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글뜰 19집에 실렸던 구은순(자영)의 '텃세'를 다시 읽었다. 며칠간 입원 하면서 가져간 <選隨筆>에 실려 있었다. 전에 읽을때도 괞찮은 글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새삼 글의 내용과 문장을 꼼꼼히 되짚어 보게 되었다. 구은순 특유의 잔잔한 문체에 일터 주위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따듯함이 배어 있다.
고양이와 까치의 영역 싸움은 한 폭의 동양화 '묘작도(猫鵲圖)'로 그려지며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고, 날짐승과 들짐승의 싸움에서 구은순은 정치꾼들의 행태와 살벌하게 변해가는 사회상까지 읽어 낸다.
남편과 함께 논밭에 나가 농사 지은 애호박과 토마토와 가지를 따고, 밭둑에 앉아 냉수 한 컵 들이켜는 모습은 자연속에 녹아들어 풍경화가 되는데, "으이그 곰탱이, 숨겨진 야성은 언제 쓸 작정이야." 한 마디가 잔잔히 흐르는 계곡 물속에 던진 조약돌의 "퐁당"소리처럼 청량한 느낌을 준다.
점점 늘어가는 자영의 글 솜씨에 박수를 보내며~
* 책에도 있고, 카페의 동인지 자료실에도 있는 내용을 여기 싣는 이유는 다시 한 번 읽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텃세
구 은 순
남편이 논을 돌아보는 사이, 언덕배기를 덮고 있는 호박덩굴을 헤쳐서 애호박도 따고 토마토와 가지도 챙겨서 바구니에 푸짐하게 담았다. 농막 아래 앉아 냉수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니 몸에 찬 기운이 돋는다. 후끈한 대기의 열기로 반쯤 녹아버린 살얼음 같은 낮달이 동산 위로 투명하다. 나른한 권태마저 밀려드는데 산자락에서 심상찮은 까치 소리가 들린다.
산으로 이어지는 밭 자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긴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며 걸어가고, 그 뒤를 까치 두 마리가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고 있다. 음영을 드리우기 시작한 여름저녁을 배경으로 그것들의 하는 냥이 한 폭의 그림처럼 녹아있어 ‘그래, 저렇게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조물주의 뜻일 거야.’ 하며 지켜보는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느닷없이 까치가 고양이를 향해 덤벼든다. 고양이는 별 일이 아니라는 듯 잠시 멈춰 긴 꼬리를 두어 번 흔들 뿐 감춰진 발톱을 보이지 않는데, 까치들은 쇳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곤 뒤 떨어져서 딴청을 부리더니 고양이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몸을 튕기듯 통통거리며 고양이를 바짝 쫒는다. 평화의 산책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몸짓이었을까. 그러나 먹이를 가지고 싸우는 것 같지도 않고, 고양이는 전혀 싸울 의사도 보이지 않건만 텃세라도 부리는 건가.
뒷동산 까치 울음에 설레며 잠을 깨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까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청랑하고 예감이 좋았다.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왔고 의리와 온정의 상징으로 한 때 국조로 등극하였더니, 요즘에는 그 원성 만 자자하다. 과수원에는 새들을 경계하는 그물망이 쳐진지 오래고, 파종해서 싹이 틀 때까지 농부들은 그들과 신경전을 벌여야만 한다. 번식력도 강하고, 저보다 큰 포유류에게까지 덤벼드는 걸 보니 생존의 저력까지 갖춘 듯한데, 살 터전은 더 열악해지고 있으니 살기 위해 사나워져야 하는 건 필연일지 모른다. 날짐승의 본성조차 변하게 만든 것이 사람의 과욕이었나 싶다. 고양이와 까치의 상황이 반전될 만도 한데 양쪽 다 옹고집이다. 나도 모르게 “으이그 곰탱이, 숨겨진 야성은 언제 쓸 작정이야.” 하며 중얼거리는데, 한 동안 개운치 않게 고여 있던 기억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친정 옆집에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시의 좋은 직장 마다하고 몇 해 전 시골로 내려온 사람들인데,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대안학교도 열고 쓸쓸한 노인들에게 야생화 화분도 나누어주는 고운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살가운 이웃으로 지내는 그들에게 나도 정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간 친구 중 하나는 그 동네 사람들이 지나치게 간섭하고 트집을 잡는 바람에 결국 떠났다고 한다. 고향의 인심을 믿고 싶은 나는 시골사람 특유의 호기심이 지나쳤던 모양이라고, 그저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이거니 하며 좀 더 애써볼 순 없었겠냐고 했지만, 텃세 때문에 떠났다는 이들을 생각하며 편치가 않았다.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각가지 사회적 갈등을 누구나 염려하는 요즘이지만, 유엔에서조차 우리의 민족 우월주의를 우려한다니 이제 집안일만도 아닌가 싶다.
