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브리서 6:19)
새해가 힘차게 다가 왔다. 새 해에는 더 큰 소망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길 원한다. 그래야만 한다. 지난 해에도 지구촌 구석 구석에서 우리를 절망케 이끄는 수 많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라크 전쟁은 아직도 끝을 보지 못한채 진행 중이며, 미국의 경제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달러가 세계 곳곳에서 외면을 당하는 처지가 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부실 모게지로 집 값이 떨어지고 있으며 기름 값이 오르고 물가는 하루가 달리 치솟고 있는 가운데 있다.
한국에서는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시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들은 입시지옥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능시험이 끝나면 아파트 위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슬픈 소식들이 들려온다. 지난해 한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약 2만명에 이르는데 이는 하루에 15.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들려오는 소식마다 우리를 낙심시키고 불안으로 떨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깊은 절망과 허무에 뻐져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한결 같은 외침은 어디를 둘러 보아도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규이다. 이 때야 말로 진정 우리는 소망을 다시 발견하고 그 힘을 의지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소망이란 무엇일까? 소망이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을 때 믿고 인내하며 의지하는 힘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고전 13:13)라고 말씀하였는데 소망은 때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사랑이 약해질 때 비로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즉 믿을 수 없을 때 믿음을 유지하도록 힘을 주는 것도 소망이요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할 수 있도록 지탱시켜 주는 힘도 소망이다.
이 소망은 히브리서에 의하면 닻의 이미지로 설명되고 있다. 즉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다. 심한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닥칠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는 심하게 요동하고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이 때 깊은 닻줄을 내린 배는 그 흔들림 가운데서도 바다에 떠 내려가지 않게 된다. 믿음의 선체가 흔들리고 사랑의 노가 실종 될 때도 소망은 우리의 삶의 바닥에 닻을 내리고 그 배?요동치 않도록 굳게 붙들어 준는 힘이다.
오직 소망만이 우리를 아무런 기대와 믿음의 근거가 없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약속과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며 끝까지 기대하고 이루어낼 수가 있다. 믿음과 사랑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없다고 당장에 죽지는 않는다. 실연에 빠진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실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살 소망을 잃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망이 없으면 더 이상 삶을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우리가 보게 되는 그 많은 자살들은 이 땅 위에서 더 이상 소망을 상실한 증거이다. 때로는 믿음과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자살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망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소망은 우리의 생명의 심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이처럼 중요한 소망에 대해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이나 사랑에 비교해 볼 때 소망은 교회 안에서 신학적으로나 영적으로 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왔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오늘날 처럼 길거리 마다, 집집 마다, 절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넘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소망 처럼 절실하고 다급한 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저평가된 소망을 회복하는 일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영화 “쇼생크 감옥의 탈출”은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그려주는 명화이다. 원제는 쇼생크의 구원 (redemption)임을 생각할 때 적절한 제목이라 보여진다. 주인공 앤디 뒤프레센은 회계사였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고 종신형을 받고 복역한다. 그 살벌한 감옥생활에서도 그는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감옥을 탈출하여 해변에서 햇빛을 즐기는 소망이다. 다른 동료들은 다들 그를 미쳤다고 비난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다른 동료들에게도 나누고 전염시켜 나간다. 비록 그 과정에서 죽도록 얻어 맞기도 하고 죽음과도 같은 60일 독방에 갇히지만 그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힘은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동료들에게 대답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낸다. 해변에서 멋진 생활을 누리게 된것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도 함께………
이처럼 우리가 소망을 의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록 소망은 더욱 절실해 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망은 우리가 무언가 가지지 못했을 때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이런 소망은 낙관주의적 자세와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소망이란 우리에게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대가를 치를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신하는데서 발견된다. 소망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기대이다. 그러므로 소망은 앞을 바라보며 과거와 미래의 모든 장애물을 뚫고 길을 만들어 나가는 힘이다. 이 소망으로 무장할 때 우리는 비로서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발견하기 어려울 때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소망은 우리의 힘으로 유지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마음을 열고 그 은혜를 받아 들일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무언가 우리의 삶에 다가오시도록 허용할 수가 있다.
모든 소망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성육신으로 우리와 같아지셨고 그가 고통을 받고 죽으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가 성육신을 통해 우리와 같아지심으로 우리도 그와 같아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고통을 통해 부활을 이루신 것 같이 우리도 고통을 통과하지만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열매에 동참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의 근거이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심지어 죽음과 같은 골짜기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주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게 되며 (롬8:24-25) 오직 소망이 있을 때에 우리는 인내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새해에는 이 소망으로 고통과 환란에 찌들어 가는 이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소망으로 믿을 수 없을 때도 믿고, 사랑할 수 없을 때도 사랑함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영원한 덕을 완성해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