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von Karajan (1908-1989)
4악장. Adagio –Allegro molto e vivace
Recorded: XI.1953, Kingsway Hall, London
Beethoven, Symphony No.1 in C major, Op.21
베토벤 교향곡 1번
제1악장 Adagio molto - Allegro con brio
처음부분은 딸림7화음으로 불씨를 당기면서 12마디의 아다지오(adagio, 천천히)로 시작
한 다음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불같이 빠르게)로 이어진다. 베버는 이
교향곡을 "불같이 밀려드는"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어서 갑작스럽게 약박에서 튀어올
라 바탕음으로 이어지는 제1주제가 등장한다. 이 부분은 자주 모차르트의 <쥬피터>교향
곡(KV 551), 그리고 크로이쳐의 <마라톤의 날>(La journe'e de Marathon)과 비교하여 거
론된다. 이 주제는 다장조 으뜸화음을 형성한다음 플루트와 오보에에 의해 연주되는 사
장조의 제2주제로 이어진다. 이어 나타나는 발전부에서는 주제-모티브 작업이 밀도있게
이루어지는데 제시부보다 강한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제2악장 Andante cantabile con moto
제1주제를 푸가처럼 발전시킨다. 이 주제는 3화음에 바탕을 두면서 춤음악적인 움직임
을 거치는데, 이를 통해 제1악장과 제3악장과의 관련성을 고집하고 있다.
제3악장 Menuetto. Allegro molto e vivace
당시의 다른 소나타에서처럼 미뉴에트라는 제목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미뉴에트 전통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베토벤의 독자적 처방이 벌써 들어있어 이후 그의 소나타 계통의 작
품에서 미뉴에트 대신 쓰일 스케르쪼를 예감한다.
제4악장 Finale. Adagio - Allro molto e vivace
제1, 2악장처럼 소나타악장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제1악장에서처럼 느린 도입부(아
디지오)를 가지고 있다. 느린 도입부는 특히 하이든이 특징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제4악
장의 도입부에서 베토벤은 제1악장의 머리모티브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곡 전체의 연결
감을 이끌고, 이 모티브를 리듬적으로 변형시켜서 빠른 템포(알레그로 몰토 비바체)의
제4악장의 제1주제를 도입한다. 베토벤은 이렇게 제1교향곡에서부터 주제-모티브 작업
을 통해 제1악장부터 제4악장까지를 서로 연결시켜 일종의 내부적 순환체계를 만드는 일
을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작곡처방은 그의 창작의 중심장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소
나타, 현악사중주 등에서 발전된다.
작품개요 및 구성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에서 18세기 후반의 전통과 자신의 새로운 어법을 혼합시켰다.
그가 개척한 새로운 교향곡 언어는 19세기 널리 퍼져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제1번 교향
곡을 쓰기 전의 30세 나이에 이르는 동안 그는 많은 소나타들과 실내악곡, 그리고 두 개
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여 이미 거대한 음악형식과 친숙해 있었다. 이러한 그의 음악
세계에는 모차르트의 음향구축어법과 하이든의 주제-모티브 작업이 깊이 스며들어 있
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이러한 기법적 전수 못지 않게 프
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그의 자유시민적인 세계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것은 당시
에 유행하던 계몽운동과 "질풍노도"라는 철학·문학운동과 연결된 것이었다. 즉, 그는
당시의 사회·정신사적 성숙을 적극 수용한 -그것이 직접적 목적이 아니었다고 할지라
도- 음악세계를 가꾼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이후 교향곡들에서(특히 제3번 이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이러한 개성은 제1번 교향곡을 쓸 때부터 이미 내부에 싹트고 있었
다고 볼 수 있다.
