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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은 처음 가봤을 때의 진한 느낌이 내게 계속 여운으로 남는 곳이다. 몇 십년전의 삼청동은 지금보다 더 고즈녁한 느낌에 약간은 더 개발이 덜 된 촌스러운모습과 정겨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다. 엄마의 뱃속이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처음 봐서도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어렸을 적 한번 보았을 것 같은 익숙함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삼청동은 특히나 수제비가 시원하고 맛나서 자주 다닌 곳 중의 하나이다.
봄과 가을에는 삼청공원이 매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으며 카페 산책 다니다가 슬슬 산책 삼아 걷기도 좋다. 앉아서 차 한잔 마시고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머리도 쉴겸 삼청 공원 쪽의 깨끗한 공기를 들여마시는 걸 좋아한다.
비 오던 날 정갈한 느낌으로 찾아간 갤러리는 국제 갤러리와 금호,현대 갤러리였다. 특히나 국제 갤러리는 히데야키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예전부터 한번 가봐야지 하고 계속 미뤄두었는데 비오던 그날 갑자기 히데야키의 여인네들이 너무 보고싶어 그냥 한달음에 달려갔다.
히데야키가 그린 여인네들은 아주 잘 있었다.
히데야키의 그림을 본 건 작년 봄 날 롯데 에비뉴엘 전시회에서였다. 그때는 나라요시토모 그림에 반해서 그 그림 보느라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는데, 그러다가 눈에 들어 온 그림이었다.
신비와 순수의 느낌으로,약간의 알 수 없는 공허감으로 다가 온 그림. 어디로가는지 갈 방향을 잃고 헤매는 그래서 허공에 내던져진 하얀 여인네.. 어렸을 적 즐겨보던 순정만화 속의 큰 눈망울로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아득하기만하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꿈을 꾸고있는듯한 몽롱한 눈동자와 목이 없이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다니는 가녀린 여인네..
저 여인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일까 어디로 시선이 향하는 것일까. 왜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해서 저렇게 헤매이고 있는걸까. 이를테면 아비정전에서 나온 발없는 새의 느낌이 저런 것일까. 한평생을 날라다녀야하는.. 죽을 때가 되어서 평생 한번 앉는다는..
우리네 인생이 혹시 저런 느낌일까.
무언가를 부여잡고 무언가로 채우고 누구에겐가 기댐으로써 평화를 바라지만, 그렇게 내면 안에서 채워진듯한 그 순간에 우리는 혹시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나무나 돌처럼 자신 안에 분명한 존재근거를 가지고 있는 즉자존재와 달리,자신 안에 아무런 근거를 가지지 못한,그래서 무언가를 항상 열망해야 하는 대자존재로서의 사람의 숙명이 읽히는 순간이다.
그 열망하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무슨 깨우침과 어떠한 근거와 안식을 줄런지는 계속 살아가면서 느껴야하는 부분이리라.
살면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들과 솟구치는 수많은 열망 들 속에 지칠 때쯤 정말로 그냥 한점의 그림 속에 박제되었으면 하는 때..
내 속에서 바라는 마음이 넘쳐나서 ,뭔가를 이루려는 욕망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구나를 깨닫는 순간,그냥 한줄기 빗물처럼,그림 속 여인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지란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삶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생에 크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 자체가 허전함을 내포하고 있으리라.
히데야키 속 여인네들의 눈이 내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들이리라. 점심 시간에 잠깐의 짬을 내어서 갤러리 구경을 하고 회사로 오면서 라디오에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않았음에도 이렇게 잔잔한 행복으로 다가오는 삶이란 참 희한한 매력을 주는 안개 속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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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야키의 그림을 보면서 생각나는 그림이 여러 점 있다.
저 여인들처럼 하염없이 슬퍼보이는 ,다른 곳을 쳐다보는 그런 눈동자들.
제임스 티소 속의 여인네, 드가의 압상트에 나오는 여자, 마네의 폴리베르제르바 속의 눈 큰 여인..
네번째 최고의 강연—진 중권님의 (교수대 위의 까치)
선생님 책이 새로 출간된 첫날 영풍문고로 달려가서 (교수대 위의 까치)를 사서봤다.
선생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본 그림 읽어내는 방법이 재미있다.
독자 초청 강연회가 열린다고 했다. 신청자가 많아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나 독후감을 써서 채택한 사람에 한해서 강연회를 들을 수 있단다.
