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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령산[鶩嶺山]은 예로부터 자연을 숭배하고 생활에 위협이되고 재해를 면하기 위하여 오창의 명산인 목령산 해발 228m 정상에서 면민의 정성으로 산신제를 지냈으나 일제 강점 후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그 전례가 사라져 오던 중 1995년 부터 매년 정월 보름날 면민의 화합과 번영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산신제이며 앞으로 면민의 문화행사를 계승하는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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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山 2007년 3월호에 게시된 취령산을 목령산으로 해야 맞다라는 글이 있어서 옮겨 본다
가지고 있는 오만의 지형도에는 취령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분명 나도 목령산이라는 지명도 만뢰지맥을 하면서 알게 되
었다. 국토지리원의 표기도 목령산으로 돼 있었다. 정자의 현판에도 鶩嶺山이라 하고 있으니 나도 그리 알고 내려간다.
오창 상암천에서 흘러내려온 물은 미호천과 만나 남으로 청주에서 내려온 무심천이 미호천으로 합수되어 미호천은 더 넓은
냇물이 되는 오창과 청주의 시.군.구계를 가르고 있었다. 북에서 남으로 달리고 있는 중부고속국도, 안으로는 오창과학단
지와 남쪽으로 눈을 돌려 보면 넓은 남촌들은 미호천과 함께 시골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으로는 지나온 산릉이
환희산를 보태며 조망된다.
우리가 걸어야 할 지맥은 오창골프장이 있어 바라만 보았다.
목령산에서 바라 본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가 하늘금을 그어 아스라이 다가온다.
목령산에서 내려 와 철탑으로 내려 오기 전 산줄기로 가야 한다.
오창읍 소재지의 서쪽으로 1.5km 정도 거리에 있는 해발228m 목령산(驚嶺山)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토축한 테뫼형산성으로 옛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산정부와 그 능선을 따라 설축되어 둘레 약 390m의 작은성이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견고하게 이루어졌으며, 기초부분에 판축(版築)과 석심(石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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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보니 흔적도 없어 보이는 목령산성이었던 것도 알게 된다.
[가야할 산줄기를 조망하면서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
골프장과 오늘 산행할 거리가 길어 삽티고개까지 생략하고 승훈이가 기다리고 있는 산수동고개까지 내려온다. 밭을 가로질러
올라갔던 길을 임도와 우막이 있는 집 한채 앞마당으로 내려온다. 차를 타고 삽티고개로 간다. 왼쪽의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질푼이고개를 지난다.
병천과 오창을 오가는 510번국도(질푼이고개)에서 좌회전하여 540번 4차선국도로 진입하자마자 삽티고개였다. 중앙분리대가
있어 위험구간이 되는 이 고개의 절개지앞에서 승훈이를 보내고 절개지를 따라 올랐다. 삽티고개 건너편에는 묘 몇기가 올
려다 보였고 용두천이 흐르는 질푼이고개가 바로 코앞에 있는 듯 했다.
능선길을 걸었다. 나는 가져 온 표지기 하나를 나무에 걸었더니 나풀나풀 춤을 춘다. 내 마음이 춤을 추는 듯 산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4번철탑 옆에서 앉아 잠시 쉼을 한다.
3월 아침의 싱그러운 바람은 몸을 감고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우리는 산책나온 듯 느긋하다. 가야할 산길이 멀건만 어제 내린
비에 양탄자길은 푹신하고 솔숲 위로 새파란 하늘이 덩그라니 걸려있다. 솔숲 향기가 봄바람을 유혹한다.
x202봉이 큰소나무에 명찰을 달고 있었다. 반환점이라고 쓰여있는 뜻은 무엇때문일까.
오창 시가지가 보이는 산길을 걷는다. 대궐같은 납골당과 파란지붕 작은 집을 보면서 언덕을 우회하여 산길을 가게 된다.
나무 한 그루 남겨두지 않고 잘라 버린 벌목지대위를 지나 잡목과 갈길이 희미한 산릉은 남쪽으로 진행되다 7번철탑과 6번철
탑을 지나면서 묘지로 내려서야 했다. 묘에서 내려오며 보이는 블루베리 묘목 밭이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마루
금인듯 지도를 다시 보는데 선답자가 이 길을 갔다고 한다.
내가 잘못 그려온 것.
블루베리공장 앞과 밭으로 이어지는 화산고개였다. 공장앞에 있는 아저씨들 왈 앞산을 가리키며, 저기가 맞단다. gps를
들고 산님들이 가는 길은 블루베리밭 옆으로 하여 175봉을 오른단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정확한 마루금임을 확인한다.
지맥은 우측 경사면 따라 초록 그믈망을 따라간다.
다우님 말씀, 잡목에 발에 걸리고 빠지고 험한 그물망 옆 길은 엉망이 된다. 얇은 잠바를 입고 가시에 찔릴까 노심초사
하다 겉옷을 입어 잡목을 헤쳐간다.
