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눈 탓하는 사내
보름 전의 일이다. 시내 대형 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포장 광어회 한 접시를 샀다. 원래 생선회는 동네 횟집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왁자지껄하며 먹어야 제맛이지만, 요즘은 그렇지않은 실정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즈음하면서 신체 능력의 노화로 활동반경이 축소됨은 물론, 무엇보다도 시력의 급격한 저하가 ‘삶의 질’을 급격히 추락시켰다. 돌이켜보면 청장년 시절에는 눈이 좋기로 평판이 나 있었다. 양안 시력 1.5이상의 초롱초롱한 눈매에 흑백이 뚜렷해서 처음 만난 이들의 상면 소회가 ‘깊고 맑은 눈빛이 쏘는 듯하다’는 평을 한 두번 들은 적이 아니다. 이른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라는 양주동 박사의 예를 든 이도 있었다.
광어회를 거실 탁자에 펼쳐놓고 아내와 소주를 곁들이던 중, 막 집어든 회를 아내가 제지하면서 횟감들에서 검붉은 무언가를 찾아 헤집어 떼어 냈다. 그리곤 “이건 충(蟲)이요” 하면서 잘 살펴보라는 조언을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았으나 내 시력으로는 발견하기 힘들었다. 이 삼년 전부터 급격히 떨어진 시력의 실체를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최근에 벌어졌던 몇 가지 사소한 사건(?)들도 이 형편없어진 시력 때문임을 떠올렸다.
두 가지 사건은 모두 동네 당구장에서 일어났었다. 지방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아우가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집에 오는데, 형제가 동네 아래 윗집에 사는지라 만나면 취미가 같은 당구 한게임에 석양주 한잔하는 것이 습관처럼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항상 이용하는 시장통 당구장의 주말 단골손님처럼 되어 출입하는 여러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아우와 당구장에 들어섰을 때, 게임 테이블에 제법 손님들이 많았다. 대기석에 앉으려는데, 게임 중이던 사람이 머뭇거리며 한마디 하는데 “저~ 못 보신 모양이죠? 인사했는데…”하며 약간은 무안스러움에 쓴웃음마저 지어 보였다. 황급히 사과하며 시력 탓을 에둘러댔으나, 주위를 보니 안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슬쩍 외면하는 것이 딴에는 모두 목례로 예의를 표했는데, 모른 체한(보지 못한) 나의 무시에 대하여 질책하는 분위기였다.
또 한가지는 아우와의 게임 중 일어났다. 소위 쓰리쿠션 게임인 3구 경기 중 벌어진 일이다. 내 딴에는 분명히 규정대로 적중되어서 득점인 줄 알았는데, 아우에 의하면 “미세하게 벗어나~” 득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아심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게임을 지켜본 주위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 두 사건의 실체는 시력저하로 인한 나의 귀책사유였다.
문득 얼마 전 아내의 핀잔도 떠오른다. “당신은 이웃집 이씨 아줌마가 인사하는데도,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그 아줌마 무안해 하는 것 같은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시력비상(視力非常) 사태다. 병원 안과 방문이 우선이지만, 눈 좋기로 소문났던 사내의 추락이 믿어지지 않아 괜한 억울함 마저 한 켠에 떠오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나온 세월 동안 형형한 정시(正視)의 눈길로 세상을 굽어보지 못하고, 이쪽 저쪽 곁눈질에 이골이 난 사시(斜視)의 내홍들이 빚어낸 필연일 것이라고 푸념했었다.
‘좌광우도’란 말이 있다. 생선을 앞쪽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광어와 도다리를 구분하는 방법인데,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언젠가 횟집 수족관에서 광어를 내려다보며 “참 이놈도 나처럼 눈치 하나로 버텨왔구먼!” 혀를 찼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은 수중 밑바닥에 넓적 엎드려 은신하며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어주다가, 먹이를 포획하는 눈치 100단의 처세가이기도 하다. 나는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에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정년퇴직까지 반평생을 국가를 위해 봉직한 사람이다.
봉직하는 동안 여덟 번의 정권을 경험했고, 수많은 정치 사회적 격랑(激浪)을 겪었다. 행정 최일선에서 언제나 새로 출범한 정부의 모토(motto)에 충실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념이나 개인이 지향하는 신념의 표방이나 담론은 공직자에게는 금도(襟度)를 벗어나는 일로 치부되는 공직사회의 불문율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느 정치인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라는 말로 비하했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치 광어와 도다리처럼 시류에 따라 눈알이 한쪽으로 쏠리길 반복하는 기막힌 처세술로 진화되었다는 나의 푸념은 생뚱맞은 괴변일까.
요즘도 위정자들이 행정부에 사건이 일어나면 공직기강 운운하면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라’는 언급을 자주한다. 광어와 도다리 눈알처럼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지 말고, 시달된 방침에 열심히 따르라는 솔직한 주문으로 이해해본다.
