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프랑스.
1995년 9월 말 국영방송 프랑스 2채널은 '앙부와예 스페셜(특파원이란 뜻)'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이 석면공해의 대참사를 고발하는 내용을 방영했다. 이 프로는 우리나라의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와 비슷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다.
석면이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내용은 너무나 섬뜩했다. 석면이 폐암과 호흡기 종양을 유발해 서서히 목숨을 앗아간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프랑스 최대의 노조인 CGT(노동총동맹)은 자체조사결과 95년 한 해 동안 석면에 의한 직업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3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2천년대에 가서는 매년 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석면의 피해 현황 발표는 프랑스인들에게 테러의 위협 못지않은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었다.
“어느날 저녁, 집으로 들어온 안느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7살짜리 딸 쥘리에트를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딸이 무심코 내뱉는 말에 곧 아연실색했다. ‘엄마, 학교에서 그러는데, 이번 방학때 석면을 걷어내는 공사를 한대. 안 그러면 우리가 폐암에 걸려 죽게 된대'”
95년 발간된 <리더스 다이제스트> 프랑스판 특집기사 ‘석면, 중독된 프랑스’의 내용이다. 그해 프랑스 언론은 석면의 위험을 대서특필했고 프랑스인들은 석면공포에 치를 떨었다. 파리 7대학의 경우는 건물벽에 석면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학교 전체가 난리법석이었다. 파리 7대학의 교직원 중 2명이 석면피해로 숨졌다. 그러자 수학교수인 알랭 샹시네씨는 연구실에 출근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수업도 다른 대학의 강의실을 빌려서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실 석면은 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각광받는 건축자재였다. 생산원가가 낮은데다 가볍고 방음, 화재방지 효과도 탁월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현장에서는 석면이 많이 사용됐다. 건축 신소재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석면배합시멘트는 아무런 의심 없이 광범하게 이용되었고 프랑스 전역의 건물 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사무실, 교도소는 말할 것도 없고 병원, 수영장, 학교건물에도 사용되었다. 그 뿐이 아니다. 석면은 건축현장을 벗어나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기차의 침대칸과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가전제품, 오븐용 장갑에도 두루두루 사용됐다.
각광받던 신소재가 죽음의 물질로
60년대에 이르러 학계는 이 신소재의 정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석면의 유해성을 밝혔다. 그후 의학서적에는 석면가루나 먼지를 들이마시면 치명적이라고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런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건축업계에서는 여전히 인기재료로 계속 사용되었다. 석면의 치명적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이다. 석면으로 천을 짜는 공장에서 심각한 직업병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공장은 클레르몽 페랑에 위치한 석면공장 ‘아미솔’이었다. 이곳 노동자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석면에 완전히 노출된 채 작업을 했다. 몇몇 노동자들에게 호흡기장애가 발생했지만 공장주치의는 아무런 경고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몇 년 후인 74년, 이곳에서 일하던 271명중 12명이 폐암으로 사망했고 공장은 문을 닫는 비극을 맞았다. 이 사건이 있은지 3년이 지난 7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당시 보건부 장관이던 시몬느 베이는 석면관련 산업에 대한 엄격한 안전규정을 내용으로 하는 법적 규제를 마련했고 이듬해 78년부터 공공건물에서의 석면사용이 전면 금지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전에 대규모로 건설한 건물들이었다. 건물 벽과 천정 곳곳에 포함된 석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석면은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는 의학계의 보고는 수십년이 지나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92년 석면피해자는 902명으로 집계되었고 그후 매년 거의 3000명에 이르는 사람이 석면피해로 죽어간다는 보고도 나왔다.
95년 대대적인 석면철거공사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급박하게 진행된 것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석면에 대한 공포가 잊혀진 기억이 되고 있다.
12년 전 프랑스 기억해야
한편 2007년 1월 대한민국.
서울지하철 2-4호선 17개 역사에서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는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노사 공동으로 실시한 외부 전문기관 검사 결과 2호선 영등포구청, 한양대, 을지로입구, 시청, 신림, 삼성, 낙성대, 교대 등 , 3호선 충무로, 4호선 숙대, 성신여대입구 등 17개역의 승강장 천장과 벽에서 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검출된 석면들은 70-80년대 전철역사 건설과정에서 냉난방 통풍구 연결 부위를 고정해주는 재료나 열차가 들어올 때 소음을 줄이기 위해 천장에 뿌리는 흡음재로 쓰인 것들이라고 한다. 서울 지하철노조는 성명을 내고 ‘당국이 서울 지하철 역사 전체를 대상으로 석면, 라돈 등 인체유해물질의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12년 전 프랑스와 거의 흡사하다. 프랑스는 국가적인 대응으로 죽음의 물질인 석면을 추방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96년에는 시라크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석면이 다량 포함된 파리7대학 건물을 무려 10억 프랑(약2천억원)을 들여 철거하고 재시공했다.
똑같은 죽음의 공포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유럽선진국의 과거는 어쩌면 우리 미래의 모습이다.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위험을 덮어둔다면 언젠가는 시한폭탄이 되고 원자탄이 되어 우리사회를 덮칠 수 있다. 이것이 석면에 대처했던 과거 프랑스의 노력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아미솔 공장과 파리 7대학의 참사만은 피해야겠기에 말이다.
◎최연구(choi@kbsf.co.kr): 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에서 ‘남북통일과 독일통일의 지정학’이라는 논문으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21 파리통신원,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어판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장 겸 주간을 거쳐 현재 한국과학문화재단 경영혁신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프랑스 문화읽기(중심, 2003)' '르몽드(살림,2003)'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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