까치가 가소롭다는 듯 꼬리를 곤두세우긴 하지만, 지칠 줄 모르고 쫓아오는 그 집요함에 포기하고 싶어지는 모양인지 고양이는 어슬렁거리며 산으로 들어간다. 그제야 놈들은 나무 위로 올라 한바탕 승리의 찬가를 드높이는데 주변에 있던 놈들까지 덩달아 합세한다. 느긋한 걸음으로 거만을 가장하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고양이의 뒷모습이 처량한 영상으로 남고, 문득 정객들의 동네가 거기 떠들썩하게 우화로 그려진다.
근무하는 곳 뒤에는 조그만 동산이 있어서 뭇 새는 물론 다람쥐나 청설모도 쉽게 보는데, 이상하게 동물들에 사람의 모습을 빗대어 생각할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잣나무를 향해 달려오던 청설모와 눈이 마주쳤는데, 내 눈을 얼른 피하지도 않고 노려보기에 나도 따라 보다가 맥없이 웃고 말았다. ‘다람쥐들의 먹이를 다 빼앗는 염치없는 놈들이 힘 가진 자의 오만한 눈빛까지…’ 하면서 나도 따라 눈싸움을 한 것이다. 또 유난히 살이 쪄서 뒤뚱이는 까치들을 볼 때는 탐욕스런 인간의 유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습이 생소하다고 한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습성이거나 진화일 뿐, 편 가르기로 치닫는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새소리조차 빗겨 들은 건 나이고, 시끄러운 세상사에 눈과 귀가 시달려온 탓인 것을.
땀을 닦으며 남편이 어둑해진 논길을 걸어오고 있다. 부지런히 먹이를 찾던 해오라기도 논을 떠나 어디론가 유유히 날아간다. 그 평화로운 논둑 너머로 까치 울음소리가 여전히 들려온다. 고양이도 자취를 감추었건만 무얼 가지고 저리 또 시끄러운 것인지. 마음까지 맑게 씻어주던 옛날의 그 까치 울음소리가 새삼 그립다.
첫댓글 소곤소곤 속삭이듯 엮어나가는 맑은 글솜씨가 정겹습니다. 그러면서도 드러나지않게 하고픈 말을 그려내는 자영님. 잘 읽고 갑니다.
자영의 모습과 잔잔한 글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도 자영에게 더욱 빛나는 글을 기대합니다.
전원과 자영언니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잔잔한 모습이 그려지네;요....잘 읽었습니다.
제가 처음 파주문학회 수업을 하러 신회장님댁에 갔던 날이 생각 납니다. 누군가가 전해 준 작은글뜰 14, 15집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영언니의 틈새로 보는 세상이라는 글이 자꾸 눈에 들어왔죠.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회장님댁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처음 수업하러 간 날이기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글 참 좋았어요." 하고 말았지만, 자영언니 글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좋다~ 자영.......꿈도 실현하고 가정도 가꾸고~
뱀과 돼지의 이야기,쥐와호랑이 이야기 모두 함께 나오는 데요 그리고 코끼리 이야기.
오랜만에 들어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역시 저력이 보입니다 자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