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장 13-16절 더 낳은 본향
일전에 해병대 지원하는 병사들이 하도 많아서 그중에 나라사랑, 부모 사랑하는 사상이 투철한 사람을 모집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보모님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부모님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청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부모를 확인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내 부모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사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엄마이름 다 알아요? 아빠이름 다 알아요? 아멘을 안 하는 것을 보니까 여러분들도 입양해서 오셨나봅니다?
선배 목사님 중에 정철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군대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누가 어린아이를 그 집 앞에 두고 갔습니다. 고민하다가 이 아이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고 이 아이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1학년인데 가끔 목사님을 뵈면 이 아이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데 보통 30-40분씩 통화를 합니다. 전화기 내용이 들리잖습니까? “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하고 통화를 하는데 얼마나 부러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를 는 것이 재미가 있는가? 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우리도 하나 데려다가 살아야 갰습니다. 질투가 납니다.
전도를 못할 바에는 입양해서 잘 기르자고요! 외국으로 보내기 전에 말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kbs에서 입양되었다고 자신을 낳아주고는 버린 부모님을 찾는 분들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뭐 하러 버린 부모를 찾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도 같은 처지가 되면 남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뭐 하러 그런 생각을 하느냐! 어린 나이에 나를 부모가 버린 그것을 뭐 하러 찾으러 다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나뿐 부모를 찾아서 뭐 할 거냐?
그냥 내가 호주에서 좋은 부모 만나서 살고 있고, 부자로 살고 있고, 물질의 여유 있으면 되었고, 거기서 그냥 살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처지에 처하여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처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막상 이러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면 누구든지 자기의 뿌리에 대한, 자기 근본에 뿌리에 대한 갈증이 그 사람의 마음의 속에서 본능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육신의 세계의 고향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1.본향은 무엇인가?(15-16절)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이란 무었입니까?
본향이란 헬라어로는 patriv" patris {pat-rece'} 파트리스입니다. 이는 “pathvr 파테르”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이는 기본적인 단어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또는 부모라는 뜻입니다.
이에서 ‘파트리스’조국, 고향이라는 뜻입니다.
1)메소포타미아가 본향이나, 천국이 본향이냐
16절을 보세요. 여기 “저희가”란 누구를 가르키는 것입니까? 앞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조국이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입니다.
창세기11장 31절입니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아브라함은 본향이 있었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11장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하여 알수가 있습니다. 11장9절입니다.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우거하여”라는 말은 나그네처럼 기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외방”은 외국 땅이라는 것입니다.
“장막에 거하였으니”는 이들은 부자입니다. 집을 짓고 살만한 돈이 있는 분들입니다. 궁궐을 짓고 살수 있는 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주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장막에 살았습니다. 텐트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 가나안 땅에서 메소포타미아 즉 갈대아 우르는 약 4000리길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수 있는 곳입니다. 15절을 보세요 “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아브라함은 안 것입니다. 여기가 본향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2)더 나은 본향-하늘에 있는 것이다
육신의 고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낳은 영혼의 고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찾으려고, 고향의 자기의 뿌리를 찾으려는 그러한 갈증을 일으킵니다.
이와 같이 영혼의 고향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본향,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크지만 우리 인생에 우리 속에 깊은 갈증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따라합시다. “영혼을 그리워하는 마음”
육신의 명절이 되면 누구를 만나러 갑니까? 부모님 만나러 갑니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저는 부모님 만나러 고향에 갑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없는 분들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고향이 아닌 것 같다는 것입니다. 내 어린 시골 개복제 친구들을 보시면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은 이분들은 설날이나, 추석이 되어지면 은 고향가자 그러면 난 안 간다는 것입니다. 왜? 엄마 아빠가 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있을 때에 고향이 그립더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고향도 사라지는 것입니다.75세에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부모의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젠 고향이 사라진것입니다.
