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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설화 연구
-최 운 식-
1. 머리말
조선 선조 때의 인물인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은
이인(異人)으로,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예언․기지(奇智)․신술(神術) 등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는데, 이런 설화를 연구하는 것은 실존 인물인 토정에 투영된 한국인의
의식과 문학적 형상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토정 이지함과 관련된 연구 논문은 토정 이지함의 가문과 학통(學統),
시대적 배경과 유학의 동향, 경세(經世) 사상을 검토한 논문이 있다.
그리고 전설에 나타난 토정의 삶과 전설의 형성 과정을 고찰한 뒤에
허생과 이토정을 비교한 연구, 토정 이야기에 나타난 이지함의 세계관을
고찰한 논문, 토정 설화의 문헌자료와 구비자료를 개관한 뒤에 이 설화의
구의 구조와 의미를 분석한 논문, 설화에 나타난 토정의 모습을 분석한
논문 등이 있다. 이들 연구는 역사적 인물인 토정 이지함과 이지함에
관련된 설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토정 설화에 투영된 ‘민중’의 의식과 토정 설화와 소설의 관계에
관하여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 논문은 토정 설화의 전승 양상을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토정 설화에 나타난 토정의 모습, 토정 설화에
나타난 민중의 의식을 살핀 뒤에 토정 설화가 기록문학인 소설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고찰하여 토정 설화 전반의 모습을 바르게
파악하려는 뜻에서 계획한 것이다.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활동, 설화에
나타난 토정의 모습에 관하여는 고찰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토정 설화에
나타난 민중의 의식을 알아보고, 이 설화가 소설 작품에 어떻게 수용되어
문학적 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토정 설화는 최근에 채록하여 <구비문학대계>를 비롯한 설화집에
수록된 자료 89편과 <어우야담(於于野談)>을 비롯한 조선 조 문헌설화집에
수록된 자료 27편, <토정집>에 수록된 내용 중 설화의 성격을 띤 자료 13편 등
모두 129편이다. 이들 연구는 역사적 인물인 토정 이지함과 이지함에 관련된
설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토정 설화에 투영된 ‘민중’의 의식과 토정 설화와 소설의 관계에
관하여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 논문은 토정 설화의 전승 양상을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토정 설화에 나타난 토정의 모습, 토정 설화에 나타난 민중의 의식을
살핀 뒤에 토정 설화가 기록문학인 소설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고찰하여
토정 설화 전반의 모습을 바르게 파악하려는 뜻에서 계획한 것이다.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활동, 설화에 나타난 토정의 모습에 관하여는
고찰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토정 설화에 나타난 민중의 의식을 알아보고,
이 설화가 소설 작품에 어떻게 수용되어 문학적 기능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토정 설화는 최근에 채록하여 <구비문학대계>를 비롯한 설화집에 수록된 자료 89편과
<어우야담(於于野談)>을 비롯한 조선 조 문헌설화집에 수록된 자료 27편, <토정집>에
수록된 내용 중 설화의 성격을 띤 자료 13편 등 모두 129편이다.
날 것을 알았지만, 마을 사람들을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을 운명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배가 가라앉을 줄을 안 이토정」 이야기에서 토정이 배를 타는 것을 본
토정의 아버지 친구는 그 배가 강 가운데에서 전복하였다는 말을 듣고,
급히 토정의 집으로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이 말을 들은 토정의 아버지는 그가 빠져 죽을 배에 탔겠느냐고 하며
바둑이나 한 판 두자고 한다.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토정에게 아버지 친구가
아까 그 배를 타지 않았느냐고 묻자, 토정은 배가 위험할 것 같아서 내렸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토정은 앞일을 예견함으로써 자기의 목숨을 구하였다.
「후손의 횡액을 예견한 이토정」에서는 동네 아이가 토정의 집 배나무에
배를 따먹으러 올라갔다가 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떨어져 죽는다.
토정은 그 횡액(橫厄)이 자기의 5세손에게 미칠 것을 예감하고,
글을 써서 봉한 뒤에 훗날 부득이한 일이 생기면 나라에 올리라고 하였다.