며칠 전 눈 오는 날이다. 주석에서 친한 지인들에게 안과에 가서 백내장 수술을 시도해야겠다고 말했다. 지인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석양길에 노안이 온 것은 당연하다’와 ‘안경을 쓰면 된다’가 있는가 하면, ‘수술 경험자인데, 시간 지나면 도로 혼탁해 진다’라는 말도 있었다. 물론 ‘바른 선택이야, 같이 가봄세’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시를 쓰는 친구 하나가 불쑥 “에이~ 한형한테는 그 망막에 짙푸른 강호(江湖)의 풍진을 쐬면 그깟 시력 따위야 원왕생(願往生)이지 암, 그렇지…” 한다. 평소에도 조금은 괴팍스러운 친구라 허허 웃으며 “그 강호 풍진에 원왕생 하는 방법이나 알려주게”라고 말하자, 시인 왈 “집에 가면 동기창(董其昌)이나 함 읽어 보게”한다. 그래서 “마침 눈도 오는데, 눈이 흐려서 넘어질까 두렵네. 그칠 때까지 그 동기창 전기(傳記)나 들려주게” 하니, 대뜸 “에이~ 이 사람, 눈 오는 날 눈 탓하네. 술이나 따르게나” 하는데, 말대꾸로는 당할 수 없어 그저 술이나 들이키고 일어섰다.
‘동기창은 명나라 말기의 유명한 화가이자 학자요 정치가인데, 후대에 조선의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의 행적을 우러르며 실존적 예술의 경지를 넓혀 나갔다’ 라는 정도로 알고 있던 차에 일독을 권하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최근의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다가 ‘아하! 그 친구 이 기사를 보고 권유 했구만!’ 무릎을 쳤다. 요지는 동기창의 말년처럼 강호풍진 벗삼아 주유하며 예술적 심미안을 가지라는 뜻이 틀림없으리라. 다만 운송수단을 동기창이 탓던 서화선(書畫船)을 자동차로 치환한 것 정도겠지. 시인의 말대로 자연 속으로 녹아들면 시력도 신체도 나아지리라. 그렇지만 아쉬운 생각이 넘친다. 나의 생활 패턴과 경제적 여건등을 무시한 주유천하라….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무언가 호연지기를 불어넣어 주는 시인의 배려에 고마움도 뭉클 일어난다. 모 일간지 연재 코너에 실린 내용 중 일부를 보면
~(상략) 그렇다면 동기창은 정말 강호를 돌아다녀 보고 이런 말을 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해보지도 않고 말로만 그런 것인가? 중국의 고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이동천(李東泉·60) 선생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았다. 그는 베이징에서 이 분야의 대가였던 양런카이(1915~2008), 펑치융(1924~2017) 밑에서 9년간 사사를 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빠삭하다. “동기창은 중국 강남 지역에서 서화선(書畫船)을 타고 다니며 그림을 사고파는 삶을 살았다. 아마 벼슬을 그만둔 50대부터 죽기 직전까지 30년 가까이 강호를 돌아다녔을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화선은 그림·글씨·청동그릇 등을 싣고 동네를 다니며 사고파는 배다. 중국 강남의 진강(鎭江)에서 항주까지는 그물코처럼 수로가 발달돼 있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연상하면 된다. 배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동기창은 자신의 배를 화방(畵舫·그림 그리는 배)이라고 불렀다. 배의 길이는 약 7m. 배 안에는 술과 차도 있고, 안주거리로 육포도 있었다. 이야기가 통하는 손님이 동네 집 앞에서 바로 배로 올라타면 술도 마시고 육포도 먹었다. 배에서 잠도 자고 밥도 해 먹었다. 그러니까 쌀도 한두 가마 싣고 서화도 몇 상자를 실을 수 있었다. 배에 탄 사람은 하인 2~3명. 그리고 동기창의 절친이자 동업자, 일류 미술품 감식가이던 진계유(陳繼儒·1558~1639)도 같이 다녔다. 하인들은 노를 젓고 밥을 짓고 손님 접대도 했다. 동기창보다 500년 앞선 미불(米芾·1051~1107)은 ‘온 배에 서화가 가득하고, 밝은 달이 함께한다’는 서화선의 유람을 시로 읊었다.
- 조선일보(2025.12.1.) [조용헌 살롱] [1518] ‘서화선(書畫船) 유람’ 중에서
백내장 수술하러 아침 일찍 나섰다.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란다. 어느 거리에서는 동공이 얼어버릴 듯한 삭풍마저 몰아쳐 와 새우처럼 웅크렸다. 지하도의 오름 계단이 멀리 피안(彼岸)의 물결처럼 일렁였다. 부모님이 주신 눈알에 메스를 대는 개벽이 있는 날이다. 이제 좌광우도, 좌고우면의 세상을 지워버린 새로움의 시대가 열릴 것인가. 과연 그 시인 친구의 권유대로 동기창의 황혼 속으로 스며 들어갈 것인가…. 허어라~ 우선 그간 별러왔던 몇 권의 책부터 읽고.
[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