지난주보다 많이 튀어오른 생강나무꽃이 산 기운을 돋우는 것 같다. 산수유보다 꽃 밀도가 훨씬 적어 노란 꽃이 덜한대로
봄의 첫 선을 보이는 꽃에 발걸음이 멈춘다. 산길은 그렇게 나를 시험하는 듯 미로의 길을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가끔 표지기가 나풀대는 곳으로 간다.
드디어 나타난 234봉! 맨발님의 표지기가 233.4M의 명찰을 달고 굵은 소나무에 걸쳐있었다.
234봉에서 다시 되집어 내려온 능선은 오른쪽으로 길로 열리고 있다. 등짝에 달고 온 간식을 먹고 길을 떠난다.
물이 오르고 있는 업나무가 발길을 묶는다. 에라, 굵은 가시가 손가락을 찢고 무언가 도전에 나선 먹이감에 웃고 또
웃으며 산줄기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산릉을 퍼져 나간다.
봄이다. 하늘을 보면 파랗게 흰구름 떠 있고 산향기가 지난주 하고 또 다르게 다가온다. 무채색의 하늘을 박차고
들려오는 이름모를 새들의 울림이 그 깨우침의 소리같다. 검불 속에서 참혹한 계절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산길
에 있었다.
△196.3m의 상봉산에 도착,
너른 능선위 밋밋한 능선은 철잃은 수풀덤을 짓고 삼각점을 찾아보려고 봉우리를 돌다 내려간다. 앞서간 다우님을
불러 '거기 표지기 있어요?"
상봉산에서 50번 철탑을 지나야 길이 된다. '특고압 접근금지'의 경고판을 지나게 된다.
전선들이 빨랫줄처럼 늘어진 하늘아래로 묘가 있고 파란지붕이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 산줄기는 13번 철탑이 이정표
가 된다. 저수지가 보이는 산길은 가시덤불에 찔리고 내 마음마져 거칠고 황폐해져 버리는 건 아닌지. 청주시내
가 조망된다.
[내 표지기 하나를 걸었더니 다우님 처음 본다고 인증해 달라네요]
대나무가 무성한 길을 걷고 넝쿨들이 다른 나무들을 감싸 안으며 꼭대기 까지 타고 올라 있다. 칡넝쿨이지 싶다.
[엄청난 잡목지대] '저 잡목에서 왼쪽 나무가지 피하려다 오른쪽 뺨을 호되게 맞아서 정신줄 놓을 뻔했어요.
사진을 보니 다시 생각나서 나무가지 한테 화풀이라도 해야 ㅎ ' 가진이가 안 하던 산행을 하니 내심 걱정은 돼도 묵묵히 산을
간다.
정성들여 찍은 접사 한 장이 나무에 흰 꽃이 핀것과 같다.
국사봉이 보이는 언덕 全義 李氏 앞에 자리를 잡는다. 무덤위쪽에 자리 잡아야 할 오래된 묘가 아래에 있다. 상석이
나 비석의 비면이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있다. 우리 자손들은 오래전 부터 먹고 살 만하면 조상 묘터에 석물을 성치하는
것을 당연시 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묘터가 여의치 않아 오래된 묘가 아래에 있고 그 묘 위에 조상들이 있는 것도 아마
이유가 될런지.
全義 李氏 석물앞에서 사진도 찍고 점심상을 편다. 가지가지 나물이 펼쳐지고 늦은 점심이 배고픔을 달랜다. 송아
님표 고들빼기가 으뜸이라고 강추한다. 후담이건데 다우님이 찍은 사진을 모셔간다 하니 고들빼기 땜시 내놓겠단다. ㅋ
密陽朴氏 묘에 잘 어울리는 솔나무 한그루가 수목장이다. 이 고인도 密陽朴氏이다.
密陽朴氏 무덤을 지나 이동통로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초마골고개였다. 미호천쪽으로 가다보면 오창과 서청주ic간 4
차선 도로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놀이터가 있는 국사봉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길은 좌틀하여 내려와 발길이 머문곳은 논이었다. 개구리알이 물속에 그림같이 자리를 잡고
논두렁이에 뽕나무가 잘려 있다. 앗, 뽕나무다.
쓰러진 뽕나무에서 재잘재잘... 시간이 간다.
2.2M 높이의 고속도로 아래 통로에는 물이 흐르고 어두컴컴하다. 혼자 지나가면 무서운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 도로를 만나면서 몽단이고개로 올라서서 '땅이 모래(마사토) 성분이 많았다고 하는 모래실로 내
려오게 되는 산길을 바라 보면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저기 올라가면 절개지 뿐 미호천의 물을 볼수 있으라나 몰라.'
그러다 문득 산줄기 옆이라도 가까이걷고 싶은 마음에 뽕나무 밭으로 접어들다 낮은 구릉의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임도를
따라 내려온다.
'이것도 뽕나무여" 하는 말에 자꾸 웃음은 뒷발질하게 된다.
홍매화가 콩알처럼 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길에 홍매화뿐이랴. 복숭아나무도 있지만 유실수로 가치를 잃은지 오래된 고
목도 구경하면서 길을 걷는다.