그 후, 토정의 5세손이 국법을 어겨 형벌을 받게 되자, 토정이 남긴 글을 관찰사에게 바쳤다.
토정의 글을 앉아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관찰사가 글을 직접 받으려고 동헌 마당으로
내려선 순간에 동헌의 대들보가 내려앉아 관찰사는 죽음을 면했다.
유서에는 “내가 그대를 살렸으니, 그대도 나의 5세손을 살려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철마가 지날 것을 예언한 토정」에서는 토정이 고향인 보령에 철마가 지나가면
동네를 떠나라는 유언을 하였는데, 장항선 철로가 개통될 무렵에 후손들이
마을을 떠나 지금은 토정의 후손이 몇 집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토정은 후손들에게 닥칠 일을 미리 알아 횡액(橫厄)을 예방하게 하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 주었다.
문헌설화집 <금계필담(金溪筆談)>에는 토정이 10여 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이야기는 토정이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이 뛰어났음을
말하면서 토정 같은 이인이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였으나, 대비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지배계층의 무능을 꼬집기도 한다.
토정은 사윗감을 골라 달라는 조카 이산해의 부탁을 받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이덕형을 조카 사위로 천거하면서 그가 이산해보다 먼저 재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대로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토정은 조카 이산해가 역심(逆心)을 품은 것을 알고,
여러 가지 방법을 쓰면서 설득하고 달래어 마음을 고쳐먹게 하였다.
또, 토정은 역심을 품은 조양래가 찾아와서 점을 해 달라고 할 것을 미리 알고,
관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아들에게 곡을 하게 하여 그를 따돌린다.
이것은 토정의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뛰어났음을 말해 준다.
보여 달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계집종에게 놋그릇을 주면서 경교(京橋)에 가면
그것을 사자는 노파가 있을 것이니, 한 냥을 받고 팔아오라고 한다.
그는 그 돈으로 서문 밖 사거리에 가서 은수저 한 벌을 사오게 한 후,
그것을 경기감영 앞으로 가지고 가서 은수저를 잃어버리고 급히 같은 은수저를
구하려는 사람에게 15냥을 받고 팔아오게 한다.
그는 다시 한 냥을 가지고 경교로 가서 그 노파에게서 놋그릇을 다시 사오게 한다.
토정은 부인에게 놋그릇과 돈 14냥을 주면서 땔감과 식량을 구하라고 한다.
또 백성들에게 장사하는 법을 가르치고, 생업에 힘써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토정이 점을 잘 치고, 장사에도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조카의 명 늘려주기」에서 죽게된 조카를 살려달라는 형수의 애절한 부탁을
받은 토정은 형수에게 밥 세 그릇과 음식을 산 중턱에 가져다 놓고 기도하라고 한다.
토정의 조카를 잡으러 왔던 저승사자는 토정이 시켜서 차린 밥상이니 먹지 않을 수 없다면서
밥을 먹고, 조카와 나이와 이름이 같은 건너 마을 아이를 잡아갔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토정이 여덟 살에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토정의 어머니가
토정 백부의 말대로 밤중에 산에 가서 100일기도를 하며 저승사자를 대접하니,
저승사자가 수명부(壽命簿)를 고쳐 토정의 수명을 늘려 주었다고 한다.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여 죽을 사람 살리는 모티프는 ‘연명설화(延命說話)’에
흔히 등장하는 모티프인데, 토정 설화에 수용되어 토정의 신이한 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둔갑한 호랑이 잡기」에서 토정은 중으로 둔갑한 호랑이를 퇴치한다.
토정은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호랑이를 물리침으로써 피해를 예방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토정이 강원도에서 원님 노릇을 하는데,
나라에서 멧돼지를 잡아 바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태연하게 지내던 토정은 기한이 다가오자 사람으로 둔갑을
잘 하는 호랑이 한 마리를 불러서 멧돼지를 산 채로 잡아오라고 하였다.
토정은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를 데리고 임금님한테 가서 멧돼지를 바쳤다.
