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은 '조선대륙'을 무대로 하고 있다.백두산 이남의 반도(半島)가 우리 민족의 무대가 아니다.
만주에서 연해주까지의 웅대한 조선대륙이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임을 확인시켜주는 영화 안시성이다.
중국이 분열의 시대를 넘어 전국 통일을 하고서 먼저 공략하는 곳이 고구려 대륙이다.
수나라도 100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략하다 결국 몰락한다.
당나라도 중원 통일을 이룩한 뒤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양만춘의 안시성을 공략한다.
20만 정예 군을 이끌고 있는 당 태종 이세민은 안시성 전투에 사활을 건다.
투석기를 비롯한 각종 최신의 공성(攻城) 무기로 안시성을 공략한다.
투석기로 성문을 깨고 당의 군사들이 성으로 밀려온다.
"성문은 깨뜨릴 수 있으나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양만춘의 말이다.성문으로 들어온 당의 군사들은 옹성(甕城)에 갇혀 몰살된다.이세민은 잠시 물러나 새 공략전략을 짠다.
안시성보다 높은 토산(土山)을 쌓아 그 높은 토산에서 공략한다는 전략이다.그 높다란 토산이 완성,눈 앞에 위용을 자랑한다.
당의 군사들은 그 토산에 올라 안시성으로 공략하려는 순간이다.그때 안시성 '주민 특공대'가 토산 지하로 잠입해 육중한
토성을 무너뜨린다.고구려 안시성 군대는 그 토산을 점령한다.
양만춘은 신궁(神弓)으로 당태종 이세민의 눈을 명중 중상을 입힌다.당 태종 이세민은 결국 퇴각한다.
그리고 3년만에 세상을 뜬다. "다시는 고구려와 싸움을 하지말라!" 유언을 남기고.
영화 안시성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당 태종이 사망하였다.태종은 조칙을 내려 요동정벌(고구려 정벌)을 중지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694년(보장왕 8년) 4월에서-
고구려 하나의 성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88일간 당시 최강의 당나라 20만대군과 싸워 승리로 이끈 대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5천명의 성 주민들을 하나로 융합한 그의 지도력에
감명을 받았다.그는 숫적으로 절대 우위에 있던 적에게 절대 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맞서 승리로 이끌었다.
성 주민들은 성주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여 당나라 군사와 싸웠다.
주민들의 화합을 이끌어내고 적에 주눅들지 않고 대륙을 호령한 그에게서 고구려 혼(魂)을 읽을 수 있었다.
잊혀져 가는 고구려의 혼 다물(多勿) 정신을 일깨워준 양만춘의 영웅담이었다.
만주의 오랑캐 여진족의 청나라에 쫓겨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45일간 농성'만 한 조선의 왕 인조이다.
그는 싸움 한 번 안한다.성 내부는 '적과 싸우자(主戰派)',적과 협상을 하자(主和派) 두 개의 파로 갈라졌다.
그는 극심한 대결 분열을 화합으로 이끌지 못한 채 삼전도에서 굴욕의 항복을 한다.
이 굴욕의 사건을 남긴 조선 인조의 '삼전도의 굴복'과는 대비되는 안시성 승리이다.
안시성의 통쾌한 승리이다.
여기서 고구려인의 '다물(多勿)', 그 위대한 고구려 혼(魂)에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