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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인도 네팔 기행 6일차 : 1월 10일 일요일(바라나시)
윤상현 추천 0 조회 279 10.08.27 14:3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1. 열차 안에서 본 바라나시의 갠지즈 강변

 2. 바라나시 역

 

 

 3. 게스트 하우스

 

 4. 메인 가트

 5. 버닝 가트(화장터)

 6. 오토 릭샤

 7. 석가모니 초기 설법지인 '사르나트'

 

 8. 갠지즈 강변

 

 

 

 

 

 

 

 

 

6일차 : 1월 10일 일요일(바라나시)

침대 주인이 나타났으니 어쩔 수 없다. 다시 아우에게 넘어가 아예 소주 한 잔 하기로 한다. 육포 안주에 두어 개 팩을 비우고 나니 마침 2층에 침대가 났다. 또 다시 침낭 안에 몸을 눕히니 드디어 평화가 왔다. 아그라에서부터 따져보니 실로 50시간 만에 누운 것이다.

6시 10분. 기분 좋은 꿈과 함께 눈을 뜨니 쇠 바퀴 소리는 여전하고 날은 이미 밝았다. 안개 자욱한 차창 밖 들판엔 듬성듬성 노란 유채 꽃밭이 널렸다. 스쳐가는 풍경들이 느릿한 열차 속도만큼이나 한가하다.

한 시간 쯤 지나 간이역에 정차하자 짜이차(茶) 장수들과 잡상인들, 그리고 구걸하는 이들까지 뒤섞여 이내 어수선해진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추어 이런저런 먹거리를 갖추고 호객을 한다. 원색의 옷으로 성장한 힌두교의 몇 명 사두도 경(經)을 외우며 아침 탁발 행렬에 나섰다. 기차 안이 좁고 더럽긴 해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싶었는데 이런 소란이 다시 새삼스럽다. 어째튼 따뜻하게 깊은 잠을 자고난 뒤인지라 간단한 음식에 따뜻한 짜이 한 잔을 하고나니 심신이 편안하다.

침낭을 정리하여 등받이로 기대고서 차분히 이 여정을 생각해 본다. 옆 자리의 인디언가족은 입성이 꾀죄죄해도 여느 가족이나 마찬가지로 사랑이 넘친다.

이미 손은 거칠어지고 손톱 곁 갈라진 속으로 약간의 염증까지 생겼다. 손톱을 깎아 내고 응급처치를 해보지만 생인 손 앓은 듯 하여 자꾸 신경이 쓰인다. 행복과 불행이 이런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함을 새삼 인식한다.

시침은 아홉시를 넘기는데 열차는 ‘갠지즈’ 강의 철교를 통과한다. 저 멀리 강가엔 작은 목선들이 빼곡하고 곁에는 무리 진 인디언들이 줄을 지어 배에 오른다. 모두가 ‘힌두교’ 뿐만 아니라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의 성지이기도 한 이 곳을 찾기 위하여 오래토록 준비한 사람들이리라.

철교를 건넌지 10분 만에 열차는 ‘바라나시’ 역에 들어선다. 이 곳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여 있는 영혼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거의 모든 인디언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성소, 인도 여행자라면 반드시 찾는 곳 ‘바라나시’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가족 단위의 인디언 순례객들과 뒤섞여 역사를 빠져나오자 곧바로 ‘자전거 릭샤 왈라(꾼)’들이 모여든다. 대충 흥정을 하고 좌석에 오르니 훌쩍 높은 그 높이에 말 잔등에 올라탄 듯 시야가 훤하다.

차마(車馬)가 뒤섞이고 소와 사람들로 뒤죽박죽인 거리를 늙은 릭샤꾼은 가느다란 다리로 잘도 헤어간다. 그의 땀방울에 기대어 10여분 만에 이곳의 베이스 캠프인 ‘메인 가트 바자르’거리에 도착했다. ‘가트’란 육지에서 ‘갠지즈 강’으로 연스럽게 접근 할 수 있는 계단 길인데 이 도시에는 무려 100여개의 가트가 있단다.

바자르 시장거리 입구부터는 릭샤 출입 불가(不可)다. 여기부터는 미로의 골목길을 따라가며 숙소를 찾아야한다. 아침부터 넘쳐나는 인디언들과 부딪히며 골목길을 꺾어 돌기를 여러 번. 손바닥만 한 가게들이 밀집한 곳에 힌두교의 성소인 ‘황금 사원’이 자리했다. 마침 순례 행사 중인지 많은 교도들이 입구에 줄 지었고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질서 유지 중이다. 그 곁으로도 작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힌두 성소들이 즐비한데 붉은 가사 차림으로 성장한 사두들은 “라마스떼”를 연발하며 미소로 시주를 권한다. ‘요가 쎈타’를 지나, 인도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블루 라시(과일쥬스)’집을 거쳐 당도한 곳은 ‘미쉬라 게스트하우스’. 가파른 계단을 딛고서 현관을 밀치니 로비의 맞은편 벽면에 코끼리 형상을 한 ‘카네샤라(지혜의 신)’신이 먼저 반긴다.