임금이 토정에게 멧돼지를 어떻게 산 채로 잡았느냐고 물었다.
토정이 호랑이를 시켜서 잡았다고 하며, 사람의 모습으로 있던 호랑이가
재주를 넘어 호랑이의 모습을 보이자, 임금은 깜짝 놀랐다.
그 후, 임금은 멧돼지를 잡아 올리는 일을 그만두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은 멧돼지 잡는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설화에는 토정이 장사하여 돈을 번 이야기가 있다.
토정은 양식이 떨어졌다며 신술을 보여 달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계집종에게 놋그릇을 주면서 경교(京橋)에 가면 그것을 사자는 노파가 있을 것이니,
한 냥을 받고 팔아오라고 한다. 그는 그 돈으로 서문 밖 사거리에 가서
은수저 한 벌을 사오게 한 후, 그것을 경기감영 앞으로 가지고 가서
은수저를 잃어버리고 급히 같은 은수저를 구하려는 사람에게 15냥을 받고 팔아오게 한다.
그는 다시 한 냥을 가지고 경교로 가서 그 노파에게서 놋그릇을 다시 사오게 한다.
토정은 부인에게 놋그릇과 돈 14냥을 주면서 땔감과 식량을 구하라고 한다.
또 백성들에게 장사하는 법을 가르치고, 생업에 힘써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토정이 점을 잘 치고, 장사에도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조카의 명 늘려주기」에서 죽게된 조카를 살려달라는 형수의 애절한 부탁을 받은 토정은
형수에게 밥 세 그릇과 음식을 산 중턱에 가져다 놓고 기도하라고 한다.
토정의 조카를 잡으러 왔던 저승사자는 토정이 시켜서 차린 밥상이니 먹지 않을 수 없다면서
밥을 먹고, 조카와 나이와 이름이 같은 건너 마을 아이를 잡아갔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토정이 여덟 살에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토정의 어머니가
토정 백부의 말대로 밤중에 산에 가서 100일기도를 하며 저승사자를 대접하니,
저승사자가 수명부(壽命簿)를 고쳐 토정의 수명을 늘려 주었다고 한다.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여 죽을 사람 살리는 모티프는 ‘연명설화(延命說話)’에
흔히 등장하는 모티프인데, 토정 설화에 수용되어 토정의 신이한 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둔갑한 호랑이 잡기」에서 토정은 중으로 둔갑한 호랑이를 퇴치한다.
토정은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호랑이를 물리침으로써 피해를 예방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토정이 강원도에서 원님 노릇을 하는데, 나라에서 멧돼지를
잡아 바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태연하게 지내던 토정은 기한이
다가오자 사람으로 둔갑을 잘 하는 호랑이 한 마리를 불러서 멧돼지를
산 채로 잡아오라고 하였다. 토정은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를 데리고
임금님한테 가서 멧돼지를 바쳤다. 임금이 토정에게 멧돼지를 어떻게
산 채로 잡았느냐고 물었다. 토정이 호랑이를 시켜서 잡았다고 하며,
사람의 모습으로 있던 호랑이가 재주를 넘어 호랑이의 모습을 보이자,
임금은 깜짝 놀랐다.
그 후, 임금은 멧돼지를 잡아 올리는 일을 그만두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은 멧돼지 잡는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토정은 신술을 이용하여 호랑이를 부림으로써
임금을 놀라게 하고, 멧돼지를 상납하는 좋지 못한 관행을 없앴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말단 관리나 일반 백성 중에도 신통하고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으니, 지배계층은 권력을 남용하지 말라는 경고(警告)의
의미를 담고 있다.
토정은 「축지법으로 중국을 왕래한 토정」에서는 축지법을 써서 중국을 왕래하고,
「토정이 그린 병풍」에서는 병풍에 그린 그림에서 물고기를 잡게 한다.
