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 박혜란의 '여자'와 '나이'에 대한 산문 모음집. 여자로서 자신에게 다가온 '나이듦'을 긍정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주위사람들과 자신에게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가를 일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찬찬히 이야기해 나간다.늦깍이 여성학자로, 베스트셀러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로, 인기 가수 패닉의 멤버 이적의 엄마로 유명세를 치르며 숨돌릴 틈 없는 바쁜 삶을 살아왔던 저자 박혜란이 5년만에 '여자의 나이와 몸'이라는 화두를 들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나이듦에 대하여'란 다소 생소하고 낯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여자가 나이 들어가며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몸의 변화, 생각의 변화, 관계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에세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저자 또한 자신의 '나이듦'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싫어했고 나이와 관련되어 생겨나는 문제들도 자신과는 동떨어진 거라고 외면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속 한`번 썩이지 않던(오히려 너무 튼튼해 불만이었던)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응급실에 실려가 무려 일주일 동안 수혈을 받은 후에야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의 반란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나이듦'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을 둘러싼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나이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몸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들, 새로운 느낌과 사고방식,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이 그를 채웠다.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는 이야기
그렇다고 그가 이 책에서 풀고 있는 내용이 거창한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수다에 가깝게 자신의 이야기를 특유의 생기 넘치는 문장으로 맛깔지게 풀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행간에 깔아놓았듯 이번 에세이에서도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아마 밝히고 싶지 않을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또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나이듦의 일상사와 그 성찰에 관해 말한다.
자신을 속박하는 늙음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을 깨야
누구보다도 고정관념을 깨며 살아가는 데 앞장서 온 그가 이 글에서 강조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유난히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그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바로 나이 들어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이 정한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만의 나잇값을 살아가는 용기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성 역할을 통해서 성 차별이 줄어드는 것처럼 다양한 연령 역할을 통해서 연령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놓치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나이 든다는 것이며 지금도 쉼 없이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것은 외면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추하고 안 좋은 것이며 약한 것이라는 늙음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뒤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외로워하는 우리들의 나이 들어가는 삶… 이제껏 누구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너무도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 책에서 약한 것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을 느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