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융복합시대이다. 퓨전, 컨번젼스라는 말이 유행이다. 학교에서 공대생도 경영학을 배운다. 공학의 문턱에서 경영이 만난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인문학도들도 경영을 배운다. 경영학도들도 인문학에 심취하고 있다. 학교, 단체마다 인문학 강좌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공자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군자를 제시했는데, 군자는 한 분야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논어 『위정편』에서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자신의 용도에만 걸맞은 것만 담아내서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군자불기(君子不器)를 주장했다. 아울러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가 다원화되어 가고 경영환경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영역 이외의 다른 분야에도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소위 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이제는 어느 한 가지 전문적 지식만 가지고는 창조적인 역량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다양한 전문적 지식이 합쳐져야 한다. 현대사회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획득하고 각각 협력해 서로의 다른 영역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21세기의 사회문화 트렌드는 바로 ‘통섭(Concilience)’이라고 생각한다. 통섭이란 단어의 원어 콘실리언스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윌슨(Edward O. Wilson)이 모든 학문에 공통되는 사실을 언급하는 19세기 때의 단어를 복구한 것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2005년 그의 스승인 윌슨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개념어로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통섭(統攝)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학문 간의 자유로운 넘나듬이나 소통의 의미로 ‘Concilience’라는 개념을 번역하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컨버젼스(convergence), 퓨전(fusion), 인터그레이션(integration) 또는 통합, 융합, 융복합, 병합, 합일, 통일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개념 설명상 의미전달이 부족하고 불편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한자를 조합했다 한다. 통섭이라는 말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는 범학문적 연구, 즉 지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최 석좌교수는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즉, 전문가의 시대에서 통섭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고, 동·서양이 만나고, IT와 디자이너가 만나야 더 큰 창조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소위 창조경제도 지식의 통합 즉, 융복합이 핵심요소이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을 의미한다. “지금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며 "과학기술과 정보 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만들어 내자"고 보면, 창조경제 시대에 필요한 인재형은 『논어』의 군자불기의 인간형에 비유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과 경계를 풀고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통찰, 유연성이 필요하다.
▲ 반기문 UN사무총장 <뉴시스> |
IT와 융복합의 성과로 세계와 한국의 캠퍼스를 연결한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2011년 9월 15일, 세계평화의 날 30주년을 맞아 경희대학교가 UNAI(UNAcademic Impact)와 공동으로 “평화의 미래, 대학의 미래(Give Peace Another Chance)”란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2010년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주도해서 설립한 UNAI가 그날의 취지를 실행에 옮기는 첫 번째 국제회의로 “고등교육이 특정 주제에 지나치게 몰입해 더 크고 인간적인 가능성이 배제되고 있는 오늘날, 교육의 진정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21세기 미래대학의 가치와 역할을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반 총장은 한국 정부를 대표해 30년 전 '세계평화의 날 제정' UN회의에 참여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개회사를 통해 “고등교육이야말로 민주주의 확산과 평화증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민주적인 절차를 앞장서서 주도하고 만들어나가는 주체가 바로 학생들이어야 한다”면서 “강의실에서, 사회에서 우리 모두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환경을 개선해 무엇보다도 평화증진에 앞장서자”며 행동하고 실천해줄 것을 촉구했다.
세계 석학과 외교관, 평화운동가들이 참석한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서울과 뉴욕을 이어주는 웹캐스트를 통한 쌍방향 질의응답으로 열기를 더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21세기의 실질적 화두인 ‘Convergence(융합)’라는 단어가 진정한 대학생들과의 화합, 토론의 장이 계속되길 기원한다”면서,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욱 많이 늘어나 해외에 나가야만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머지 않아 우리나라 안에서도 세계를 볼 수 있는 날이올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인권, 인간존중, 포용 등의 중요성을 이론으로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캠퍼스는 기초과학 연구와 삶의 현장실천력을 훈련하는 장소여야 함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과 과학기술을 축으로 융합해 기존 주력산업 및 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임을 볼 때 비록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사례이긴 하지만 미래 창조경제 시대에 큰 역군이 될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초전문가 시대에는 워낙 하나의 지식과 경험만을 가지고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시대에 적응할 수가 없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창의적이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주어진 환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 자신의 전공을 보다 심화시키는 일자형 노력은 물론 다양한 지식을 쌓는 통합형 인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 마디로 T자형, 통합형 인재, 공자가 말하는 군자불기의 통합형 인재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는 때이다.
<김의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