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2장1-12절 속죄와 치유02 260812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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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아멘.
1. 고등종교들의 윤리성과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
고등종교의 조건과 윤리성: 불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고등종교는 단순히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영적 세계의 추구를 넘어 반드시 '윤리성'이 더하여집니다. 윤리성이 결여된 종교는 고등종교라 할 수 없으며, 모든 고등종교는 죄에 대한 경고, 책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치를 가르칩니다.
불교 내세관의 혼재:
불교는 인간이 오욕칠정과 108번뇌에 잡혀 살아가며 죄를 짓고, 그것이 '업보'가 되어 극락이나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 내세관에는 극락/지옥 개념과 함께 개나 돼지로 태어나는 '환생(윤회)' 개념이 뒤섞여 있습니다. 본래 인도의 힌두교 영향으로 출발한 윤회 사상이 중국을 거치며 경교(네스토리우스파)를 만나 극락·지옥 사상이 뒤섞인 것입니다.
무속 신앙과의 차이:
힌두교 일부나 한국의 토속 무속 신앙은 기복과 정성은 있으나 지은 죄와 업보에 대한 윤리적 경고나 정결함의 가르침이 명확하지 않아 고등종교라 부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차별점 - 사죄의 은혜:
대다수 고등종교가 죄에 대해 주로 '벌'을 말하며 죄를 짓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데 집중한다면, 기독교는 죄를 지적하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를 사하셨다"는 사죄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2. 실제적인 사죄의 은혜와 십자가 신학
실제적인 보혈의 능력:
사죄의 은혜는 단순한 관념이나 상징이 아닌 '실제'입니다. 실제로 죄 사함이 이루어질 때 내 안에서 죄성으로 역사하던 사단이 힘을 잃고 쫓겨나갑니다.
마귀의 역사를 끊어냄 (요한복음 10장):
마귀가 오는 목적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사죄의 은혜가 임하면:
삶의 좋은 것들을 빼앗기는 '도둑질'을 하나님이 막아 주십니다.
사고, 질병, 사망 권세로 인생을 상하게 하는 '죽임'의 역사를 꺾으십니다.
지옥 백성 삼으려는 '멸망'의 결박을 끊어내십니다.
십자가 신학:
기독교는 죄의 결과만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음을 선포하는 '십자가 신학'을 중심으로 삼습니다.
3.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거룩함과 신비한 '영적 교환'
(1) 거룩함과 보혈의 정결함
기독교 영성의 첫 번째 덕목은 '거룩함'입니다. 열심이나 양적인 기도로 치면 산에서 몸을 닦고 폭포 아래서 기도하는 무속인이나 다른 종교인들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있는 더 놀라운 은혜는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불교는 죄성을 비우고 또 비우라고 가르치지만, 인간의 죄는 양파 껍질 같아서 비울수록 또 다른 깊은 죄나 공명심, '자기 의'가 나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함에 이릅니다.
(2) 십자가의 6가지 영적 교환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신비하고 거룩한 영적 교환의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피 묻은 십자가 앞에 정직하게 설 때, 나의 나쁜 것은 예수님께 넘어가고 예수님의 가장 좋은 것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가시관 ↔ 면류관: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심으로, 믿음을 지킨 자의 '의의 면류관', 순교적 삶을 산 자의 '생명의 면류관', 충성한 자의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씌워 주십니다.
수치 ↔ 의의 옷(전신갑주):
가톨릭 십자가 상과 달리 실제 예수님은 모든 남성적·인간적 수치를 다 드러낸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수치를 다 짊어지셨기에, 그를 믿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의의 옷과 전신갑주를 입게 됩니다.
채찍 ↔ 신유와 나음: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에게 살점이 뜯겨 나가는 39대의 잔혹한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이사야 53:5). 이중 처벌의 고통을 겪으심으로 우리가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얻었습니다.
버림받음 ↔ 자녀로 택함받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아버스 하나님께 처절하게 버림받으심으로, 버림받아 마땅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영적 목마름 ↔ 성령의 풍성한 채움:
공생애 내내 성령 충만하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 하신 것은 영적·신성적 공급이 끊어지는 처절한 목마름이었습니다. 이로써 세상을 살며 영적으로 목말라 넘어지는 우리를 성령으로 채워 주십니다. (목회자들이 성령 충만을 잃어버릴 때 시험에 들듯, 우리에겐 이 영적 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가난 ↔ 부요함 (고린도후서 8:9):
만물의 주관자이신 분이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심은, 그 가난해지심을 인하여 우리를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부요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4. 정직한 고백과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주는 자유
정직한 고백과 복음 (조지 워싱턴 예화): 세상 문화나 한국적 정서에서는 허물과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면 책임을 묻고 매를 맞는 경우(어릴 적 워싱턴 전기를 읽고 정직하게 마당 감나무를 벴다가 아버지께 매 맞은 정성안 목사의 예화)가 많아 자꾸 죄를 감추려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 앞에 정직히 자백하면 용서받는다'는 원리입니다.
다양한 죄의 형태와 바리새인의 죄:
인간의 죄는 음란, 혈기, 도둑질, 뒷담화 등 다양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의 가장 큰 죄는 '자기 의'를 쌓아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바리새인적 죄'입니다.
세리나 몸을 파는 여인은 자기 죄를 분명히 알고 회개하지만, 바리새인은 자기가 잘한 행위(금식, 철야, 11조)만 자랑합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내가 왜 저 세리나 불쌍한 사람을 보며 정죄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지, 이 손가락질하는 내가 죄인입니다" 하고 회개해야 거듭납니다.
용서와 땅의 회개:
상처나 사람을 용서하기 어려울 때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 용서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회개가 안 될 때는 '땅의 회개'(구약의 배상법이나 삭개오처럼 물질과 행동으로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고 회개의 예물을 드리는 것)를 통해 몸을 움직일 때 회개의 영이 깊이 임합니다.
유다의 회개와 결박의 풀림:
창세기 49장에서 요셉을 팔아넘겼던 유다가 복을 받은 이유는 그가 정직히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유다 가문에 왕권의 축복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처럼, 십자가 앞에 정직히 나아갈 때 삶의 모든 재앙과 결박이 끊어지고 회복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그 뜻과 일을 이루어가며 아버지의 그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은혜가 있게 우리 하나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중풍병자를 치료하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질병도 치료하여 주시고, 인생의 모든 결박들도 끊어 주셔서 예수 안에 자유하게 되어지는, 예수 안에서 온전하게 되어지는 은혜만 우리 가정과 우리 삶의 자리 안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재정의 결박이 끊어지게 하시고, 가난의 결박이 끊어지게 하시고, 질병의 결박이 끊어지게 하시고, 가정 안에 불화하게 하는 것들의 결박들이 끊어지게 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총의 역사만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에 부흥을 방해하는 결박들이 끊어지게 하셔서 새로운 영혼들이 이 제단에 가득가득 채워지게 하시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며 복음을 깊이 만나는 교회로 우리 교회를 세워 역사해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온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