「금덩어리 교훈으로 형수 깨우치기」에서 토정은 돌을 금덩이 또는 개구리로
변하게 하여 조카와 형수로 하여금 자기 복에 없는 재물은 아무리 애써도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설화에서 토정은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과 사람의 운명을
아는 능력이 뛰어났고, 때로는 신술(神術)을 부린다. 토정은 신통(神通)하고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 스스로 위험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친족이나 후손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한 마을이나 국가에 위기가 올 것을
알리고 대비하게 한다. 이것은 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인 ‘이인(異人)’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인(異人)은 자기가 지닌 신통하고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나
자기 주변 사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고, 꿈과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말과 행동을
꿰뚫어보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 경각심을 갖도록 해 준다.
그래서 민중들은 토정 같은 이인의 출현을 기다렸을 것이다.
2. 진정한 목민관(牧民官) 출현에 대한 기대
토정은 아산 현감을 할 때에 걸인청(乞人廳)을 두고,
유랑민이나 걸인을 보살피면서 그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먹고 살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지함은 유랑민이 떨어진 옷을 입고 걸식하는 것을 가엾게 여겼다.
그는 큰 집을 지어 그곳에 살도록 하고,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하나를 손수 업으로 삼아 살도록 하였는데, 직접 대면하여
깨우쳐 주지 않음이 없었다.
그는 각 사람을 이끌어 의식을 주선하여 주었다.
능력 있는 자에게는 미투리를 삼도록 하고 친히 감독하여 하루에
10켤레씩 만들어 팔게 하였는데, 이로써 의식이 풍족해졌다.
그런데 일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말없이 도망하는 자들도 많았다.
위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떠도는 유랑민이나 걸인들을
보살피고,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하려는 목
민관 토정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포천 현감이 된 토정이 낡은 옷에 짚신을 신고 임지에 도착하니,
아전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가 좌정하니,
그제야 원님인 줄 알고 음식상을 내왔다.
토정이 음식상을 말없이 노려보자, 아전들은 서둘러 음식상을 물린 뒤에
더 호사스럽게 차려왔다.
그가 여전히 상을 찌푸리고 노려보기만 하자, 아전들이 벌벌 떨며,
넙죽 엎드려 빌었다. 그는 우리 나라 백성들이 고생을 하는 것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사치스럽게 먹기 때문이라고 하며
자기는 잡곡밥에 산나물 한 가지만 먹으면 된다고 하였다.
다음 달, 이지함은 고을에 사는 모모한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원님이 새로 도임하여 한턱 내는 줄 알고
모두 기대하고 왔는데, 음식은 나물 한 접시와 끓인 죽 한 그릇이었다.
이지함은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린다며 당당하게 행동하였다.
이것은 포천 현감이 된 토정의 검소한 모습을 이야기한 것인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어우야담>에도 전해 온다.
토정이 아산 현감으로 오니, 도임 상에 물고기 반찬을
올려놓았는데 맛이 좋았다. 물고기를 어디서 잡았느냐고 물으니
고기를 잡는 못이 있는데 아무도 못 잡게 하고 현감이 올 때
도임 상에만 쓴다고 하였다. 3일 후에 토정은 고기를 여럿이 먹어야지
현감만 먹을 수 없다면서 못을 메우라고 하였다.
아랫사람들은 현감이 시키는 일이라 어길 수 없어 못을 메우고 논을 만들었다.
그 후, 어떤 현감도 그 물고기를 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못 터가 있다.
위 이야기는 목민관 토정의 검소한 생활 태도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해 준다.
토정의 이러한 모습은 앞에서 말한 「멧돼지 상납 제도 폐지시키기」에도 잘 나타난다.
이러한 이야기는 토정이 포천 현감, 아산 현감이 되어 진정한 목민관의 모습을
보이고, 여러 가지 시폐(時弊)를 개혁하려고 조정에 상소를 올리는 한편,
잘못된 관행(慣行)이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던 토정의 모습을
재미있게 구성한 것이라 하겠다.
진정한 목민관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과 함께 하며,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려 애쓰는 관장이다. 조선 시대의 민중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지방의 관장(官長)에게 시달리면서 진정한 목민관이 와서
백성을 바르게 이끌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토정설화에는 이러한 민중의 의식이 담겨 있다.
