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 (2000)
La Commune (Paris, 1871)
드라마, 다큐멘터리 프랑스 345 분
1870년 시작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프랑스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굴욕적인 강화조약은 파리 시민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또한 전쟁 기간 중 국민군이 사용했던 대포의 압수를 둘러싸고 임시정부와 시민간의 마찰이 빚어진다. 그러나 대포를 압수하기 위해 파견된 정규군과 시민군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임시 정부는 마르세이유로 도피한다. 이러한 일련의 파리 꼬뮌의 성립 과정은 가상의 방송국인 마르세이유 TV와 꼬뮌 TV를 통해 각각 다른 내용으로 전달된다.
서구사회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정부였던 파리 꼬뮌의 역사적인 순간을 대부분 연기 경험이 없는 220명의 출연진을 통해 그려냈다. 출연자들은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했고, 당시의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과 실업 문제와 같은 현재의 문제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역사의 현장에 가상의 방송국을 투입하여 현대 매스미디어의 왜곡된 보도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
[고종석의 파리코뮌 트위터 평]
영화 [레미제라블]이 삼천포(에 사시는 분들껜 죄송)로 빠져, 타임라인에 1871년 파리코뮌에 대한 얘기가 무성하다. 파리코뮌에 대한 간단한 결산: 시민군(파리군)이 처형한 반혁명분자는 약 500 명. 시가지전투 중 정부군(베르사유군) 사망자는 약 900 명. 시가지 전투와 그 이후의 보복(글자 그대로의 보복이었음. 재판 없이 총살된 노동자만 약 3,500 명) 과정에서 살해된 파리 시민 수는 자료에 따라 천양지차.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까지. 특히 노동자의 대학살이 저지러짐. 파리의 제화공, 연관공, 너새공, 페인트공의 반이 학살됨. 베르사유군의 파리 점령(파리코뮌 붕괴) 뒤 파리는 자치권을 잃고 정부의 직접관할지가 돼 1977년까지 시장이 없었음. 그 첫 시장이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 1876년까지 파리는 계엄령. 신문과 연극은 사전검열. 카페와 레스토랑 심야 영업 금지.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발발까지 파리코뮌에 대한 공적 찬양이 금지되고, 파리 사람들은 위험스러운 무정부주의자들로 여겨져 지방 사람들로부터 왕따당함. 파리코뮌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국내에서 허용된 건 제1차세계대전 이후. 위대한 제3공화국도 거의 반세기 가까이 파리코뮌에 극히 적대적이었다는 뜻. 파리코뮌에 대한 당대의 극히 긍정적인 평가를 접하고 싶은 분은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을 읽으시라.
첫댓글 우리 컴이 스피커를 달지않아 무성으로 봐야 겠네요 ~~~
웬만허면, 그 옆에 중고가게 가셔서 하나 얻어 오시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스피커 몇개있는디 영업에 방해되어 설치를 안 했을뿐, 복많이 쟁취합세다~~~
내것두 왜 소리가 안 들리지? ㅠㅠ
스맛폰으로 보세요. 소리 안 들리면.
이런! 정보씨 우금치 스맛폰 없는디 어여 벌어 한개 사주시라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