옥천피에스텍 공장이 있는 분고개에는 산수유가 피고 있었다. 내려 왔어야 할 산길을 보면서 일정가든앞 임도를 걷는
다. 아동산업이란 곳도 있고 이스트시네리안라이카란 표지판도 보이는 곳은 개를 사육하는 온통 개소리가 개판이다.
옥산배수지앞 좌측 철조망따라 오른다.
넓은 능선에 선다. 응봉산 오르는 산책로다. 행정구역상 옥산면 옥산리는 청주 읍성에서 미호천 바깥쪽이 되므로 서강외
이하면이라 한다.
한양바위를 지나.
체육시설이 잘 정돈되어 있는 응봉산 △172 봉, 음봉정에 섰다. 체육시설 준공식에 장면 사진이 정자에 걸려 있다.
지나온 마루금이 바라다 보이는 산정에 서니 동림산은 뚜렷하나 만경산은 구름에 가려 가물거리는 산줄기는 충청남북도
의 경계를 가른다. 굽이굽이 흐르는 병천천의 물소리는 발아래 들리는 듯하고 우리가 걸어야 할 산줄기 아래 안새말과
끝새말 동네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른다. 경부고속도로의 옥산휴게소가 지척에 있어 그 길을 갈때면 이곳이 생각날터
이다.
환희산이 아스라이 조망되는 음봉산을 내려와 그네를 타며 미호천이 내려다 보일 것 같은 언덕에서 오창, 청주까지 넓은
들과 산을 바라 본다. 발 아래 동네에 있을 것 같은 새터에서 오미장터가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살아 계셨으
면 100살이 넘었을 큰이모가 옥산에 살았는데 그 때 '오미장터에 가서 .. 오미장터에서.. ' 들었던 기억은 화롯불옆에 두
고 나누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큰이모는 그림책을 펴시고 주절주절 하셨던 기억..
이모생각에 끝도 없는 추억에 머물다 내려선 곳 광탄말고개이었다.
안새말과 끝새말의 가옥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에 있었고 병천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위는 보리밭인가 보다.
봄비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리는 비가 그치면 풀빛이 더 짙어 오겠지.
508번 도로의 도로 공사가 한창였다. 아저씨 왈 "천리행군 하냐고" "네" 천리행군도 이리 하는가 보다. 그 사이로
덤프트럭 수대가 쉴틈없이 오가는 길을 걷는다.
병천천위에 세워진 쌍천교에서 오송역으로 가 Ktx 열차를 타고 싶은 생각을 뿌리치랴 빠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되돌아 본 그 님들은 '꽃사진을 찍나"하는 생각에 머물고 나중에 사진을 보여주니 이것이 수준점
였음을..
다우님 왈,회푸대 종이로 씌워진 곳을 궁금하여 까집어 보니 와뿔사. '수준점였다고 '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그 때의
국토해양부 수준점 발견(")을 표정을 살일 수 있을까. 까. 까. ...'보물을 찾았다 할까..
'언니 최고' 사진만 찍고 도로 회푸대 종이로 원위치 해 놓았단다.
석회가 쌓여 있는 길가를 지나고 덕촌들판을 봄비를 맞으며 걸었다.
야! 병천천과 미호천이 하나가 되는 두물머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청둥오리와 기러기 나는 넓은 냇가, 병천천에
흘러오는 하얀새는 백로였으리. 어제 내린 비가 있기에 봄이 오는 냇가의 정취를 느껴 보고픈 생각에 서둘러 걸었던 산
줄기가 저 뒤에 있었다.
미호천은 오창의 상암천의 물을 담고 청주의 무심천을 담아 시.군.구계를 가르며 남으로 남으로 흐르고 있었다.
승훈이 차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똑 같다.
다리를 건너 금강하구둑을 걸어 나온다. 충북선 철로 사이에 짙은 안개가 아스라한 기억처럼 흩어져 있다. 비둘기[꾸
꾹-꾸-꾹]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난다.
36번도로의 궁평3리 버스정류장에 三月東風(삼월동풍)이 분다. 으슬으슬하다. 502번 버스를 타고 조치원역으로 와 역전
에서 올갱이국과 막걸리 한 잔으로 하루의 산줄기에 건배를 한다. 기차안의 창문 밖을 보려하는 하는 것은 내 얼굴이었다.
ps ,사진은 다우님 촬영
[금북만뢰지맥 완주]
첫댓글 비가와도 우리는 고고!!
우리 다같이 건강 관리 잘 합시다.
다음 지맥을 기대하면서
만뢰지맥을 하다
처음엔 그저 걸었다. 또 가야 할 곳이 생겼다. 끝까지 걸어야 할 명분이 생겼다.
두 물길이 만나는 미호천과 병천천의 두물머리의 물길이 보고 싶었다.
낯선 두 물길이 생경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저 모습에서
자연의 호흡를 배우고 싶다.
함께 한 순간과 공간을 잘 기억 하며 애쓰셨어요. 요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