이젠 저의 마음에 하나님의 고향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돌아갈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고향은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하면은 영원한 본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나라를 말한다고요?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두개의 고향이 있는데 첫 번째의 고향은 육신의 고향입니다. 두 번째의 고향은 무슨 고향입니까? “천국 본향”,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바로 천국본향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여기 사모한다는 것은 열렬히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아주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어지면 다 고향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이나 생물이나, 짐승이나 모든 것들이 본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에 육신의 고향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갈증이 있는데 ‘하늘에 대한 본향’ 다시 말하면 ‘영원한 본향’
다같이 따라합시다. “영원한 본향” 무슨 본향이요? “영원한 본향”
‘영원한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 영적인 고향, 이것은 예수 믿고, 하나님을 믿고,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천국에 대한 갈증은 다 해소가 되어집니다.
비록 육신의 몸은 땅에 있지만은 이미 영은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본향, 천국에 가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증을 해소한다는 것입니다.
뭘 믿으면? 예수 믿으면,
성령 충만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갈증을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온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기를 축언해 드립니다.
2.본향을 찾는 사람들의 특징(13-14)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우리가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어느 나라를 가게 되면 입국카드를 작성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주로 네 가지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출발지 :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②목적지 : 당신은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③여행 목적 : 당신은 무엇 하러 가십니까?
④체류 기간 : 당신은 언제 돌아 갈 것입니까?
이 모든 내용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임시 체류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1)믿음으로 죽었다.-약속을 받지 못했다.
13절 상반절을 보시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본향에, 천국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란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을 가리킵니다. 천국을 보장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너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약속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다시 말해서 히브리서11장 1절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본향을 멀리서 바라 본 자들
두 번째 특징은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뭘 보았습니까? 본향, 영혼의 본향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보고”라는 단어는 응시하다는 말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는 직시한 것입니다. 육신적인 감각으로는 볼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감각으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고향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곳일수 있지만 영혼의 고향은 이 땅에 오직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안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3)본향을 환영한자들
여기 “환영하며”라는 단어는 “확신을 가지고 끌어 앉는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는 멀리서 직시한 것이었다면 이것은 본향을 끌어 앉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처음에는 너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이젠 그 사모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본향을 확신하면서 끌어 앉게 된 것입니다. 내것이 된 것닙니다. 그 사모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천국을 내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4)자신을 땅에서 외국인, 또는 나그네라한 사람들
4번째 특징은 자신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한 말인데 창세기23장 4절을 보시면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야곱이 바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47:9“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그들이 이 땅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나그네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참된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속에 예수가 오면은...,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은, 영원한 본향,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여러분의 가슴에 와서 채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환경을 이길힘이 생깁니다.
누가 조금 뭐라고 해도 신경 안쓴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평수가 조금 더 크고 작은것에 신경안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냥 씩 웃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이런 말은 합니다. 심방을 해보면 성도들 중에 같이 여자 집사들과 심방할 때 심방 받는 집이 자기 집보다 평수가 작으면 할렐루야 하고 찬송이 막 터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집보다 평수가 조금 더 커 지면은요? 얼굴이 울구락 불구락해지고, 거기에 자개장까지 하나 더 있고그려면은요 열 받아서 찬송이 막..,
여러분 이 영원한 본향이 가슴에 와서 채워진 사람들은요 그런 것을 그냥 씩 웃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냥 웃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땅에 평수를 널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씩 웃으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평수가 넓어지시길 축언해 드립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오늘 내가 짖지 아니하는 하늘의 장막,
더 낳은 본향에 관심이 있기를 축언해 드립니다. 더 낳은 본향,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관심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해 드립니다.
많은 선진들은 그렇게 보고 신앙의 옷을 입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외국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가야할 곳은 안식이 있는 우리게 영원한 안식을 줄수 있는 곳은 영적인 고향, 영원한 본향, 천국, 하나님의 나라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 하나 때문에 내가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 때문에 그 바뿐 시간 가운데 여기 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이유가 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날, 구별되고, 성별된 날에, 내가가야할 본향, 저 천국을 그리면서 살면, 여러분의 신앙이 부패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병 고치려고,---그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심해서요,---심심한 사람도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교양 있어 보여서요, ---그런 이유로도 다닐 수 있습니다.
