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이었을 겁니다. '아미모는 전천훕니까?'라는 글에 '그래, 전천후다'라는 댓글을 단 것은.
지난 주 땅 파기가 끝나고 그 만신창이가 된 몸을 하고서도
금세 '몸이 근질거린다'든지 '토요일이 기다려진다'든지
'아이들이 벌써부터 언제 농장에 가냐고 손을 꼽는다'든지 하는 글들을 보면서
이 상승세를 쭈욱 타야만 우리의 농장도 명실상부한 '놀장'으로 자리잡을 것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어떤 모임엘 나가도 '아미모 잘 되느냐' '땅은 팔만 하더냐' '우리도 가고 싶은데...'
뭐 이런 소리를 하도 들은 터라서 객기 조금 보태서 보란듯이 달은 댓글이
'아미모는 비가 와도 번개가 때리고 천둥이 쳐도 모인다~'였는데...
휴=3
늦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보니 거의 장마 수준이 되어 있습디다.
아침부터 이 가족 저 가족 연신 전화벨이 울리고
쏟아놓은 말을 감히 주워담기에는 이미 '철새는 날아간' 형국이어서
'무조건 GO~!'라고 대답은 했지만서도
내심 얼마나 오시려구, 또는 아마 그 시간쯤이면 비가 좀 그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허나, 이건 시간이 갈수록 하늘은 더 어두워지고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 하나로 차를 달리는데
지 애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뒷자리의 아이들은 아조 신이 났습니다.
고인 물웅덩이를 지나며 물보라가 일어날 때마다 함성도 지르고 손뼉도 치고,
옆차가 일으킨 물보라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빗물을 흠뻑 뒤집어 써도
까르르거리고 소리를 질러대고...
하긴 좀처럼 보기 힘든 빗속 나들이니 오죽했겠습니까.
정확하게 다섯시 십분쯤에 도착한 선우아빠네 앞마당엔
벌써부터 아미모 가족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수해 당한 난민 모양으로 대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빠최고님과 마타님 가족, 아빠최고님 친구분이면서 최근 아미모호에 탑승하신 hoon님 가족,
두 아이 손잡고 나오신 나무님 가족, 고요의 아침님 가족,
이젠 아예 일산으로 집을 옮기는 게 더 편할 서울의 지지배배님 가족까지...
음냐리, 여기에 이웃 아이 꼬셔서 함께 간 도깨비 가족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도대체 몇입니까?
그뿐입니까?
랄라님 가족, 현호랑 현석이 챙겨서 나오신 창동님, 정미혜님, 마음님까지 속속 도착하니
금시에 서른 명을 훌쩍 뛰어넘는 대부대가 하나 탄생하더이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밭뙈기부터 보게 됩디다.
이 큰비에 몽땅 무너져내린 것은 아닌지, 지난 주에 뿌린 씨앗이 떠내려간 것은 아닌지...
하지만 이런 걸 걱정도 팔자라고 하나요?
고랑에 물이 고이기는 했지만 밭도 멀쩡, 씨앗도 멀쩡.
아니, 고놈의 씨앗이 벌써 싹까지 틔운 걸 보니 우리가 시방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였는지
고개만 주억거려지는 거 있죠...
하지만 여전히 비는 줄창 내리고 밭 갈기엔 무리여서 예정대로 삼겹살 파뤼를 진행했습니다.
창고를 대충 정리해서 자리를 만들고 아미모 식구들이 바리바리 싸온 도시락들을 펼치니
그것만으로도 한상인데, 가족당 1만원씩을 갹출해서 삼겹살도 사고 번개탄도 사고 모자란 상추도 사고,
아미모 모임에서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맥주 댓병에 막걸리도 두어 병 겯들이고...
바깥에는 비가 한창인데 한쪽에서는 불이 지펴지고 돌판이 달궈지는가 싶더니
그 위에서 삼겹살이 연신 뒤척이고,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구워지기 무섭게 사라지는 고기들...
여섯근은 족히 되는 삼겹살에 잡곡밥, 현미밥, 고구마, 옥수수, 꼬불쳐온 고추장 삼겹살까지...
아, 그 많던 수박은 누가 다 먹었을까? ^^;;
또래 친구가 많은 아이들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저희들끼리 몰려다니고,
창고 한편에 놓인 펀치볼을 치느라 정신을 잃은 아이들, 그리고 철없는 어른 두엇~!
비는 여전히 쏟아붓고 창고 안팎을 드나드는 아이들의 머리는 홈빡 젖고
어른들도 덩달아 신나는 하루였습니다.
더욱이 참석한 가족 모두에게 잎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돋는다는 '기적의 잎' 나누기는
오늘의 하일라이트였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선우아빠, 오늘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물에만 담가노믄 이파리가 난다고라~ 하이구, 성님 이걸 누가 믿어라~'
비 때문에 비록 땅을 파지는 못했지만 어른들의 가슴에는 따뜻한 이웃을 심고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환한 웃음을 심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날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배움에도 때가 있듯이 농삿일에도 시기가 있는 법인데
주구장창 내리는 비 때문에 그 시기를 맞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또 우리 같은 '놀장주의자'들의 속도 이렇게 타는데
하물며 그것을 업으로 삼는 분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은 안타까움이
진한 하루기도 했습니다.
행여 남들보다 뛰어난 신통력이 있다거나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내 기도만큼은 특별히 잘 들어주신다 하는 분들 계시면
부디 오늘부터라도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아니라 '쨍하고 해뜰 날'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놈의 비 때문에 가슴까지 눅눅해져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