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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
제118회 산행일지 : 산행과 여행의 합집합
(강원도 영월군 장산)
일시 : 2012년 6월 6일(수)
참석자 : 문광덕, 김이돌, 금도현, 김생곤
날씨 : 맑음
누구나 주변을 소홀하기가 쉽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여행만 해도 그렇다.
‘서울 사람이 서울을 더 모른다’고 주변을 ‘그저 늘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며칠 전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이 ‘장애물 없는 관광자원 부문’에서 ‘한국관광의 ★’에 선정되었다.
생태관광자원에서는 ‘울진 금강소나무 숲’이, 체험형 숙박부문에서는 ‘영주 선비촌’ 등 총 10개 부문이 ‘한국관광의 ★’에 선정되었다.
특히 대구 근대 골목은 삼일운동 거리, 의료선교 박물관, 능금의 고장 대구사과의 최초 나무, 계산성당, 이상화와 서상돈의 고택, 그리고 진골목과 약전골목 등을 아우르는 근대 100여 년의 역사를 안고 있어 해마다 관광객들이 급증하고 있고, 국민 TV 프로그램인 1박2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렇지만 주변에 살면서도 난 아직도 정작 찾아보지 못하였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중하고, 멋지고, 뜻 깊고, 우리의 정서에 훨씬 더 교감이 되는 국내의 여러 곳들보다 외국여행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선호하고 기대한다.
등고선 멤버들과 전국 산을 산행하면서도 주변에 산재하는 이러한 곳들을 간혹 들르기는 하지만 대개 산행시간이 급하여 놓쳐버릴 때가 많다.
매번 산행을 할 때마다 ’내 생애에 다시는 못 올 산‘이라는 마음으로 가지만 그 주변의 볼만한 곳들도 따져보면 다시 오기 어려운 곳들이 대부분이다.
하여 가급적이면 시간을 쪼개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장산(壯山)은 이름이 풍기는 묘한 맛이 있다. 얼핏 중국풍의 냄새도 나지만 뭔가 장엄한 느낌마저 전해진다.
두 달 전 어렵게 찾아갔지만 입산금지 기간인 탓에 이웃의 선바위산으로 방향을 돌려 계획치 않았던 또 다른 산의 멋진 모습을 보았지만 그래도 뜻하였으나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같은 느낌이 있어 빠른 시간에 재도전하기로 하였다.
오전 7시 30분, 매송의 아파트에서 만나 중앙고속도로 풍기 IC를 나와서 동양대학교 맞은 편 정도너츠 집에 차를 세웠다.
영주는 생강의 산지로 유명한데 영주시로부터 ‘생강저장 및 가공기술 개발’이라는 용역연구를 2년간 수행한 경험이 있어 여러 차례 일로 다녀간 적이 있다.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생강도너츠를 한 통 주문하였더니 원래 10개가 정량(9,000원)인데 “사람이 넷인데 싸우지 말라”며 12개를 넣어주는 후한 인심의 종업원이 아침을 기분 좋게 한다.
다들 맛있다고 하는 이 도너츠집은 대구에만 하더라도 다섯 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다.
순흥 방면으로 향하다가 부석사에 이르기 전, 좌측의 935번 도로로 접어드는데 입구에 ‘버스통행불가’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만 더 가니 길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시멘트 길의 오르막으로 바뀐다. 나뭇가지가 차창을 두드리듯 스치는 길이 높이를 더해감에 따라 공기의 서늘한 느낌도 달라진다.
어느 듯 고개마루에 올라선다.
마구령(810 m), 백두대간을 알리는 산림청의 표지석이 멋스럽게 서 있다.
그 표지석 뒷면에는 이곳의 지도상 좌표와 함께 ‘경상도에서 강원도, 충청도를 향하는 관문으로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이라 하였으며 경사가 심해서 마치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하였다’는 유래를 적고 있다.
그 옆에는 우리나라의 산줄기인 백두대간과 13정맥에 대한 안내표시와 인근의 산행안내가 함께 있다.
이곳의 왼쪽으로는 약 20 km에 소백산 국망봉이 있고, 우측으로는 선달산을 거쳐 멀리 태백에 이른다.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맞은 마구령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백두대간에 대한 소망을 다시 일깨웠으며 뜻하지 않게 받은 큰 선물이기에 단체 셀카로 인증샷을 남겼다.