글 올려놓은 것들 보니까 상당히 날카롭고 거의 전공 수준인듯한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갑자기 의기소침해진 나는 그저 길게 써서 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저리주저리 하여간에 가장 길게..
당첨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감격에 겨워서 여기저기 전화로 잘 난척을 했다.
올해 들어서 아마 가장 감격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강의 내용은 푼크툼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이 진선생님 강의 들을 땐 정말 한 단어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필기도 정말 미친듯이 하고 정신집중을 아주 무섭게 한다.
수업 듣는 태도가 좋았던지, 카메라에 길게 내가 잡혔다고 한다.
아주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
다른 강의는 필기하고도 다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 선생님이 하셨던 강의 내용은 지금도 가끔씩 꺼내보면, 그때 선생님이 했던 그 농담, 그때 입으셨던 옷까지도 생각난다.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을 읽으면서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개념이 얼마나 고맙고 눈물났는지 모른다.
남들과는 다소 동떨어지고 엉뚱한 생각에 곧잘 골몰하는 내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개념이었기에 나의 구세주가 아닐까 싶었던 롤랑 바르트
푼크 툼에 관한 개념을 두 시간에 걸쳐서 흥미롭게 시종일관
유쾌하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주 솔직하게 풀어가고 있었다.
난 이선생님이 강의 하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아주 솔직하게 본인은 모르는 거라고 오히려 강의 듣는 사람들에게 격의 없이 질문하는 그 순진함이 너무 좋다.
그렇게 쉽게 말하기 쉽지 않다는 거 나도 안다.
푼크툼: 이 자국, 이 상처들은 점이다. 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두 번째 요소를 나는 푼크툼이라 부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찌름,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홈, 주사위 던지기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푼크툼은 그 자체가 나를 찌르는 (또한 나를 상처입히고 괴롭히는 우연이다)
.. 중략
종종 우리는 그런 일반적 해석으로는 도저히 포착이 안되는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미묘한 텍스추어에 불현듯 사로잡히 한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 느낌을 회화의 푼크툼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교수대 위의 까치__ 중에서)
푼크툼의 개념은 대중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개인의 사밀한 체험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어떤 작품에 대한 해석의 특권화를 비판한 것이리라.
결국은 그림 읽기는 개인의 특수하고도 개별적인 경험과 맞물려서 자유롭게 해석이 가능하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그림 읽을 것을 권유한다.
작품을 보며 스스로 물음을 제기 하고 스스로 물음에 답하는..
늘 걸으면서 묻고 물으면서 걷는 .. 그렇게 나의 방식과 일치한다.
(개인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유명인사 중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라 그분의 성격이나 성향을 옷에서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지요. 자유롭고 어디에 매이기 싫은 ,격식 차리기 싫어하고, 진취적인 성향이 그대로 엿보이는 차림입니다. 속에 항상 입으시는 흰면티가 더 젊어보이고 자유로워보입니다. 바지 통도 그다지 넓지도 좁지도 않고, 약간 짧은 듯한 바지 길이 아주 편하고 은근 세련되어 보이고 발랄 해보이더군요. 파란색 좋아하시던데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작년에 본 연예인 중에서~
겨울만 빼놓고 거의 매일 밤 한강을 산책하는데, 집앞의 반포대교 쪽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난 반포대교의 그 분수가 싫어요. 그 정신 확 깨는 음악이, 그 어울리지 않는 요란스런 화려함이.. ) 그래서인지 드라마 촬영이 잦은 편인데 그러다보니 탤런트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그 중에서 이지아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얼굴 예쁘기로야
그에 반해
한사람의 인격 안에 수많은 자아들을 골고루 발달시켜, 그것 때문에 다소 불안하고, 위태로워보이기도 하나 , 그것이 그녀가 가진 진정한 매력일 듯 싶다.
그녀를 길들이기 위해 쏟아지는 무례한 시선들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않았으면, 길들여지지 않았으면 싶은 내 바람..
타인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직관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때 안도감도 들고 정겨움이 느껴지는 가보다.
(얼굴 모습은 전혀 안비슷해요. ㅎㅎ, 그냥 그 덜렁대면서 좌충우돌 소녀같기도 하고 또 소년같기도 한 씩씩하면서도 여리기도 하고..그 모습)
키도 적당하게 크고, 손발도 길쭉길쭉, 옷입는 스타일도 아주 편해보이면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고, (한마디로 내가 늘 꿈꾸어왔던 좋아하는 워너비 스타일) 밝아보이면서도 어쩌다가 스치는 그 애수어린 눈빛이 참 좋다. 촬영 현장에서 한참을 봤었다.