잘 살려고, 다 좋습니다. 그러나 첫째 이유는 저와 여러분이 어떤한 일이 있어도 더 낳은 본향 때문에 교회를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목사하려고 합니까? 더 낳은 본향이 있으니까요 하는 것 아닙니까!
누가 이짓 하려고 하겠습니까? 오늘 같은 날 아들들 데리고 수영장 가서 수박이나 깨 먹으면서, 참외나 깨먹으면서, 놀고 있지...,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 영원히 못삽니다. 그렇습니다.
옆 사람에게 “이 세상에 영원히 못살아요”라고 말해보세요.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낳은 본향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왜 매 주일 일요일이 되면 이 날을 주일날이라고 해서 교회당에 오는지 아십니까? 육신의 명절이 되면 고향에 모든 고향사람들이 모이듯이 모여서 새로운 소식을 듣듯이 저 천국의 더 낳은 본향의 고향 소식을 들을려고, 모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에 더 낳은 본향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부패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제일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그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길 축언해 드립니다.
아무리 세상에 바삐 살아도 다시 이야기 하면 더 낳은 본향, 천국, 하나님의 나라 여기에 주심을 두어야지 이것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여러분 모든 것이 다 실패입니다.
더 낳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해 드립니다.
영원한 본향에 갈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하여 초연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그렇게 각박하게 살지 안는다는 것입니다.
짜증나게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와 여러분은 갈 곳이 확보된 사람들입니다. 갈 곳이 어딥니까? 더 낳은 본향,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렇게 아옹다옹 싸우지 않습니다. 자식들과 그렇게 싸우지 않습니다. 아내하고 아옹다옹 싸우지 않습니다. 남편하고 아옹다옹 싸우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초연합니다. 그냥, 씩하고 웃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여름에 휴가들 다 가십니까? 안가십니까?
여러분 가서 다들 파라솔 칩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파라속이 비교됩니다. 어느집은 아주 비싼 그리고 멋있는지 파라솔, 어느집은 도데체 몇 년이나 사용했는지 누런 파라솔.., 그래봤자, 그래봤자..., 휴가 3일 끝나면 다 싸고 들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철수하는 날은 3일입니다. 3일 뒤에 다 끝나니까 아옹다옹하지 말아요. 3일되 철수하게 되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나라,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화보된 사람들은 삶이 다른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른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소원합니다.
영원한 본향..., 영원한 본향이 확보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섭섭한 일을 당해도, 괴로운 일을 당해도, 손해보는 일을 당해도,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있어도, 그래도 괜챦습니다.
얼굴이 좀 덜 예뻐도 ?I쟎습니다. 왜? 3일이 되면은, 휴가 가서 모든 것을 철수하듯이 끝나는 일입니다. 가는데가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얼굴이 좀 덜 예쁘면 어떻습니까? 거기에 수천만 원을 들여서 공사를 합니다. 요즘은 몸에 칼 안데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갈 곳이 따로 있습니다. 거기 가서 저와 여러분의 성공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영원한 본향을 알고 살고 있습니까?”
오늘날 수 많은 성도들이 영원한 본향,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땅에 사는 삶에 너무 나 집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평수를 한평더 넓힐려고, 아옹다옹한다는것입니다.
마태복음6장33절을 보세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옆 사람에게 말해 보세요 “두 평 가지고 싸우지 마세요” 요한일서2장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두 평 늘리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두평 늘리면 또 두 평 늘리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스
이미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옹다옹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5장1절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여기를 보시면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가 살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축입니다. 신앙의 기둥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기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종교 강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양 강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분이 있나요?
3.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16절 하)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기뻐하신다.
16절 하반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출애굽기 3: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하나님은 믿음으로 죽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길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3장 15,16절“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이들이 죽은자가 아니라 산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죽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어 소멸된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육체는 이미 썩은지 오래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과 오래있을 뿐만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2)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한 성을 예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았던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하늘나라에 '한 성'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