여권을 맡긴 뒤 배정 받은 삼층의 방이 페인트칠을 새로 하여 깔끔하다. 누울 곳이 정해지니 갑자기 시장해진다. 이곳의 옥상에도 레스토랑이 있지만 우선은 ‘갠지즈강’을 만나고 싶다.

아까의 시장 거리 입구를 통하여 곧바로 ‘메인 가트’로 향한다. 채소 시장의 길바닥에 질펀한 쇠똥들이 걸음을 조심케 한다. 널찍한 계단 길 아래로 ‘갠지즈’가 뻗혀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극락이라는 모든 인도인들의 성소 중에 성소다. 단체로 순례여행을 온 많은 여인들이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모두들 주황색 ‘사리’ 차림으로 성장(盛裝)했는데 부유한 아낙들인지 모두들 몸매가 부(富)하다. 반라(半裸)의 남자들이 온 몸에 물기가 흥건한 채로 옷차림 단속을 하고 있다. 성수(聖水) ‘갠지즈’에 몸을 담군 자부심이 표정에 묻어있다.

강변을 따라 ‘장작 시장’ 골목을 지나 내려서니 바로 ‘버닝 가트(화장터)’다. 밤새도록 타올랐을 낮은 연기 안에 시체 태운 냄새가 가득하다. 서울에서라면 기겁을 했을 일이 여기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지는 것은 어인일인가. 만사일체유심조(萬事一切唯心造)로다.

훌쩍 솟은 뾰쪽 지붕들 사이로 비둘기 떼 나르는 아래 ‘갠지즈’에 떠가는 조각배가 인상적이다. 급경사의 계단 길을 힘들게 오르는 중 한 소년이 다가서며 안내를 자청한다. 지금 우리는 ‘바바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중이다. 인디언과 결혼한 한국 아줌마가 주인이라는 음식이 괜찮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길을 헤매는 우리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다가온 것이다. 작두 샘이 있는 곳을 돌아서니 바로 목적지가 눈에 든다. 소년은 잠깐의 노력으로 팁을 챙겼다.

홀에 들어서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숙소도 겸하고 있는 이곳은 여행자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서가에는 귀국 길에 기증하고 간 한국의 책들이 빼곡하다.

부대찌개를 주문하니 덤으로 김치전을 내온다. 비록 현지의 재료이긴 하지만 그 맛이 비슷하다. 오랜만에 찰진 밥을 대하니 입과 배가 행복하다.

흩어졌던 일행들이 각자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에 모이니 오후 한 시가 되었다. 이번에는 다 함께 ‘석가모니’의 초기 설법지인 ‘사르나트’를 방문하기로 한다. 이곳은 불교에 있어 사대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시장 통을 출발한 뒤 인파와 차량을 피해가며 강 넘고 철도건너 총알처럼 달려 불과 4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전수의 곡예운전 때문에 조금 혼미한 것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탔던 듯하다. 빈 차로 되돌아가기 싫은 젊은 기사는 얼마든지 기다려 줄 테니 귀로에 제발 자기 릭샤를 이용해 달라 간청한다.

‘사르나트’에 들어서니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뒤섞여있다. 특히 대만과 태국 그리고 한국의 불자들이 스님을 앞세우고 단체로 성지순례중인 경우가 많다. 허물어진 성터 한편에 두 겹의 원통형 전탑(塼塔)이 우람하게 섰고 이를 중심에 두고서 도처에 예불 중이다. 대만과 태국의 불자(佛子)들은 잔디밭에 앉아 독경에 여념이 없고 한국의 불자들은 단체로 기념 촬영하느라 바쁘다. 개인 순례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코라(탑돌이)’를 도는데 그 표정들이 한 결 같이 엄숙하다. 기왕지사(旣往之事) 나 또한 여기까지 왔으니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삼배(三拜)를 올린 뒤 ‘코라’에 동참한다. 여러 줄기 ‘타르초’ 깃발이 펄럭이는 아래 담장 뒤엔 ‘티벳’ 아줌마가 모국의 조악한 기념품들을 팔고 그 아이들은 구걸의 손을 내민다.

해는 어느덧 뉘엿한데 ‘릭샤’ 기사와는 이곳 주차장에서 4시. 일행들과는 5시에 ‘메인 가트’에서 만나기로 약속 돼있다. 좌판의 아이스크림과 구운 땅콩으로 심심풀이해본다.

다시 ‘바자르’ 입구로 돌아오니 갑자기 방향감각이 헷갈려 어리둥절하다. ‘메인 가트’를 찾아 좀 헤매다 보니 맞춤한 가게가 눈에 든다. 우선 모직(毛織)의 갈색 털장갑을 끼어보니 금방 따뜻한 느낌이 들어 편안하다. 처음에 끼고 온 장갑이 사라진지 한참 오래다.

