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ngin.dcollection.net/common/orgView/000001720567
대동류 유술의 한국 유입에 관한
합기도사적 고찰(김정환)
<최용술선생님 주민표상 확인되는 내용>
가장 눈에 뜨이는 두 가지는
1. 최용술이라는 이름이 한자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
2. 하숙업이 직업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
김정환 관장님이 용인대 석사논문에 1943년 신고된 최용술선생님 '기류' 관련 자료(90일 이상 거주하는 곳에 대한 정보 등이 기재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1943년 이래 시행되던 중 주민등록으로 변경, 시행되고 있다).논문에서는 '주민표'라고 기재되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일단 주민표라고 기재하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설명하겠지만 재일조선인 관리차원에서 1943년 작성된 것으로 생각됨.
집소유자: 콘도오 세이고로오(近藤正五郎 근등정오랑)
세대주 이름: 崔龍述(최용술, 요시다 아사오가 아니라 최용술이라고 기재됨)
위 주민표에는 최용술선생님의 1943년 신고 당시 일본 내 주소가 나온다. 北海道(홋카이도) 小樽市(오타루시)色内(이로나이)町 1
丁目 45番地.
(이 주소는 김정윤 저 '합기술'에서 와타나베 긴타로가 운영한 여관주소로 나와있던 곳이 아닌가 하는데, 확인 가능한 분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생년월일: 명치(메이지)37년(1904년)-실제 생년은 1899년이라고 알려져 있음.
본적: 조선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광평리 461번지(150번지라고 기재되어 자료들이 대부분인데, 행정구역 변경이나 필지 변경으로 인한 것으로 보임).
직업: 下宿業(하숙업)
처 성명: 임식
<기타 논문상 확인되는 사실>
조선인 밀집거주 지역 거주(논문 21쪽 논문 본문 21쪽에, 현지 거주자 와타나베 미오씨가 "그 근처에 한국인(조선인) 가득 살았는데"라고 언급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음)
조선인 10여명이 함께 산 것으로 보임(논문 본문 21쪽에 "최용술의 주민표 상에 등재된 10명의 조선인에 관한 내용" 이하).
소결
당시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곳에서 사셨다. 일본인 소유 집에서 그들을 상대로 하숙을 하셨다. 일본내 조선인(노동자)들밀집지역의 하숙, 함바, 숙소, 조선인부락 등을 고려.
참고로, 당시 오타루 인근에서 탄광 등에서 조선사람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었음(탄광 5,000명 이상).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최용술선생님이 일본 내에서 사신 환경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됨.
공적 기록상 확인되는 사실을 기초로 보자면,
최용술선생님이 조선인 밀집지역에서 일본인 소유의 집을 빌려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하숙을 치며 사셨다고 보임(노동자하숙, 함바). 일단은 조선인노동자 거주실태에 대한 글들을 살펴보면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됨 (하숙이라고 하면 '응답하라 1988' 떠올리는 분 계실까봐=_=).
이러한 서류증거를 기초로 하자면,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유괴되듯 끌려가서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수십년간 살았다는 기존 최용술선생님 관련 언급에 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조선인
-이름 최용술
-한국 내 본적 주소지 정확히 기재되어 있음(최용술 선생님이 어린 나이에 유괴나 다름없게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는 기존 기술내용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임).
-처 역시 조선인(임식으로만 기재되어 있는데, 박임식).
-조선인들 밀집지역 거주
-(조선인 상대) 하숙업
-추후 수정 예정-
2018. 3. 4.
카페주인
첫댓글 1. 파란색 부분이 사진에서 한자어나 일본어로 쓰인 내용입니다. 하숙업이란 기재를 강조한 것은 최용술 선생님 직업으로 알려져왔던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2. 최용술이란 이름을 강조한 것도 지금껏 알려진대로라면 요시다 아사오(길전조남)로 기재됐을 것을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3. 8살에 납치되어 다른 나라로 간 후 일본인들 틈 사이에서 수십연 살았던 사람이 자기 고향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요.
4. 최용술 선생님이 문맹이었다고 알려졌지만 그와 별개로 일본에 오래 사셨다고 해도 일본어에도 능숙하지 않으셨을 수도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984938778328204&id=100004362722258
김정환 관장님의 페북에 댓글을 달 수가 없어서 김관장님 본인 의견을 여기에 남겨둡니다.
다른 부분은 굳이 답변을 원하신다기 보다 김관장님의 의견인 듯 하고, 다만 최용술 선생님의 일본어 구사능력과 관련해서는 그분의 인터뷰 동영상에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 밀집구역에 모여 사는 조선인들의 경우 일본어에 능숙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용술 선생님이 아주 어린 나이에 일본생활을 시작하셨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동영상에서 최용술 선생님 모습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최용술 선생님의 직업이라면, 황족, 귀족, 특수요원 지도, 간척단 사업 지휘, 건설업(광산진입도로 확장공사 도급, 인부 250명 이상)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숙업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