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인지 친구들 사이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와병중에 사망했다거나 부주의로 인하여 입원했다는 소식이 대다수다.
며칠전에는 고향에 내려가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친구가 낙상 했다는 연락이 와서 나를 슬프게한다.
이른 새벽, 아파트 단지 내를 뒷걸음으로 걷다가 돌에 걸려 왼손 골절상을 입고 2주간 입원 중이라고 전한다.
그래도 왼손이라 다행이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수입상가에서 슬리퍼를 산 것은 오래전의 일이고 이번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를 샤워 실에 깔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운동화나 구두를 바꿀 때 가장 주의 깊게 보는 곳도 밑창이다.
나이 들었음을 처음으로 감지한 것도 길을 걸으면서 약간의 높낮이에도 몸이 휘청하며 전율을 느낀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정말 엿 같았다.
올해도 벌써 세 번이나 낙상했다.
지난봄에 문화공원을 거닐었더니 ‘어린이와 노인과 함께’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가위바위보 게임. 제기차기, 다트 넣기, 표적 맞추기를 하고서 공차기에 도전했다.
10미터거리에 5개의 나무 핀을 세워놓고 공을 차서 넘어뜨리는 놀이다.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 찬 공이 모든 핀을 쓰러뜨렸다.
박수소리와 함께 몸이 핑 돌면서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진행요원이 달려와서 ‘어르신, 괜찮으세요.’
멋쩍게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났지만, 며칠간은 엉치뼈가 아팠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작은 방에 있는 책장위에 박스를 올리다가 탈이 났다.
조금만 움직이면 적당한 의자가 있는데도 옆에 있는 회전의자를 택한 것이 화를 좌초했다.
두발로 올라서자마자 의자가 빙 돌면서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사지가 부러지고 뇌진탕을 일으킬 조건이 충분했지만, 아직은 저승사자가 부를 때가 아닌지 벽이나 문갑을 용케도 피했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 달려온 아내는 ‘조심 좀 하지. 생각 없이 행동하니 항상 조마조마해’
며칠 전에 야산을 오르다가 나무넝쿨에 걸려서 엎어진 사고가 세 번째다.
경고까지 무시하고 오기를 택한 것이 사고를 불러온 것이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지난번 시험 준비를 하면서 ‘노인의 질병은 비가역적이다. 노화로 인하여 몸이 숙여지고 다리를 끄는 현상이 나타나서 낙상위험이 있으니 특히 주의를 요한다.’가 가장 감명 깊게 다가왔다.
앞발은 조금 들고 뒷발에 힘을 실어서 걷고자 하지만 수십 년을 거쳐 온 습관이 쉽사리 바뀔 리가 없다.
앞만 보고 걷는 게 좋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나는 게 잡념이고, 육신인들 따라주나!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 없어 택한 게 걷기인데, 야산은 미끄러질까 걱정이고 헬스클럽은 코로나로 인하여 못가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고안한 게 집안을 걷는 것이다.
32평 아파트 내부를 양말에다 거실용이지만 두툼한 슬리퍼를 신고서 돈다.
한 바퀴를 돌면서 속으로 헤아리니까 170보정도인데 모서리가 많아서인지 만보기에 찍힌 숫자는 150여보다.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돌았더니 8,500여보, 1,500보 차이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피해야 하고 청소를 자주 해야 하는 등의 애로사항은 있지만, 코로나가 물러가기까지는 이 방법도 병행해야 할 것 같다. (碧草. 2021. 0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