‘갠지즈 강’에 어둠이 내렸다. 유명한 해넘이를 보려했으나 태양은 순식간에 꼴깍하며 넘어가고 별반 땅거미도 없이 이내 밤이 된다. 일엽편주 유람선에 올라 작은 소망을 담은 꽃 장식 촛불을 띄워 보낸다. 어두운 강물 저편으로 소리 없이 스러지는 불꽃에 마음까지 아련하다. 강바람 속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는 바라나시만의 비릿한 냄새가 묻어있다.

캄캄한 강물 위 느릿한 뱃전에서 건너다 뵈는 뭍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유럽의 궁전 같은 둥글고 뾰족한 지붕들이 솟은 아래로 불빛은 휘황하고 그 아래엔 수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마련된 제단을 향하여 열 지어 앉았다. 마침 일행 중에 배탈이 난 친구가 생겨 급히 강가에 배를 댄다. 핑계 김에 강상 유람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인파에 섞인다. ‘메인 가트’에서 이른 바 ‘뿌자’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신과의 소통을 위한 '힌두교 제사'다. 양초와 등불을 주 소재로 사용한 기도 의식인데 ‘자기 정화’와 ‘해탈의 소망’을 비는 것이다. 요란한 음악에 맞춘 일곱 개 제단(祭壇) 위 일곱 명 사제(司祭)의 몸짓이 불꽃에 어울려 아름답다. 의식을 집전하는 이들은 브라만 계급으로서 바라나시 힌두대학의 종교학과의 학생들이란다.

사진 촬영을 핑계로 아예 사제들의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한 결 같이 배우처럼 잘생긴 사제들의 엄숙하면서도 우아한 몸짓에 경배심이 절로 인다. 제례 무용과 음악이 어우러진 고급 격식의 대단한 퍼포먼스다. 매일 저녁 기도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온통 만원이라는 이 행사는 화장터에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일부 기부금을 내고, 또한 거부(巨富)인 ‘메인 가트’의 주인이 비용을 보태어 행사가 이루어진다. 여기의 강변의 모든 ‘가트’들은 사유재산이다.

마냥 여기에만 있을 순 없다. 인디언의 전통 음악과 무용 공연을 예약해두었다. ‘뿌자’ 행사장에서 계단 길을 올라 조금 윗편, 골목 끝 쪽에 ‘수리시 게스트하우스’가 자리했다. 이곳의 노천(露天) 로비에 임시 공연장이 준비되었다. 이 지역의 공연 씨스템은 따로 극장이 없고 공연자들이 관객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예약된 몇 팀이 모이자 금방 삼십여 명의 관객으로 공연장이 가득하다. 미리 와서 준비하던 세 명의 연주자는 각자 서로의 악기에 음을 맞춰가며 조율하다가 이내 연주에 들어간다.

우선 두 개의 드럼으로 구성된 ‘타블라’의 복잡한 리듬이 깔리는 가운데 아이들 키만큼이나 길쭉한 기타모양의 악기가 연주된다. 20개의 플랫과 7개의 현을 가지고서 금속음을 내는 이것은 ‘시타르’로써 ‘페르시아’에 유래를 둔 악기다. 숨소리마저 끊긴 듯 연주에 심취한 이들과 청중은 이내 하나가 된다. 10여 분 연주가 끝난 뒤에 다시 손풍금인 ‘하르모니엄’의 낯선 선율이 아까보다는 빨라진 리듬을 타고서 낮고도 아련한 느낌을 이어간다. 이어 등장한 맨 발의 무용수는 흰색 바지에 짙은 하늘색 사리를 걸치고 짙은 화장에 붉은 터번을 둘렀다. 트랜스젠더 무용수 ‘크리스티나’가 강렬하면서도 애잔한 눈빛을 가지고 몸짓을 이어간다. 발목에 두른 여러 개 고리가 스텝을 따라 리듬 악기 역할을 하는데 ‘타블라’ 만큼이나 복잡하면서도 강렬한 리듬의 찰찰거림이 경쾌하다. 상기된 무용수는 제 스텝에 청중의 손뼉 박자를 유도하더니 절정의 순간에 모두가 함께하는 장면을 이끌어낸다.

밤은 깊어가고 공연은 끝났다. 집 주인은 연주자와 손님들을 위해 ‘짜이 홍차’를 내오고 동참한 ‘구루지’와 유럽에서 온 나그네들도 서로 스스럼없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니 거의 자정에 가깝다. 옥상에 올라가 검은 갠지즈강을 조망한다. 초저녁에 잠깐 보이던 조각달은 저문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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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27 14:54

    첫댓글 인도 전체가 성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갠지스강의 바쁜 일상이 느껴지네요.

  • 10.09.13 08:40

    영화에서 본 듯 합니다. 강가에서 화장하는 장면이... 모든 것이 실감이 나는듯 합니다. -합장-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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