3. 검소하며 절제하는 생활의 강조
토정은 야인(野人)일 때에 검소한 생활을 하였는데, 포천 현감․아산 현감이
된 뒤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토정은 포천 현감이
되었을 때 낡은 옷에 짚신을 신고 부임하여 아전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잡곡밥과 나물 한 가지만을 먹었다고 한다.
<동야휘집(東野彙輯)>에는 “공이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
매우 검소하였는데, 읍에서 찾아온 품관(品官)에게 채소 죽을
내놓았다가 혼자 먹은 후 곧 벼슬을 그만 두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의 “포천 현감 이지함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함은 원으로 있으면서 스스로의 처신을
검소하게 하고, 백성 보기를 자식처럼 하였다.”는 대목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토정의 검소함은 다음의 이야기에도 잘 나타난다.
남명은 그 성품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였는데, 그 문인(門人) 김우옹(金宇顒)이
불만을 말하자, 자기는 본래 부귀한 상(相)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토정 이지함이 서고청(徐孤靑, 徐起)과 함께 지리산 구경 길에 남명을
방문하였다가 그 사치스러움을 보고, 방에 소변을 보고, 벽과 책상, 이불에
똥칠을 하고 갔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연산군 7~선조 5)은
벼슬에 나오라는 퇴계의 권유와 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두류산 덕소동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사색과 연구에
전념한 성리학자이다. 남명이 정말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통하여 토정의 검소한 생활 태도를 알 수 있다.
설화에서 토정은 절제력이 매우 강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토정이 젊어서 서화담에게 배우며 아래채 종의 행랑에 기식(寄食)하였다.
종의 처가 토정의 미모를 사모하여 종종 추파(秋波)를 던지던 끝에,
남편이 출타한 날 밤에 토정의 방으로 건너왔다.
토정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종의 처를 지팡이로 때려 내쫓았다.
아내를 의심하여 숨어서 그 광경을 엿보고 있던 종이 감동하여
이 사실을 화담에게 알렸다.
화담이 다음날 토정을 불러, 이미 공부가 끝났으니 가고 싶은 대로
가되 군자 됨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것은 토정이 여인의 유혹을 물리친 이야기인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청야담수(靑野談藪)>, <토정집(土亭集)>에도
실려 있다.
설화 중에는 토정이 제주에 갔을 때 기녀(妓女)의 유혹을 물리친 이야기도 있다.
토정이 표연히 제주에 들어가니 제주 목사가 그 이름을 듣고 맞아들여 객관(客館)에
들게 한 뒤에, 아름다운 기녀(妓女)를 선택하여 천침(薦枕)하게 하고,
기녀에게 곡식 창고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네가 만약 이군(李君)에게 총애를
받는다면 마땅히 저 곡식 한 창고를 상으로 주겠다.”라고 하였다.
기녀가 그의 사람됨을 기이하게 여기고, 반드시 어지럽혀 주고자 하여
밤을 타서 갖은 교태(嬌態)를 부려 안 하는 짓이 없었건만 마침내
더럽힐 수 없었다. 목사는 그를 더욱 공경하고 무겁게 여기었다고 한다.
위에 적은 두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의 “이지함은 처신하기를 확고히
하되 여색을 더욱 조심하였다. 젊은 시절에 주․군(州郡)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수령과 군수가 이름난 기생을 시켜서 온갖 수단을 다하여 시험해 보았지만,
그는 끝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극기(克己)로 색욕(色慾)을 끊었다.”는
기록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처럼 토정 설화에는 검소하며 절제하는 생활을 강조하는
민중의 마음이 담겨 있다.
백성들은 양반들이 호사스런 생활을 하거나, 주색(酒色)에 빠져 지내면서
백성들의 힘들고 고달픈 생활을 돌보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고, 원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검소하며 절제하는 토정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즐겨 구연하였을 것이다.
4. 운명에의 순응
설화에 나타난 토정은 풍수지리에 능통하고, 신술을 부릴 줄 아는 이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기거나 수명을 연장하려
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였다. 토정이 부모를 장사지낼 때 묏자리를 보니
자손 중에 재상이 두 명 나오는데, 막내아들은 불길하였다.
