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미지근한 신앙인이여 -데린쿠유를 기억하라. 글/사진: 이종원
위르귑 아침 산책 어제밤 동굴카페에서 12시가 넘도록 놀다가 호텔로 돌아와 꼬꾸라 졌는데 새벽 5시가 되니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아무리 버터 바른 빵을 뱃속에 우겨 넣어도 김치와 된장으로 무장된 나의 몸시계는 며칠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눈이 소복히 쌓여 새벽 벌룬투어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트린 것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마 공중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를 경치를 내심 기대했것만.... 오늘도 변함없는 아침산책을 나서려는데 어제밤이 과했나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맵시님이 동참을 했다. 먼 타국땅에서 눈길을 헤치며 남녀는 걸었다. 갈 곳도 없다. 발길 닿는 곳이 바로 나의 목적지니까...카파도키아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 그렇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바위가 보여 그곳을 등대 삼아 걸었다. 역시 개미집처럼 굴을 파 놓았다. 바위가 높아 꼭대기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요충지다.
우유 배달원처럼 위르귑 시내를 휘젖고 다녔다. 이른 시간이라 개미 한 마리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유럽의 어느 한적한 마을이 아니라 서부영화에 나오는 텍사스같다. 저쪽에서 황야의 무법자가 권총을 들고 나올 것 같은....상점의 유리창 너머 뭘 파는지 기웃거리는 것도 재미있다. 핸드폰은 귀한 물건인지라 가죽 껍데기를 파는 곳이 많았다.
위르귑은 작은 도시다. 민초들은 주로 이런 산동네에 터전을 일고 산다. 이젠 지겨울 만한 바위주택도 보인다.
바위산 정상에 오르면 카파도키아 남부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안타깝게도 눈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wish-hill도 어제밤 바위가 무너져 굳게 닫혀 있다.
산을 내려오다 보니 동굴 호텔이 눈에 띈다. 나중에 혼자 배낭여행 오면 이곳에서 묵어야지. 이젠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도저히 걸을 힘도 없어 택시를 탔다. 어제 밤에 호텔까지 4리라를 주고 탄 것을 알기 때문에 ...기사에게 미리 선수를 쳤다. "4리라, OK?" 그랬더니 택시운전사가 좋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제밤은 할증이 붙어서 그렇게 나오고 낮에는 훨씬 싸다고 한다. '아이고...내 꾀에 내가 넘어갔네.'
아침산책을 해서 그런지 배가 무지 고프다. 실컷 먹고...객실화장실에서 즉시 빼 버렸다. ..터키에서는 먹는 비용말고도 빼는 비용도 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에 꼭 들러야 한다.
3자매 봉을 들렸다. 세자매가 무진장 쌀쌀 맞나보다. 눈보라가 횡하니 부니까...
데린쿠유 지하도시 버스는 30분쯤 눈보라를 뚫고 남쪽 데린쿠유마을에 에 닿았다. 이런 험악한 날씨에 우리가 갈 일정이 지하도시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오늘 파샤계곡이나 괴레메가 일정에 잡혔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데린쿠유는 겉보기에는 별볼일 없는 작은 마을이다. 화장실 딸린 매표소 건물만 달랑 서 있어 지하에 거대 도시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앞에 있는 작은 문이 지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제 슬슬...내려가보자.
높이 150cm, 너비 60cm의 작은 굴이 거미줄처럼 수 십km나 이어졌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선명한 신앙의 발자국이 보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들이 오르내렸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데린쿠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이다. 60년대 어린 목동이 양 한 마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하도시는 일반인에게 공개된지는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고 수 천년 동안 어둠속에 묻혀 있었다. 지하 8층까지 발견되었지만 아마 17~18층(120m)까지 추정하고 있으며 땅을 파면 팔수록 신앙의 깊이는 깊어만 간다. 9km나 떨어진 인근 카이막르 지하도시까지 연결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나 대담성을 생각해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데린쿠유만 총 2만명을 수용하는 규모라니 경북 영양군에서 온 달새님이 한마디 던진다. '영양군 전체 인원이 2만명이 안되는디....' 아나톨리아 기독교인들은 1~3세기동안 로마인들의 침입으로 땅속으로 지하도시를 만들고 이곳에 피난 왔다. 근처 카이막클리와 오느코낙등 30여 개의 지하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기독교들은 빛 한점 없는 이 암흑도시에서 무슨 희망으로, 어떤 힘으로 살아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들의 살가운 삶을 만나 보고 싶다. 평생을 바위굴에서 살다가 아무 희망없이 죽어간 사람을 보면서 살아갈 맛이 났을까? 그 신앙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신앙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직경 1.5m의 무게 300kg의 둥근 멧돌형 돌빗장이 가로 막고 있다. 위급할 때 안에서 그 돌로 통로를 막음으로써 통행을 차단했으며 중앙부의 구멍을 통하여 침입자를 감시했다고 한다. 필요시 긴 창으로 적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지하에 있는 도시는 사계절 14~15도을 유지했으며 기름등잔의 열만으로도 충분한한 난방이 가능했다고 한다.