이 곡의 새로운 점은 곡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다. 딸림7화음을 통한 종지형성의 경향을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 준비없이 그냥 역동적인 화음을 연결시키면서 긴장감을 고
조시키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작을 베토벤은 후에 <프로메테우스 서곡>의 시작에서도
보여준다. 제1번 교향곡의 이러한 긴장감은 곡이 전개됨에 따라 이후 작곡기법적으로 다
듬어지지만 전체적으로 그 여운을 남긴다. 제1번 교향곡에는 아직 그의 대부분의 다른
교향곡들이 보여주는 파격적인 화음연결이나 형식구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부
분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역동적이고 내면적인 음향의 처방이 이미 싹트고 있다. 이러
한 경향은 제3번 <영웅> 교향곡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헌정: 슈비텐(Gottfried van Swieten) 남작
작곡기간: 1799/1800 비엔나 및 주변지역
초연: 1800년 4월 2일 비엔나의 궁정극장(Hofburgtheater)
편성: 2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팀파니, 현악기
초연의 반응
제1번 교향곡이 헌정된 슈비텐 남작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의 가사
를 쓰기도 했으며, 음악에 대단히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베토벤은 제1번 교향곡을 6
중주곡 (작품 20)과 함께 그의 첫 번째 "대 음악회"(Grosse musikalische Akademie)에
서 초연하였다. 당시 새로움을 갈망하던 청중들은 이 곡에 큰 호응을 보였고, 베토벤은
자신의 새로운 음향 세계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초연에 대한 당시의 <일반음악신문>(III, Nr. 27, 1800년 10월 15일)에 나타난 비평은
전체적인 새로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관악기를 화음보강에 많이 쓴 것을
지적하고 있다.
"마침내 베토벤 씨도 극장[큰 음악회장]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최근의 가장
흥미있는 음악회였다. 연주회 끝부분에 그의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거기에는 많은 예술
성, 새로움, 넉넉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관악기들이 너무 많이 사용되었
다. 그래서 전체 오케스트라 음악보다 화성이 두드러졌다."
당시의 입장에서 보면 제1주제가 나오는 곳의 관악기들이 낯설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적으로 보았을 때 이 곡에 나타난 악기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의 것이 모차르트적인 어법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으로 간주해야 할 것은 앞에서 언급했
듯이 의외의 화음을 층층이 배열하여 긴장도를 높인 것과 주제의 계산된 긴밀한 발전,
그리고 통상적인 악장배열을 쓰면서도 그 규격이 앞뒤로 밀려 비대칭구조를 취한 것 등
을 들 수 있다. 주제-모티브의 처리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에서 그 극치를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식 역시 단아함에서 출발하지만 점차 외형적인 균형보다 내부적인 긴
장도를 -일종의 청취심리적인- 우선하게 된다. 화음을 전통적인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인 표현을 위해 창의적으로 쓰는 것 역시 매우 "베토벤적"이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3악장. Scherzo (Allegro vivace) & Trio
4악장. Finale (Allegro molto – Poco andante – Presto)
Recorded: XI.1952, Kingsway Hall, London
Philharmonia Orchestra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Herbert von Karajan’s first complete recording
of the Beethoven Symphonies
Beethoven, Symphony No.3 , Op.55 "Eroica"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작곡 : 1803~4년
초연 : 비공개 초연은 1804년 12월 로프코비츠 후작의 사택에서,
공개 초연은 1805년 4월 7일 비엔나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 1806년
헌정 : 로프코비츠 후작
편성 :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3, 트럼펫 2, 팀파니, 현악 5부
연주시간 : 약 50분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던 베토벤의 일면을 찾아볼 수 있는 곡이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의 혁명에서는 코르시카 섬 출신의 일개 포병 사관이었던 나폴레옹이 반란을 평정하고
국내 최고 사령관 이 되었다.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자유의 정신에 불타 있던 베토벤
은 프랑스 혁명을 흥미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빈에 주재하고 있던 프랑스 대사와 대사관의 비서이자 바이 올리니스
트였던 루돌프 크로이쩌로부터 프랑스에 자유와 질서를 가져온 나폴레옹의 업적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플라톤의 '공화국'을 숙독한 바 있었던 베토벤은 이 시대
의 영웅의 자태를 보여준 나폴레옹을 자신의 작품으로 찬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33세 때인 1803년 여름 이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하여 1804년 봄에 완성시켰
다. 스코어의 표지에는 '보나파르트'라고 썼으며 밑에 자신의 이름 '루비트비히 반 베토
벤'이라 적어 이를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 내려고 할 무렵, 나폴레옹이 황제
가 되었다는 소식이 빈에 퍼졌다.
이 소식에 분개한 베토벤은 그 사본의 표지를 찢어 버렸다고 한다.
