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4일 이틀간 조계사에서 있었던 종사르 켄체 린포체의 반야심경 법문 내용을 올립니다. 그냥 제가 들리는 대로 정리한 내용인데다 첫날에는 제가 늦게 도착하여 앞쪽의 말씀은 정리하지 못 했으니, 참고하시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 종사르 켄체 법문 ]
9/3/15
ㅁ Empiness is nothing. Everything is just a fun play
ㅁ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 색즉시공 공즉시색
ㅁ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보리심을 베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ㅁ 어떻게 습관을 바꾸어 갈 수 있을까요?
- 부처님의 모든 말씀은 실행할 수 있는 것이기에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 예를 들어, 습관을 싸울 때 습관을 활용하여 습관을 무력화 할 수 있습니다.
- 금강승 방법 : bribing, outwitting, or alluring the habit
ㅁ 아이들에게 공성을 가르치는 방법
- 포도에만 집중해서 2분동안 씹어 먹도록 해 보세요. 또는 유행가를 2분동안 듣도록 해 봅시다
- 불교 수행의 최대 적은 "산란심"입니다.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는 것, 그것이 공성입니다. 여러분 손가락은 10개입니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지금' '항상' 인지할 수 있나요?
9/4/15
ㅁ 바른 견해/지견 view가 중요합니다
- 이 견해가 다른 종교와 구분하는 분명한 기준입니다. 명상도 아니요, 자비심, 사랑도 아닙니다. 근본이 되는 견해가 분명히 다른 것이 중요합니다
- 왜 기독교인, 무슬림, 불자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고, 사랑과 자비를 하라고 하는가가 분명히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공성의 견해' emptiness based on sunyata에 기반한 것입니다
- 일반적으로 다른 종교의 출가 수행자들은 세속의 즐거움을 버리는 데 이는 유혹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왜 출가를 하는 지는 공이 쾌락과 서로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ㅁ 불교의 견해는 어려운 주제입니다. 왜?
- 견해는 말이나 글로 표현될 수 없다.
ㅁ 불가해한 이것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 가장 쉬운 방법은 "헌신 devotion" 또는 '자량쌓기'입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다만, 중생들의 분별심, 의심이 가장 나쁜 장애입니다
- 다른 방법은 '삼매'에 드는 것입니다. 명상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쓰여서 정확히 이해되고 있지 않아 나는 안 씁니다. 불교의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We do meditate to understand the truth, sunyata!
ㅁ 다른 방법은 논리로써 이해하는 것입니다. 불교학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논리 자체에 제한과 한계가 있습니다
- 나타남 appearance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대로 아무것도 실재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실재, 실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 실재하려면 모든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독립적이고, 변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용수보살 전승에서 공성을 증명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Truely exist vs. Relatively exist. 승의제 : 세속제. 그 어떤 것도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는 공성의 "공" empty 측면을 잘 이야기합니다
- 네가지 극단, 사단 : existing, non- existing, existing and non-existing, neither of both. 이 네가지를 모두 넘어서야 하는 것이 공성이며 용수보살의 가르침입니다
- 무착보살 Asanga 방법 : 스파게티 소스가 더러워졌다고 합시다. 접시를 닦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접시를 닦는 것이 아니라 소스를 닦는 것이다. 소스는 본질이 아니고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즉, 공성의 "성" -ness 측면을 잘 설명합니다. 이것이 여래장 사상이고, 한국 불교 전통에 맞을 것입니다.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두개 논리는 절대로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 비어있음, 비어있음이 없음 이라고 할 때, '없음'을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ness"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왜 이렇게 어렵게 여러가지로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아기가 아플때 모유를 먹지 못하게 젖꼭지에 쓴맛을 발랐다가, 아기가 나으면 다시 먹게 하듯 다양한 방편으로 공성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성을 통해서 그릇된 견해를 철저히 파괴하는 것입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열반도, 죽음도, 불도도, 불도가 아닌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ㅁ 공성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실수행을 통해 증득할 때만이 공성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ㅁ 세상의 모든 문제는 "我" selfness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그러기에 모든 오온은 본질적으로 공하고, 그러기에 자성이라고 할 것이 없다. 그러기에 태어난 적도, 없어진 적도, 늘어나지도, 줄지도, 더러워지지도 않습니다
ㅁ 매우 중요한 점은, 공성은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의론이나 염세주의로 빠지면 안 됩니다. 불도의 목적은 오직 미혹을 없애는 것입니다. 환영을 실재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칭찬에 기분좋아 하는 것, 비난을 받으면 기분 상하는 것 등의 미망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것이 불도의 목적입니다
- 아띠샤 존자 말씀 : 우리를 나약하게 하는 것은 여덟가지에 함정 - "칭송받으면 기뻐하고, 비판받으면 우울하고, 관심받으면 좋아하고, 무시당하면 싫어하고, 얻으면 좋아하고, 잃으면 싫어하고, 행복한 것을 좋아하고, 불행한 것을 싫어하는 것". 중생들은 이 8개의 함정에 어느 하나에든 걸리게 됩니다. 이 함정에서 영원히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 이 모든 것들이 환영이란 것을 이해하는 것은 공성을 이해하고 증득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 누가 칭찬을 해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칭송을 들어도 기뻐하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공성을 이해하는 것이고, 지복로 가는 길입니다
ㅁ 공성 수행법
- 모든 수행은 개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 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든 수행법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좋은 명상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해탈도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마타는 여러 종교에 다 있으나, 위빠사나는 오직 불교에만 있습니다. 모든 금강승 명상 수행은 위빠사나 입니다.
- 마하신디 = 족첸 ; 사다나 = 수행법
- Just be aware and watch, 그냥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무생각도 없으면 그대로 바라 보세요. not engaged with mind
ㅁ 불교 수행인은 모든 사람들이 "불교 신도"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진정한 불교 수행인은 모든 이들이 "부처님"이 되기를 서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