막내인 토정은 자신이 그 재난을 당할 것을 알았지만, 그대로 맞이하였다.
후에 형의 아들인 산해(山海)와 산보(山甫)의 관이 1품에 이르렀는데도,
지함의 아들은 현달(顯達)하지 못하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동야휘집>에도 실려 있는데, 조부의 묏자리로
되어 있는 점만 다르다.
토정은 풍수설에 밝아 그 묏자리가 막내인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알았지만,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여 순응한 것이다.
「금덩어리 교훈으로 형수 깨우치기」에서 토정은 형수와 조카를 깨우치기 위해
신술을 부려 돌을 금으로 변하게 한다. 그는 신술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기 가족이나,
조카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각자 타고난 복이 있으니, 그 복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토정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의 관상을 보니,
밥을 얻어먹어야 살지 잘 살면 단명할 것 같았다.
그래서 딸을 거지와 혼인시킨 뒤 움막을 지어주고,
그곳에서 밥을 빌어먹고 살게 했다.
토정은 자기 딸이 밥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만들어 주고는 그것으로 점을 치며 살게 했다.
딸이 그 책으로 보아준 점이 백발백중으로 들어맞았다.
그러고 보니, 딸이 금새 부자가 되어 곧 죽을 것 같았다.
토정은 <토정비결>을 다시 가져오라고 해서 중간 중간을
틀리도록 고쳐 놓았다.
그래서 지금 <토정비결>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위 이야기는 <토정비결>이 잘 맞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여려 편 전해 온다.
이 이야기 역시 사람이 타고난 복대로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정여립이 반역하려는 마음을 먹고, 토정을 찾아와 점을 해 달라고 하였다.
토정은 ‘역심을 품은 사람의 점은 하지 않는다.’고 거절하였다.
정여립은 토정이 지네를 구워 먹는 것을 보고, 지네 먹은 뒤에
무엇을 먹느냐고 물었다. 토정이 지네를 먹는다고 대답하였다.
점을 쳐주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은 정여립은 감자를 밤처럼 깎
아놓고 밤을 치웠다.
토정은 “네가 밤을 감자로 바꿔놓은 것을 내가 알지만,
나는 이것을 먹고 죽는다.” 하고 죽었다.
이 이야기에서 정여립은 자기가 역심(逆心)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토정을 죽이기 위해 지네 즙을 먹은 뒤에 제독(除毒) 작용을
하라고 먹는 밤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감자를 놓아둔다.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과 신술을 부리는 능력을 지닌 토정이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그대로 먹고 죽는다. 이것은 토정이 아산에서 죽을 것이라는
자기의 운명을 알고 순응한 것이라 하겠다.
토정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18편인데,
그 중 두 편은 토정이 아산에서 죽을 것임을 예언하는 내용이이다.
나머지 16편은 지네 즙을 먹고 해독을 못해 죽는 이야기인데,
대부분은 재물을 취하려는 욕심을 품었거나 꾸중을 듣고 앙심을
품은 통인(通引)이 토정을 죽이려는 마음에서 밤 대신 감자를 드
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토정은 지술(地術)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통하고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인이었다. 그러므로, 마음만 먹으면 좋은 묘 자리도 구할 수 있었고,
신술을 부려 가난한 형수를 돕기도 하고, 가난에 쪼들리는 아내에게 살림
비용을 넉넉하게 대 줄 수도 있었으며, 자기를 죽이려는 정여립이나
통인의 행동을 미리 알아 예방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운명에 순응하여 가난하게 살았고, 아들들의 출세를 위하여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주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민중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토정 설화에는 이인과 진정한 목민관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 검소하며 절제하는 생활을 강조하는 마음, 운명에 순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러한 마음은 토정 설화를 전파․전승해 온 민중들에게
이인이나 목민관 출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하는 한편, 검소하며
절제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고,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생활 태도를 갖게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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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한국민속학회 제33호(서울:한국민속학회 2001년 6월)에
실린 최운식의 논문 <토정 이지함의 설화연구> 일부 내용을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