포도주 공장이다. 위에서 포도를 쏟아 부으면 창고로 쏟아지며 그 곳에서 예쁜 처녀가 포도를 밟으면 즙이 옆 배수구를 통해 아래로 가죽부대로 떨어져 오랫동안 보관한다고 한다. 아가씨의 발냄새가 잘 스며야 포도주 맛이 좋다고 한다. 동물들에게도 포도주는 신경안정제다. 가축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우성치면 포도주를 먹이면 한동안 조용했다고 한다.
아래로 연결된 통로. 미로로 이루어져 화살표시가 없으면 잃어 버리기 쉽상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도 보이고 적을 유인해 나락으로 빠뜨리는 함정도 보인다. 무릎 높이의 홈을 판 성냥갑 형태의 침대도 보이고, 어깨 높이의 홈에는 투박한 십자가를 세워 놓았을 것이다. 처음 발견시 가재도구나 가구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자 다함께 자유를 찾아 굴을 빠져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 백년간 암흑속에서 살다가 '신앙의 자유'라는 은총을 받고 땅 위에 올랐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 볕이 드느 땅 위가 바로 천국으로 여겼을 것이다.
지하도시의 허파역을 하고 있는 통풍관이다. 바깥세상과 연결한 유일한 통로다. 이런 통풍구는 무려 56개나 뚫려 있으며 지하도시의 숨구멍 역을 했다. 수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우물도 여럿 있다. 독약을 탄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럿 팠다고 한다. 늘 바깥세상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곳은 천문관측대 역할도 했다고 한다.
통풍관 아래 역시 까마득하다. 급한 일이 있을 때 이 고속도로를 통해 위급함을 알렸다. 자세히 보면 홈이 파여있어 위아래로 재빨리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으며 물건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줄이 매달려 있었다.
초대교회의 지하예배당이다. 십자가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수많은 신자들이 옹기종기 앉아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며 신앙의 힘을 키워 나갔다. 나약한 신자들에게는 용기를, 죽은자에게는 영생을.... 괴레메 야외성당처럼 프레스코화나 벽에 그린 성화도 없다. 오로지 말씀과 믿음 그리고 순명만으로 신앙을 이어나갔다. 정갈하고 무덤덤한 분위기가 좋다.
옹기에 십자고상을 넣고 복음을 전파한 우리네 선조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투박한 질그릇, 진흙으로 만들어진 십자고상을 지하동굴에 옮겨놓은 것 같다.
\ 매를 맞는 장소란다.
돌아온 탕자 맵시님이 부른 성가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천상의 노래가 주는 감동이 이렇게 크다.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 편장에서 많은 반성을 했으리라 믿는다. 저절로 무릎이 꿇려지고 두 손이 모아진다.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 카메라 장비도 무거운데다 몸까지 무거워서 이동할 때마다 여간 고역이 아니다. 만약 내게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분에 못이겨 뛰처나갔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어렵게 얻은 종교의 자유인데......지금 나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신앙은 쟁취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 '
한땀 한땀 바위를 파낸 흔적이다. 그 눈물과 땀방울은 믿음과 확신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파낼 수 없다.
엉금엉금 스머프가 되어 다시 올라왔다.
신앙의 도피처가 아니라 작은 공동체였다. 신학교는 제일 위층에 자리잡고 있는데 물을 받아 세례를 줘야하기 때문이다. 학교답게 바위도 홍예로 다듬어 놓았다. 자식이 태어나도 신앙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은 이런 철저한 교육의 효과가 아닐까? 뒤쪽 높은 곳이 선생님이 수업을 했던 곳이다.