내려서는 길은 의외로 금방이고 길도 넓고 편안해진다. 내리리를 지나 국도로 계곡을 계속 따르면 방랑시인 김병연의 널리 알려진 이름 김삿갓이라는 이정표가 자주 나온다.
이 일대가 영월군 김삿갓면인데 2009년 10월, 하동면에서부터 개명한 새 이름이다.
이곳에서 영월방향으로 흐르는 수려한 계곡이 바로 김삿갓 계곡인데 여기에는 감삿갓 문학관, 김삿갓 유적지, 성인용 춘화(春畵)가 있다는 홍보용 현수막을 내건 조선민화 박물관 등 가볼만한 곳이 널려있다.
그렇지만 오늘도 일일이 들를 시간적 여유가 없음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동읍을 거쳐 상동읍에 이르는 국도변은 계속 수량이 풍부한 물길로 이어진다.
강원도의 큰 물길은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나뉘어 지는데 북한강은 설악산 혹은 북한 지역에서 시작되어 소양댐 등 여러 댐을 지나 서진한다.
남한강은 백두대간의 영서 방면에서부터 이어지는 정선의 내린천, 그리고 북쪽의 평창방면을 지나는 주천강이 영월에서 만나 충주댐에서 몸을 쉬었다가 한강으로 흐른다.
그러니 이곳의 물길들은 영월에서 더 큰 물들을 만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산솔마을 언덕위의 멋진 소나무를 뒤로 하고 선바위산 입구를 지나 상동읍에 이르면 시간을 되돌아온 듯한 느낌의 거리를 만난다.
한때 광산으로 돈과 사람이 몰렸던 이곳은 유령의 도시라고 혹평하는 자들도 있으나, 내게는 역사의 한 잠면으로 남았고, 현지인들은 대한중석이 재개발 한다는 현수막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폐가로 변한 과거 사원 연립주택 옆을 돌아 오르다 지난 번 주차하였다가 뒤따라온 산불감시원에게 쫓겨 내려간 지점인 망경사 300여 미터 아래 임도가 지나는 곳에 주차하곤 배낭을 메니 11시.
길가에는 입산통제 안내와 함께 이 지역이 주목, 분비나무 등 식물유전자원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안내가 서 있다.
망경사, 장산 남쪽 건너편에 솟은 태백산 장군봉 부근에 있는 설경이 아름다운 망경사와는 직선거리로도 30 km 정도이며 한자 이름마저 같은데 그 연유는 어찜인지?
북쪽을 바라보는 좁은 터에 작은 대웅전 창고와 요사채 두어 칸만이 자리 잡고 있는 조용한 산사이다.
대웅전 옆 ‘망경약수’라는 물을 식수로 확보하고 곧바로 인적 없고 좁은 산길의 등산로로 접어든다.
손길 가지 않은 신록, 울창한 원시림의 자연이다. 그러나 경사가 자못 심하여 간만에 땀을 제대로 흘려본다.
일주일 전 쯤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는 매송이 다소 힘들어 하며 선두를 나에게 넘긴다.
우측에 암괴류를 두고 햇살 한 푼 들지 않는 짙은 숲속을 40여분 정도 오르다 쉬고 다시 올라 12시 10분경 능선에 닿아 숨을 고른다.
뒤이어 사람소리들이 다가오기에 다시 오르막을 10여분 이상 진행하니 서봉 및 정상으로 향하는 삼거리의 진정한 능선에 닿았다.
망경사로부터 2.0 km를 올라왔고, 우측으로는 서봉을 경유하는 하산길이 2.9 km, 좌측으로는 정상이 1.3 km에 있다는 이정표가 섰다.
정상을 향하면 곧 우측에 전망 좋은 바위가 있고 10여분 더 완만한 길을 오르다 우측 안부같은 곳에 자리를 펴고 식사를 한다.
강하지 않은 바람이 땀에 젖은 피부와 옷깃을 뽀송하게 한다. 이 부근이 명당인지 뒤이어 오르던 대부대가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하며 소란을 만든다.
커피까지 마시며 한 시간여를 쉬었다가 편안하고 울창한 숲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니 오후 2시 10분.
壯山, 1408.8 m의 정상석이 사자(死者)의 비석처럼 섰다. 함백산, 태백산, 어렴풋이 보이는 대간 줄기는 물론 가까운 곳의 높고 낮은 강원의 산들을 보는 전망이 훌륭하다.
청죽이 사과 대신 사온 대형 토마토를 한 개씩 나누어 먹고 있으니 단체 산행객이 정상으로 오르며 또 다시 큰 소란을 만든다.