오히려
산책 나갈 때마다 그녀가 앉아있던 곳을 바라보면서 참 행복했다.
(반포대교 남단 쪽 바로 이곳이 가장 명당이라 생각하는지 , 이 장소에서 촬영을 많이 하지요. 조금 더 가면 스타일의 배경이었던 곳도 나오구요. 한여름밤에 이곳에 있으면 별빛이 강물에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는데..지금은 그 억지 화려한 반포대교 분수 때문에 별빛이 갈 곳을 잃어버렸어요. 어쨌거나 그래도 조금은 호젓한 요 자리 .. 운치있습니다)
신청곡
밥 딜런—one more cup of coffee
가슴이 싸아하게 아파오는 노래..
작년 가을 I'm not there를 보고 밥딜런의 이 노래를 한동안 들었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작년 가을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올해 날씨가 추워지면서 커피 한잔 생각날 때 마다 이 노래가 듣고 싶었다.
나의 마음과 이 노래 분위기가 맞아떨어져서인지 지금 보름째 이 노래를 듣고 있다.
따뜻한 느낌이 나기도 하고 ,무언가 내 밑바닥의 가라앉은 느낌도 올라오면서 목이 간질간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하여간에 다양한 느낌을 계속 표출시켜 주는 것 같다.
글이 머리 속에서 맴맴돌고 나도 이해못할 현학적인 말들로 둥둥 떠다닐 때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김 규항의 책이 참 좋다.
쉬우면서도 알아듣기 쉬운 말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구나
소통을 빌미로 해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자신을 다른 누구와 구별하기 위해 요란한 말로 치장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을 건드리는구나
그렇게 신랄하게 글을 쓰면서도 그가 사랑하는 음악에 관한 글은 , 그 글에서 나오는 그 사랑스런 느낌을 잊혀지지 않는 명문장이다. 내게.
(글과 음악에 대한 내 모든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면 이렇다
좋은 글을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
이 음악도 가슴이 아프다.
첫댓글 아, 정말 눈 많이 왔어요. 신기한 건 작년 이맘때 쯤 새해 1월 16일 금요일날도 이렇게 눈이 많이 왔었잖아요.
더 신기한 건 그때마음과 올해 눈이 많이 내린 날의 마음이 거의 비슷하다는 거에요.
사람의 일생이 정말로 그렇게 비슷하게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이 되어지는 건 아닌가 순간 섬뜩했습니다
점심 시간에 내리는 눈을 운치있게 맞아보겠노라고 일부러 우산도 없이 그냥 청계천 주위를 슬슬 걸어서 서점에 다녀왔는데
넘 눈이 많이 와서일까요. 제 맘이 한없이 한없이 눈 아래로 숨어있어서 들여다 보기 어려웠습니다
아름다운 것의 절망이라고 생각해요. 늘 눈은, 뒷모습까지 아름답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또 새하얀 눈을 기다리고,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생각하니 몸이 조금씩 따뜻해왔습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송이 쌓이고,...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이 시의 향기에 얼얼했던 스물 세살 겨울이 생각나는데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사평역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던 그 때
싸륵싸륵한 눈꽃의 느낌.. 지금도 그대로 이겠지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눈냄새에 빠진듯한 그녀의 몸 그녀의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나도 그리고 아마 그녀도 이 세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의 섬세한 흔들림, 눈 계속 내리던 날에 더 심하게 와닿네요.// 오늘 한남대교 지나쳐 오면서 바라 본 하늘이 정말 푸른 하늘이더군요. 눈을 그렇게 뿌려놓고도 자기는 그렇게 심하게 예쁘게 푸르를 수 있을까 싶을만큼 파랗더군요. ㅎㅎ
오랫만에 들어요.오래전 기억들 자주 불러내게 하시죠,ㅎㅎ오늘 겁나게 힘들었거든요,쉬었다 갑니다.
