 있던 04고동진의 기대에 비하면 최근의 모습이 다소 아쉬웠지만, 사실 그것은 무릎이 좋지 않았던 영향도 많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고동진-한상훈-안영명-윤규진-김태균-김태완 같은 선수들이 좀 더 잘해주었으면 좋겠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글스의 마지막 가을야구를 최일선에서 이끌었던 선수들이 그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어주면 좋겠어서입니다. 한화가 마지막 한국시리즈에서 아쉬운 눈물을 흘렸던 시절은 저의 20대 막바지였습니다. 언젠가 그런 시대가 한번 더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시대가 한번 더 오려면, 그 시절 이글스에 없었지만 지금은 힘을 보태는 새로운 피, 그리고 또 다른 젊은피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어제 그런 느낌을 받는 상징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근우의 역전타때 홈으로 들어온 이용규가 자신의 뒤를 따라 전력질주해 홈을 파던 강경학의 머리를 쳐주던 장면이었습니다.
원래 이용규의 별명은 [바람의 손자]였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뒤를 잇는 선수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강경학에게서 이용규와의 닮은꼴을 봅니다. 주현상이나 신성현 같은 선수와는 좀 다른 느낌의 이미지입니다.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모양새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이용규도 그것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이종범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강경학에게 다시 전해주고 그런 힘들이 모여 팀을 강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또 다시 좋은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래와 같은 시대가 말입니다.
첫댓글 선발투수들도 점차 안정되고 있고
중심타자들 컨디션도 많이 올라왔네요
거기다 고동진,김태완 같은 선수들도
힘을 보태주니 팀이 잘 돌아가네요
김경언,한상훈,용병타자까지
잘 돌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팀이 과연 어디까지갈지 참 궁금합니다
글의 내용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역시 좋은글 잘봤습니다 그리고 송창식 선수는 말 그대로 투혼과 투지라는 글자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선수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이글스에서 몸 건강하게 오래도록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지않아 99년의 영광이 다시 재현될거라고 믿습니다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선수가 있을때가 우승을 할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됩니다. 기필고 3년안에 우승에 도전하길 기원합니다.
아~ 진짜 요즘 야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ㅎㅎ
저도 송창식은 선발로도 통한다는 느낌입니다 창식이 역할을 다른 투수에게서 찾고 이기회에 선발로 전환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송창식선수 선발로?
어쩜 글을 이리 잘 쓰실까요
좋은 글 감사 ~
스포츠신문 1면만 몇개 간직중이죠 장종훈 님 관련ㅋ 추억돋네요
괜히..눈물나네요ㅠ
제 마지막한국스리즈는 알바하는데서 라디오로 들었었는데ㅠ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송창식 선발전환 정말로 강추하고 싶네요. 오늘도 승리하자구요... ^^
저도 송창식선수는 가슴으로 응원합니다. 선발로 나오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데요 그러려면 선발답게 관리해줘야합니다. 충분한 휴식과 준비 그리고 5선발 로테이션을요..선발로 쓰다가 이틀만에 또 불펜등장하는 것 같은 양상이 벌어진다면 정말 화날 것같아요.
와 진짜 신문 ...
추억 돋네요 ㅎㅎㅎㅎ
저리 좋은 신문 또 한번 보고싶네요
대성불패 그리워요 ㅎㅎ
잘읽었습니다
송창식선수.. 작년에는 너무 안타까웠지만 올해 다시 부활하게 되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ㅠ
송창식선수 정말 감동입니다... 등에다가 이름 새기고 싶네용...ㅎ
저두 강경학선수가 심상치않아 보입니다 눈에서 독기같은것두 보이고...
강경학선수가 작년에 첫안타 스리런칠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진심 앞으로 잘 성장할꺼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