서울서 온 41명의 알파 산악회원들이라 한다. 산행대장은 ‘대한민국에 모르는 산이 없다’며 회원들이 자랑하기에 ‘대구의 앞산을 아느냐?’ 했더니 “지난달에 앞산에서 비슬산까지 다녀왔”댄다.
어평으로 하산예정이라는 이들을 두고 우리는 온 길을 되돌아 하산하자니 후미들이 정상으로 오르며 교차한다.
그중에는 대구가 고향인 사람도 만나고 산나물을 하며 오르는 이들에게 미나리 향내가 나는 참나물을 배우기도 했다.
정상에서 600 미터를 내려와 우측의 절음박골로 길을 잡아 내려오며 참나물 뜯기 실습을 한 것이 어느 듯 한 봉지가 되었다. 이제 참나물을 알 것 같다.
비록 암괴류가 곳곳에 있지만 장산은 육산이다. 특히 정상부근은 평지에 가까울 정도의 완만한 경사지로 나무와 그 아래 풀들이 무성하고 때로는 조릿대가 무성한 구간도 있다.
한약재로 쓰이는 전호의 흰 꽃무리가 가득 핀 곳에서는 각색의 나비들이 각양의 몸짓으로 몰려 나비천국을 이룬다.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은 종류와 수의 나비를 한꺼번에 본 것 같다. 장산은 비록 잘생긴 바위가 없고, 빼어난 미인형의 산은 아니지만 숲이 좋은 참 편안한 산이다.
어느 듯 하산길도 경사지역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키 큰 양치류들이 정글처럼 자란 사이에 이끼 낀 돌들이 길을 내고 있는 정글같은 길을 한참이나 따라 임도를 만나고, 그리고 다시 20여분 내려와 출발지점에 이르렀다.
매송은 아침에 보아둔 머위를 채취하러 가고 남은 우리는 손발이 고통을 느낄 정도의 차가운 물에서 발과 땀을 닦았다.
폐허같은 집들과 상동읍 거리를 몇 장의 사진에 담고는 차의 속도를 높였다.
돌아오는 길은 중동의 합수지점에서 88번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봉화방면으로 오다가 춘양면에서 다시 915번 도로를 갈아탄다.
이 길의 좌측에는 춘양목 산림체험관이 있는데 이 일대에는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실령(780 m)를 넘으면 오전약수를 지나고 곧 물야면에 이른다.
봉화군 물야면 물야초등학교, 올해 86회의 졸업생을 배출한 전통의 이 학교는 자연환경이 뛰어나 매송이 와보고 싶어하던 곳이며 교매 가족과 우리 가족 합께 8명이 정확히 10년 전인 2002년 6월에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다.
소나무와 은행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의 이 학교 숲은 2001년 ‘제2회 아름다은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학교 숲’으로 대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위로 자라던 줄기가 땅으로 내리박혀 마치 축구 골대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였는데 보이지 않기에 학생에게 물었더니 ‘전학와서 모른다’ 한다.
운동장 저편 끝에서 쏘아 올려 큰 포물선을 그리며 이쪽 가장자리에 떨어진 물대포를 주우러 온 아이 두엇과 함께한 여성에게 물었더니 없어졌다고 한다.
이제 그 소나무는 인터넷 ‘물야초등학교의 소나무’ 혹은 우리집 사진첩에서 볼 수 있다. 스튜디오 일과 학교 앨범 일을 하는 매송은 이 학교의 앨범을 꼭 자기 손으로 멋지게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하고 나는 이런 학교의 교장선생님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한다.
물야초등학교 운동장의 소원나무라 부르는 오래된 은행나무 가지에 ‘세계를 움직이는 CEO, 국가대표 축구선수, 나라 일을 하는 공무원,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던 소원 명패를 매어단 이곳의 졸업생들은 생각하며 봉화읍을 지난다.
안동방향을 향하다 영주방면과 나뉘는 삼거리에 있는 세 곳의 식당 중 이곳 봉성면이 고향인 매송의 권유에 따라 좌측의 옛고개 기사식당에 들어 주인의 추천메뉴인 된장찌개를 6,000원에 후다닥 헤치웠다.
길어진 낮 덕분에 어둡기 전에 남안동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성서에 도착하니 8시 40분. 산행은 물론 마구령, 김삿갓계곡, 상동읍, 물야초등학교를 아우르는 멋진 여행을 덤으로 누린 행복한 하루였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