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 - <네 멋대로 해라>

1.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59)>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영화적 변혁의 중심에 있는 작품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과거의 전통과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전쟁의 광기와 파괴, 특히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인간의 이성을 문제시했고 전통적인 예술 작업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계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탈리아의 비토리아 데시카 등의 ‘네오 리얼리즘’과 프랑스 고다르 등이 주도한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이라는 영화사적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기존의 영화적 문법을 파괴하고 제멋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배우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을 캐스팅하여 영화적 아우라를 파괴했다. 특히 <네 멋대로 해라>는 거친 비약과 생략과 같이 편집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당시 평론가들에게 “영화의 abc도 모르는 철부지 평론가가 저지른 장난”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냈으며 영화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봉이 되었다. 최근 고다르 감독의 삶을 조명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장 뤽 고다르 : 네 멋대로 해라>이다.
2. 이 영화는 그의 연인이었던 배우 안느 비아젬스키의 자서전 <1년 후>를 바탕으로 고다르의 영화적 전환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고다르의 영화에 관한 미학적 실험은 68운동을 전후로 급격하게 ‘정치적 실험’으로 바뀌었다. 68운동은 기존의 권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의 사회실험이었다. 영화 속에서 고다르는 68운동 이전의 자신의 작품들을 스스로 부정하며 과거의 고다르는 죽고 새로운 고다르가 태어났다는 선언과 함께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고다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쓰레기로 취급할 뿐 아니라 기존에 같이 작업한 동료들의 작품이나 행동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그들을 모욕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급진적인 경향은 결국 ‘칸 영화제’의 정상적인 개최까지 방해하는 극단성을 보이게 된다.
3. 점차 과격해지는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동료들과의 불화를 일으키고 그들과의 거리를 만들게 된다. 고다르는 영화계 사람들과는 단절되는 대신 혁명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들과 어울리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서 고다르의 어린 연인은 당혹감과 동료들과의 불화가 가져오는 고립감 때문에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정치적 변혁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정상적인 연인 관계까지 어렵게 만들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삶을 즐기려는 연인에 대한 태도를 공격하는 갈등을 반복하게 된다. 영화적 작업의 천재적인 능력에 유혹되어 17살의 나이 차에도 고다르에게 헌신적 사랑을 바쳤던 여인이었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파괴적으로 만들며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과도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목표에만 매몰된 고다르의 행동은 점점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이 된다.
4. 고다르의 정치적 실험은 젊은이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고다르는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가하고 그들의 토론 무대에서 발언하지만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고다르는 기존의 권력을 향유했던 기득권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발언은 대부분 학생들의 야유와 비난 속에서 마무리되어야 했으며 고다르는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고정할 수 없는 현실에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시위와 혼란 속에서 눈이 몹시 나쁜 고다르의 안경은 여러 번 군중들의 발에 밟히어 깨지고 만다. 깨어진 안경은 고다르의 정치적 실험의 실패를 상징하고 있었다.
5. 고다르의 영화를 통한 정치적 실험은 러시아의 베르토프가 시도한 ‘기록영화’적 방식을 수용한 영화 제작으로 연결된다. 영화 마지막, 영화 출연자들과 영화의 방향을 토론하는 ‘민주적 방식’은 전문가의 관점이 무시되고 다만 집단적인 의견을 통해 결정되는 ‘중우적’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고다르는 자신의 전문가적 식견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결국은 그들의 집단적 의견에 따라 영화 제작은 진행된다. 하지만 ‘예술’이 ‘정치’와 같이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될 수 있을까?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려 했던 고다르의 좌절을 영화는 상징하고 있는 듯했다.
6. 이 영화는 고다르의 시점이 아닌 그와 같이 살다 헤어진 연인의 시점에서 기록된 ‘고다르’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고다르는 분명 이 영화 속 자신의 묘사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의 눈에 비친 고다르의 모습은 중요하다. 고다르 스스로 정치적 실험을 택하지 않았던가? 정치는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서 만들어나가는 종합적인 실험이다. 특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의 고립된 작업은 결코 정치적 실험이 될 수 없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나갈 힘을 만드는 행동인데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실험에 몰입하고 비판적인 시선에 대하여 공격적으로 방어하려고만 한다면 정치가 될 수 없다. 다만 정치의 외피를 입은 광기적 ‘종교 실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치는 일상 속에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누군가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행위라고 말했지만, 현대의 정치적 행위는 최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타인들에게 설득시키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적 행위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형식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타인과의 갈등을 택한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68운동의 성과와 함께 혁명의 열기가 급속하게 사그라져 간 것은 운동의 과격성과 함께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낸 근본적으로 폐쇄된 성격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7. 영화 속 과거의 자신이 만든 영화를 부정하는 고다르의 모습은 대한민국 가수 정태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정태춘은 데뷔 당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노래의 문학적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태춘 또한 ‘노래’를 통한 정치혁명의 길로 들어섰고 사회고발과 노동운동의 노래를 발표하게 된다. 정치의 영역에 들어간 정태춘 또한 과거의 자신의 노래를 부정했다. 왜 정치와 혁명의 영역 속으로 들어간 예술가들은 과거의 낭만적이고 미학적인 작업을 거부할까? 그것이 혁명에 아무런 의미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편견에서 왜 벗어나지 못할까? 진정한 가치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내면을 표현한 예술이다. 혁명의 이상 또한 이러한 보편성에 기초하지 못하면 예술 속으로 녹여들 수 없다. 예술의 근본적인 속성은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아름다움 속에 혁명도, 정치도, 종교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우선한 모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대로 혁명이, 정치가, 종교가 아름다움을 압도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다만 ‘예술’의 형식을 띤 ‘선전선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과거 수많은 노동예술, 정치예술, 종교예술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을 볼 때 무엇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판단하게 한다.
첫댓글 예술적인 정치, 예술적인 종교! 꿈같은 이야기! 그렇지만 누군가 꿈을 꾸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