"저 사나이도 역시 속된 사람이었어. 그 역시 자기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의 권
리를 짓 밟고 누구보다도 심한 폭군이 될 것이야."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이후 다시는 나폴레옹에 대해 언급도 안 했다는 그는 2년 뒤 이
곡을 출 판하면서 '한 사람의 영웅을 회상하기 위해 작곡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17
년 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는 보도를 듣고 비로소 '나는 그의 결말
에 어울리는 적절한 곡을 써 두었다' 라고 했다는 베토벤. 이는 이 작품의 제2악장에 있
는 '장송 행진곡'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악장 : 생기있는 빠르기로(Allegro con brio) 내림 마 장조 3/4
소나타 형식. 그러나 규모가 크고 두 개의 주제가 의외로 다양하고 풍부한 악상을 지니
며 이들 재료를 낱낱이 구사하고 있다. 1주제는 첫부분의 강력한 두 개의 화음 후에 저
음역의 현악기에서 엄숙하게 등장한다. 2주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클라리넷으로 연주되
며 바이올린으로 옮겨간다.
발전부는 매우 정성스럽게 대위법적으로 짜여지며, 극적인 힘을 지니고 커다란 클라이맥
스를 이룬다. 공식적으로 제시부의 재료를 다시 출현시키는 재현부 후에 또다른 새로운
발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한 코다가 나오고 이 당당한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 대단히 느리게(Adagio assai) 다 단조 2/4
자유로운 3부 형식. {장송 행진곡}의 악장이다. 현의 주제가 나타나며 장중한 걸음걸이
로 나아간다. 중간부는 다장조로 밝아지며, 영웅의 생전의 업적을 기리는 것으로 보인
다.
그 후 제1부의 주요 선율이 다시 나타나며 그에 토대를 둔 푸가토가 차례대로 펼쳐진
다. 마지막으로 다시 주요 선율이 모습을 보이며 슬픔과 체념을 품은 채 곡을 중단하고
인상깊게 마무리한다.
3악장 : 스케르초. 빠르게 생기있게(Allegro vivace) 내림 마 장조 3/4
3부 형식. 1부는 빠른 스타카토의 움직임으로 시작하며, 차츰 힘을 증대시켜 간다. 중간
부 트리오는 호른의 선율로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다시 1부가 반복된다.
4악장 : 매우 빠른 속도로(Allegro molto) 내림 마 장조 2/4
같은 베이스의 선율형을 자유롭게 몇 차례 반복하여 그 위에 변주를 쌓아나가는 파사칼
리아와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ff로 격렬히 연주되는 서주 후에 피치카토의 1주제를 중
심으로 하여 베이스에서 몇 차례 반복된다.
이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끝곡에 베이스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윽고 가볍고 평온
한 2주제가 등장한다. 전체적으로는 푸가토와 그 밖의 대위법적인 기교들이 나타나며 커
다랗게 정점을 향해 진행한다. 거기에 긴장이 풀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코다로 전곡을 마무리하게 된다.
베토벤이 음악계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모방적인 음악을 만들던 시기를 벗어난 첫 작품
으로 평가되는 이 곡은 그만의 강한 개성과 힘의 균형이 훌륭하게 나타나는 곡이다. 후
에 바그너는 이 곡의 4개의 악장을 '활동, 비극, 정적의 경지, 사랑'이라고 평하면서 참
된 베토벤의 모습이 이 곡 안에 다 있다고 했다.
◆개설
이 곡은 1804년 봄에 완성 되었다. 신들러의 「베토벤 전」에 의하면 베토벤은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에게 바치는 이 곡의 부본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하던 차에 나폴레옹이 5월 18일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개해
서 그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린 후 악보를 마루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그 표지에
는,
Bonaparte
Ludwing van Beethoven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다. 코르시카 섬 태생의 일개 포병사관이었던 나폴레옹
은 1795년 10월에 의회군을 지휘, 이 대혁명에 참가하여 반란군을 평정함으로써 일약 최
고사령관 자리에 오르고, 마침내는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되어 연전연승을 거두었
다.
