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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심리 인간 스크랩 (39) 여과되는 현실
야전사령관 추천 0 조회 5 09.09.29 10: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9) 여과되는 현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관해서 한 가지 더 말하고자 합니다. 유추의 형태로 표현하겠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의 반응을 접수해야 합니다. 로마 교종은 온 교회의 반응을 접수해야 합니다. 글자 그대로 수백만 건이 접수될 수도 있겠는데, 그 모두를 직접 살피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훨씬 적은 분량만 소화할 수 있겠죠. 그래서 사람들을 두어 그 사안들을 추출하고 요약하고 점검하고 여과하는 일을 맡겨 놓고, 결국은 그 일부가 결재사안으로 올라가게 되죠. 그런데,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의 모든 털구멍이나 살아 있는 세포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들로부터, 현실에서 나오는 반응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걸러내고 있습니다. 누가 그 여과작용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조건화? 우리의 문화? 우리의 설계화? 우리가 가르침받은, 사물을 보고 경험하는 방법? 우리의 언어까지도 한 여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도 많은 여과기들이 계속 작동중이어서 종종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죠. 편집증 환자만 보더라도 그는 늘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의해 학대받는다고 느끼고 있고 줄곧 과거의 어떤 체험이나 조건화된 어떤 환경에 따라서 현실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과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악령도 있습니다. 집착·욕망·갈망이라는 것이죠. 슬픔의 뿌리는 갈망입니다. 갈망은 지각을 왜곡하고 파괴합니다. 두려움과 욕망은 악령처럼 끊임없이 출몰하여 우리를 괴롭힙니다.
"자기가 한 주일 내에 단두대에 매달릴 것을 안다면 그것은 놀랍도록 정신을 집중시킨다"라고 사무엘 존슨은 말했습니다. 다른 모든 걸 지워 버리고 오로지 두려움에, 혹은 욕망에, 혹은 갈망에 집중하는 겁니다.

 

어릴 적에 우리는 여러 가지로 중독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도록 길러졌습니다. 무얼 위해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칭찬·인정·박수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을 위해서. 그런 것들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말들입니다. 그것들은 인습들, 발명된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합니다. 무엇이 성공입니까? 한 무리가 좋은 것이라고 결정해 놓은 것이죠. 다른 집단은 똑같은 것을 나쁘다고 결정할 것입니다.

워싱턴에서는 좋은 것이 카르투지오 수도원에서라면 나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죠. 정치권에서는 성공인 것이 다른 동아리에서는 실패로 여겨질 수도 있죠. 이런 것들은 인습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현실처럼 취급하잖아요? 어릴 적에 우리는 불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돈, 성공, 잘생긴 배필, 좋은 직업, 우정, 영성, 하느님 - 여러분은 이것도 꼽죠 -,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것들을 얻지 않고서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내가 집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집착이란 그 무엇이 없이는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입니다. 일단 그렇게 확신하고는 -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침투하여 우리 존재의 뿌리에 각인을 하게 되고는 -그걸로 끝인 겁니다.


"건강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
그러나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암으로 죽어 가면서도 행복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사실이 그랬습니다.


"돈이 없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
은행에 백만 달러가 있으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땡전 한푼 없는데도 불안한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달리 설계된 거죠.

첫째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훈계를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훈계란 큰 도움이 못 됩니다. 자기가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그런 그릇된 신념에 길들여졌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릇된 것임을 보십시오. 환상임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평생 동안 무얼 하고 있습니까? 싸우느라 바쁩니다. 싸움, 싸움, 싸움. 이른바 생존경쟁이죠. 평균치의 미국인이 생계비를 번다고 말할 때, 그건 생계비를 버는 게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그들은 생계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로 와 보시면 그걸 알 것입니다. 그 모든 차들이 사는 데 필요하지는 않죠. 텔레비전이 사는 데 필요하지는 않죠. 화장이 사는 데 필요하지는 않죠. 그 많은 옷들이 모두 사는 데 필요하지는 않죠. 그러나 중산층 미국인들은 그렇게 믿으려고 합니다. 세뇌된 겁니다. 설계된 겁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욕망의 대상을 얻기 위해 일하고 분투합니다.

이 비감한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누구나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그 대상 - 돈, 우정, 무엇이든 - 을 얻기까지는 나는 행복하지 않으리. 그것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지.
그것을 얻었을 때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분투해야지. 벌써 신이 나는구나. 얼씨구. 그걸 얻었다고 생각만 해도 짜릿하구나!"
그러나 그 짜릿한 신명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 몇 분, 많아야 며칠이죠. 깔깔한 새 차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 감동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다음' 번 애착이 위협받을 때까지죠!

짜릿한 감동과 관련된 진실인즉 잠시 후에 싫증이 난다는 것입니다.'기도'가 중요한 것이라고들 합디다. '하느님'이 중요한 것이라고들, '우정'이 중요한 것이라고들 합디다. 그런데 기도가 정작 무엇인지는, 하느님이 정작 무엇인지는, 우정이 정작 무엇인지는 모르면서 우리는 그것들로 많은 것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는 싫증이 났습니다. 기도에, 하느님에, 우정에 싫증이 났습니다. 비감한 일 아닙니까?
그리고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도무지 탈출구라곤 없는 겁니다.

어떤 다른 본보기도 주어지지 않은 겁니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사회는, 그리고 말하기는 안됐습니다만 우리의 종교까지도 우리에게 다른 본보기를 제공하지는 않았습니다.

추기경으로 지명되셨군요. 얼마나 큰 영예입니까! 영예? 영예라고 했소? 틀린 말을 사용한 겁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걸 갈구하고 있는 겁니다. 복음서에서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빠져 버리면 자기 영혼을 잃게 됩니다. 세상·권력·특전·승리·성공·영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세상을 얻지만 영혼을 잃는 겁니다. 여러분의 온 삶이 공허하고 얼빠진 삶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길은 단 하나, 탈설계화입니다! 어떻게? 그 설계화를 자각함으로써. 의지의 노력으로는 여러분이 변할 수 없습니다.


이상들을 통해서는, 새로운 습관들을 들임으로써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은 변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자각과 이해로써만 여러분이 변할 수 있습니다. 돌멩이를 돌멩이로 보고 종이조각을 종이조각으로 볼 때는 그 돌멩이를 값비싼 다이아몬드라고 생각지 않고 그 종이조각을 십억 달러짜리 수표라고 생각지 않게 됩니다. 그것을 '볼' 때 여러분은 변합니다. 그때는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에 무리가 없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라고 부르는 것이 단지 가구를 옮겨놓는 데 지나지 않는 셈입니다. 여러분의 행동은 변하지만 '여러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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