아주 오랜 기억들이지요. ㅎㅎ 어제인듯도 하고, 아주 오래된 것 같아서 기억이 안나기도 하고 하여간에 뒤죽박죽입니다. 오늘은 어떻셨는지요. 요즘 계속 정신없이 바쁘신 것 같아요. 잠깐이라도 쉴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면 저도 행복합니다. 근데..넘 안타깝습니다. ㅎㅎ 언제나..언제일까요..?" ㅎㅎ
감사해요 스크랩해요
예. 저도 감사합니다~
나쁜교육>을 오래전에 봐서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예쁘게(?) 생긴 미소년이 나왔던 것만...;; <파라노이드 파크>에도 구스반산트의 지난 영화들처럼 미소년이 나오더군요. 이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미소년이 많이 나오기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감독님의 성적 취향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심을 눈치 챘는지 최근 영화엔 숀펜이 나오더군요. ㅎㅎ^^;;;;
<로나의 침묵>은 저와는 상당히 다르게 보셨네요.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나 다른 것들의 매력 같아요) 저는 로나와 남편과의 섹스 이후를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 그리고 죄의식에서 기인한 상상임신'이라고만
나쁜 교육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꽤 미소년이지요. ㅎㅎ 나이는 조금 많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에 미소년들이 많이 나오는 걸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산트 감독 꽤 좋아하는 제 친구도제가 그 얘길 했더니 자기도 그건 몰랐다며 넘 좋아했었어요. ㅎㅎ 감독님의 성적 취향이 좀 의심되기도 하지요..? ㅎㅎ 근데 그저 단순히 얼굴 잘 생긴 걸로만 어필하는게 아니라 그 내면에 뭔가가 있을법한 느낌이라서 저도 매우 좋더군요. 숀팬이라 ㅎㅎ정말 좀 안어울리는군요. 로나의 침묵에대해서 이렇게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군요
저도 이런 영환 거의 혼자서 보고, 혼자서 해석하는 북치고 장구치는 스타일이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듣지도 조율해보지 못했어요. 저는 로나의 침묵을 상당히 가슴저린 사랑영화라고 해석했는데.. 그걸 또 죄의식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네요. 전 그들의 정사신이 에로틱하고 열정적이라기 보단, 참 많이 서럽고도 성스럽기도 하고,애잔하게 느꼈어요.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려는 그 마음씨, 대부분의 여성에게 있는 모성애이기도 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해도, 숭고한 움직임으로 보여지더라구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단, 내가 주체가 되어서 항상 누군가를 갈구하는 능동적이고도 약간의 이기심을 가진
가진 저와 같은 사람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고결함이라 생각되어지더군요
생각했거든요. 하긴, 이전 영화 <더 차일드>에서는 '사랑'하는 커플과 그들이 낳은 아이가 나왔지요.
하지만 저는 <로나의 침묵>을 보며 초기 영화 <프로메제>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는데요. <프로메제>에서 주인공 소년이 아이를 가진 불법 이민자 부인을 돕는 이유는, 그소년의 아버지가 부인의 남편을 몰래 암매장한 것에 대한 죄의식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보면 '로나'가 남편을 돌보는 상황은 알콜중독 엄마를 돌보는 <로제타>의 상황같아요. 로나가 죽은 남편을 놓지 못하며 뱃속의 없는 아이를 지키듯이, <아들>에서의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놓지 못하며 아이를 죽인 소년을 지켜봅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저는 로나의 침묵이 유일해요. 다른 영화들과도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는군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일련의 영화들을 주욱 보고 싶네요.
저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남들이 많이 골라보지 않는 영화에 주목하며 나 이만큼 영화 봤어라고 자랑하기 위한?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반성할 때가 많이 있어요. 나만의 시각으로, 나자신만의 판단으로 영화를 보는 안목을 가졌음 싶어요.
덧글 달며 생각해 보니 다르덴 형제의 <로나의 침묵>은 지난 영화의 총 결산인가 봅니다. ^^;;; 언제 기회가 되면 <키친>을 보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을 주욱 보니까 그런 생각이 저도 드네요. 키친의 경우는 저는 주지훈에 주목해서 봤지만, 아마도 신민아에게 집중하게 되실 겁니다. ㅎㅎ
신민아는 얼굴도 ,몸매도 ,연기도 그런대로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배우인데 하는 족족 흥행에 다 실패해서 몹시 안타깝네요
기억나는 몇몇 아름다운 장면들이 얼핏 생각나는데, 주지훈의 비행기신, 사랑밖에 몰라 부를 때, 처음만난 그 좁은 공간에서 있게 된 두 남녀의 어색하면서도 잔뜩 설레이는 그 눈빛.. 그림의 한장면처럼 생생하네요. 저도 또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