신출귀몰의 위력을 떨친 나폴레옹이야말로 베토벤의 눈에는 자유정신과 인간 해방의 기
수로서 새 시대를 고하는 세기적 영웅으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1798년 2월부터 4월까
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베토벤과 개인적 친분을 가지게 되면서
그는 베토벤의 예술을 높이 평가하게 되고, 베토벤은 그를 통해 영웅 나폴레옹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혁명의 풍운아, 영웅에게 바치는 교향곡이 탄
생된 것이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리스(Ferdinand Ries,1784-1838)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베토벤은 나
폴레옹이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그 녀석도 결국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하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2년이 지나서 출판된 파트 악보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라고 이탈리아어로 쓰여져 있
었으며 역시 이탈리아어로 된,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서」란 부제
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 곡을 나폴레옹 일대기의 표제악으로 생각하
고 들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교향곡 「제2번」까지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던 소위
희유성은 이 「제3번」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고, 한층 더 진실한 도덕성이나 윤리성 같
은 그 어떤 상한 힘을 이 「제3번」은 지니고 있다. 베토벤 자신도 「제9번」이 완성되
기까지는 이 곡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제3번」은 확실히 장대한 곡이다. 시간적으로도 종래의 상식을 벗어나 50분이나 소요
되는 긴 곡이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는 작곡자 자신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으며 1806
년에 출판된 악보 중의 제 1 바이올린 파트에는, 『이 교향곡은 일반 다른 곡들보
다 길므로 연주회에서 후반부 보다는 가능한 전반부에서 연주하는 것이 좋겠다. 즉 서
곡 1곡에다 아리아 1곡, 또는 협주곡 1곡 다음에 연주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청
중들은 앞 부분에서 이미 지쳐버리게 되므로 이 곡의 효과는 그만큼 상실하게 된다』라
고 기술했을 정도다. 심지어 전술한 클레멘트 주최의 초연에서는 제2부의 첫 곡목으로
되어 있었다.
◆작품해설 각 악장별 분석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영향이 엿보이는 「제1번」이나「제2번」과는 달리 이 「제3번」
부터는 음악적으로 일대 비약을 보여준다.
즉 규모가 엄청나게 방대해졌고 독창적인 수법이 대담하게 구사되어 베토벤의 개성이 두
드러지게 나타난다. 제1악장의 길이만 하더라도 종전 교향곡의 전곡과 거의 맞먹는다.
또 제2악장에 장송행진곡을 사용했다던가 종악장에 장대하고도 호화장려한 변주곡을 넣
은 것 따위는 당시로서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콘 브리오, E 플랫 장조, 4분의 3박자, 소나타 형식,
장대한 제1악장은 우선 그 당당한 구성에 압도된다. 이것은 소나타형식으로 쓰여졌지
만 전개부들은 종래의 관념을 완전히 깨뜨리고 제시부의 배나 되는 규모를 갖는다. 소나
타 형색의 권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악장은 주제의 새로운 활용법, 활발한 운동성, 극적
인 수법등 그의 종횡무진한 테크닉과 다채로운 악상이 넘쳐 흐른다.
·제2악장 : 「장송 행진곡」아다지오 앗사이, C 단조, 4분의 2박자,
유명한 제2악장은 영웅의 이미지와 죽음이 합치된 서사시로서 종교적 정화를 느끼게 해
준다. 또 장중한 장송 행진곡 부분도 훌륭하지만 마지막 심판 나팔을 연상케하는 듯한
시그널로 시작되는 웅대한 푸가 부분도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제3악장 : 이 악장은 일전하여 가벼운 음조를 취하는 스케르쪼-알레그로 비바체, E 플
랫 장조, 4분의 3박자다.
A - B - A의 3부 구조를 취했으며, 「제 9 교향곡」제 3악장의 선구를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음, 본격적인 스케르쪼인 제3악장엔 트리오 부분에 호른이 사용되는 등 베토벤
특유의 발랄한 주제가 구사되어 있다.
·제4악장 : 피날레-알레그로 몰토, E 플랫 장조,
4분의 2박자의 짧은도입에 이어서 현의 피치카토로써 저음 주제가 제시된다. 이것이 변
주된후에 목관 악기로써 주제 멜로디가 나타나는 것은 작품 35의 「피아노 변주곡」에
있어서의 주제 제시와 동일한 방법에 의한 것이다.