학교옆은 양,말,노새를 기르른 구유가 자리하고 있다. 적이 공격해올 경우, 제일 먼저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말리던 짐승의 배설몰을 입구에 던졌으며, 2단계로 이 짐승들을 마구 소리처 소란스런 소리를 내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알림으로써 안에서 피신할 시간을 벌개 해주었다.
곡식을 저장해 두었던 창고다. 동물들 틈에서 잠시 눈을 붙였던 목동이 떠오른다.
출구로 나왔다. 입구와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 바깥세상에서 도무지 지하에 거대 도시가 있다는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도시 위에는 그리스 정교회가 서 있는데 그나마 그리스인들이 쫒겨나면서 텅빈 건물만 외롭게 서 있었다. 어떻게 얻어낸 신앙인데....
이제 버섯도시 카파도키아를 떠나야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창조주가 만들어낸 황홀한 버섯바위가 있었고, 바위 끝까지 목숨을 이어가는 살가운 삶과 그리고 암흑세계에도 변치 않는 신앙인이 있기에 난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 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내 심장 깊숙한 곳에 박혔다. |
- byeon -
|
첫댓글 대장님도 데린쿠유에서 많은 느낌을 받으셨군요.. 저도 역시...
그 날의 감동과 내 마음속 회개...다시한번 다잡아봅니다..흐르는 찬양이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저도 여행하며 그생각했어요. 신앙 생활 참 편하게 하고있다고요.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말씀 동감입니다.
감동의 시간은 다시 이렇게 이어지는군요.
내 삶을 되돌아 보게한 시간이였습니다.
나에게 정말 딱 맞는 저 벌 받는 기둥...어쩜 표정도 정말 괴로워 하는것 같네요,,나의 진심 어린 얼굴일겁니다~막강한 신앙의 힘~~나도 본 받고 싶어요...^^
십자가를 볼수 없는 터키땅....데린구유 지하도시,..이곳의 핍박으로 인해 예수님이 내게 오셨음을 느낀곳.. !!...감사드립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이 있던 곳....고개가 절로 숙여지던 순간들....감사하단 생각이 머리를 채웁니다~~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사진 '길'과 '터키 땅을 밟으며' #1부터 #6까지 아름다운 사진과 감동어린 글을 감명깊게 잘 보았습니다. 저는 92년에 친구들과 네명이서 오붓하게 갔다 왔는데, 그때의 감동이 새록 새록 다시 돋아 납니다.
한국에서 댜녀본 영풍성지 .천진암 미리내성지...를 돌아보면서 정말 신앙을 지키고자 선조들의 피나는 아픔과 죽음이 있었구나 느꼈는데 데린쿠유에도 그런 아픔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새느끼면서 전률을 느끼게 했다.신앙이란 무엇일까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머라를 숙일 수 있도록 감명깊게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옷맴무새를 고치고 손끝을 모아 신앙에 대하여 깊이 반성 해 봅니다
어렵게 지키며 존재해오던 그 신앙의 지하도시~ 감동의 신심으로 답사하신 님들이 행복하십니다 영상 고맙습니다
이스탄불에서만 2박했는데 사진을보니 카파도키아 엄청가고싶네요..........잘봤습니다........
내일이 부활절인데 지금의 내 신앙은 어디까지 섰는가?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렇게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데린구유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생각하고 다짐할수 있도록 사진속의 모든것 대장님 정말 존경합니 다. 흐르는 찬양에 더욱 숙연해집니다
글 잘 읽고있는데....자꾸자꾸 부럽고 아쉬움이 생기네요..잘 다녀 오셔서 반갑습니다. ~~~
잘 보고 물러 갑니다
작년 여름에 여길 다녀왔는데, 눈덮은 카파토키아는 새로운 매력이 있네요. 잘봤습니다,
다녀온곳인데,,, 감회가 새롭네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음미하고 싶어서제블로그로 옮겨갑니다.~.~
이렇게 까지 신앙을 지켜낸 그들을 생각키우니 한 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나의 모습이 깊숙이 머리 숙이게 맹급니다. 이 영상과 찬양을 통해 다시 인도하심을 입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갑니다.^^
작금의 나의 신앙생활을 다시생각하게된 정말 산교훈의 현장을 볼수있게 해주신,, 대장님 모든대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언제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가보고 싶은곳의 1순위로 정했습니다 모두들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나날이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