이 주제는 방금전에 언급했듯이 1795년에 작곡된 「12개의 콘트라탄쯔」의 제 7곡에 사
용되었고, 이어서 1800년경에 작곡된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종곡에, 또한
작품 35의 「변주곡」 주제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제 3의 교향곡」 종악장에 사용
된 것이다. 제4악장(종악장)은 이 주제를 기초로 하여 일곱 개의 변주를 하며 그 후에
긴 코다를 두는 형태로(8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웅대하고 호쾌한 악장으로 이것은 <영웅
>이란 이름에 어울릴 만큼 힘차고 늠름하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 독일 작곡가. 본 출생
독일 작곡가. 본 출생. 최성기의 고전파에서 초기낭만파에의 전환기에 56세의 생애를 보
낸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양식을 최고 정상까지 높이는 동시에 19세기 음악가들의 우상
적 존재가 되었으며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생애
그의 조부 루트비히는 플랑드르에서 이주한 본의 궁정악장이었고, 아버지 요한은 본의
궁정가수였으며, 어머니 마크달레나는 궁정요리장의 딸이며 궁정의 심부름꾼으로 미망인
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1770년 베토벤이 태어났다. 그의 세례일은 70년 12월 17일로 되
어 있으나 명확한 출생일은 알 수 없다.
플랑드르의 중후한 기질, 독일의 엄격한 논리, 라인지방의 희노애락이 심한 감정, 그리
고 제 2 의 고향이 되는 빈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베토벤음악의 배경이 된다.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배웠고 7세 때 연주회에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여
풍부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소년시절 본에서 아버지를 비롯하여 몇 사람의 음악가로부
터 개인교수를 받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10세 때부터 베토벤을 가르친 C.G. 네
페였다.
제 2 의 모차르트가 될 것이라고 그의 재능을 절찬한 네페는 J.S. 바흐와 C.P.E. 바흐
의 작품을 가르쳤다. 11세 때 최초의 작품을 출판한 베토벤은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가로
서도 활동하였다. 16세 때 그는 모차르트를 동경하여 빈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급병 소식을 듣고 본으로 되돌아왔다. 어머니의 죽음은 주벽이 심해진 아버지를 폐인으
로 만들었고, 베토벤에게 집안 생계를 맡기는 결과가 되었다.
실의에 찬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브로이닝가(家)의 따뜻한 분위기였으며 그 집 딸 엘레
오노라는 베토벤의 첫 애인이 된다. 그의 후원자가 되는 발트슈타인백작도 87년에 본으
로 부임하여 물심양면으로 베토벤을 도와준다. 92년 본을 방문한 F.J. 하이든에게 작곡
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베토벤은 하이든의 제자가 되려고 21세 때 빈으로 떠난다. 92
년 빈에 도착하여 하이든·J. 센크·J.G. 알브레히츠베르거 밑에서 먼저 작곡기법을
배우는 동시에 피아노의 명수로서 귀족들 사이에서 점차 높은 평판을 얻게 된다.
빈 생활 3년째에 그는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자작 피아노협주곡 제 2 번을 연주하
여 데뷔하였고, 작곡가로서는 《피아노 3중주곡집》을 출판하였다. 96년에는 보헤미아
와 독일에 연주여행을 하는 등, 연주·작곡 양면에서 순조롭게 성장하여 1800년에는 그
자신의 연주회를 빈에서 열고 교향곡 제 1 번을 초연하였다. 이듬해에는 J. 구이차르디
와 사랑에 빠져 피아노소나타 《월광》을 작곡하였고, 27세 무렵부터 느꼈던 난청이 음
악가로서 치명적인 귓병으로 악화되자, 1802년에는 자살까지 결심하였다. 그러나 <하일
리겐슈타트의 유서>를 계기로 교향곡 제 3 번 《영웅》, 교향곡 제 5 번 《운명》, 오
페라 《피델리오》 등 수많은 걸작을 계속 작곡하게 되었다.
1808년에 베스트팔렌국왕이 카셀궁전에서 악장으로 초빙하자 좋은 경제적 조건 때문에
그는 카셀로 가려는 결심을 굳힌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재능을 존경하는 루
돌프대공을 비롯한 빈의 세 귀족들은 연금을 서로 출자하여 베토벤을 평생 오스트리아
에 머물러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1809년부터 12년까지의 시기에는 피아노협주곡 제 5 번 《황제》, 피아노 3중주곡 《대
공》, 교향곡 제 7 번과 제 8 번 등 다채로운 작품을 작곡하였다. 13년부터 16년까지는
사랑편지 <내 불멸의 애인이여>의 상대방인 브렌타노부인과의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그의 자주적 작곡활동은 침체하였으나, 17년에는 《전쟁교향곡》과 오페라 《피델리오》
의 상연이 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8년부터 청각을 거의 잃은 그는 필담(筆談)에 의해 생활해 가면서도 피아노 소나타
《하머클라비어》를 비롯해 후기의 걸작군을 창작해 갔다. 베토벤음악의 총결산인 교향
곡 제 9 번 《합창》은 24년 5월 7일 빈의 쾰른트나투르극장에서 80명이 넘는 오케스트
라, 4명의 독창자, 약 100명의 합창에 의해 초연되었다.
26년 12월부터 간경변 때문에 수술을 되풀이했으나, 27년 3월 23일에는 죽음을 깨닫고
유서를 썼다. 3월 26일 그는 56세의 나이로 생애를 끝마쳤다.
음악
그의 작품은 양식변천에 따라 다음 4기로 구분한다. 그 자신이 작품번호를 붙인 빈 시절
의 양식변천은 9곡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소나타, 16곡의 현악 4 중주곡에 명백히 나
타나 있다. 교향곡에서는 홀수번호와 짝수번호의 작품이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처럼,
독일적 음악과 오스트리아적 음악이 혼재해 있는 것도 그의 음악의 특징이다. 그리고 WO
라는 번호는 G.L. 킨스키와 A. 할름이 1955년에 《베토벤작품목록》을 편찬할 때 베토
벤 자신의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곡에 붙인 번호이다.
(1) 본 시절(1782∼92)
본에서 접촉하고 배운 여러 가지 양식을 짙게 반영한 학습시절이다. 건반악기를 위한 3
개의 선제후(選帝侯)소나타(W O47, 1783)는 C.P.E. 바흐와 만하임악파의 영향과 함께
그의 독자성도 나타나 있다.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찬미는 3개의 클라비어 4 중주곡(W
O36, 1785)에 나타나 있다.
(2) 빈 초기(1793∼1802)
개인교수에 의한 대위법 학습으로 시작되는 이 시기는 고전파 기악양식을 습득·발전·
실험함으로써 그의 독자적 양식이 차츰 선명하게 나타난 시절이다. 《피아노 3 중주곡집
(작품1, 1794∼95)》과 《피아노 소나타집(작품2, 1793∼95)》에서 4악장 구성, 소나타
형식의 확대, 스케르초 사용 등, 베토벤의 새로운 면이 나타나 있다. 《현악4중주곡집
(작품18, 1798∼1800)》에서는 대위법적 수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그 밖에 교
향곡 제 1 번과 제 2 번, 피아노소나타 《비창》, 피아노협주곡 제 1 번과 제 2 번이
이 시기에 속한다.
(3) 빈 중기(1803∼12)
그가 쌓아올린 극히 논리적 형식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극적으로 전개하는 새로운 양식
에 의하여 이 시기에 걸작이 속출되었다. 교향곡 제 3 번 《영웅》부터 제 6 번 《전
원》에 이르는 4곡의 교향곡, 《코리올란서곡》, 피아노협주곡 제 4 번, 바이올린협주
곡, 《라주모프스키현악 4 중주곡집》, 오페라 《피델리오》 등이 1808년까지 탄생되었
다. 1809년 이후, 구축적인 주제의 전개를 중심으로 한 양식에서, 피아노 3 중주곡 《대
공(작품97, 1810∼11)》에서 보여준 것처럼 선율적 주제에 의한 서정적 양식으로 변해갔
다. 한편 교향곡 제 7 번(작품92, 1811∼12)과 제 8 번(작품93, 1812)에서는 리듬이 주
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4) 빈 후기(1813∼26)
작품의 침체기가 되는 1813년부터 16년까지의 시기는 가곡집 《멀리있는 애인에게(작품
98, 1815∼16)》를 비롯하여 기악작품에서도 낭만파적 색채가 강해지는데, 17년에 착수
한 피아노소나타 《하머클라비어(작품106, 1818년 완성)》를 출발점으로 다시 거대한 형
식으로 되돌아가 후기양식의 정상으로 올라선다.
후기양식의 뚜렷한 특색은 푸가로 대표되는 대위법적 수법 및 변주기법을 중요시한 것이
며, 시대를 초월한 다채로운 울림의 세계를 창조해갔다. 성악과 기악이 일체화된 《장엄
미사곡》과 교향곡 제 9 번, 피아노소나타(작품106, 109, 110, 111) 4곡과 《디아벨리변
주곡》, 현악 4 중주곡(작품127, 130, 131, 132, 135)의 5곡과 대(大)푸가는 바로크시대
부터 최성기 고전파에 이르는 음악을 베토벤이 총결산한 작품으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