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은 당시 제일의 실권자였던 최충헌의 사노(私奴)이자, 가노(家奴)였다. 노비제 사회에서 사노비는 크게 외거노비와 솔거노비로 나뉜다. 외거노비는 주인과 떨어져서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사는 노비들이고, 솔거노비는 주인과 함께 살면서 주인의 직접적인 부림을 받는 노예로 가노들은 솔거노비에 해당한다. 솔거노비들은 외거노비처럼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노비로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노비들이다. 만적을 비롯한 솔거노비들이 목숨을 걸고 신분해방을 외친 것은 주인의 매질 아래 신음하는 현실이 죽음보다 못한 삶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만적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역사의 기록은 지배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고려사] 최충헌전에 만적에 관한 사건이 비중 있게 다뤄진 것으로 보아 만적의 반란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음이 틀림없다. 만적은 비록 노비 출신이었지만 무신난 이후로 이의민과 같은 미천한 신분들도 출세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그 못지않게 출세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야망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백 명의 노비들을 규합할 수 있는 언변도 지닌 인물이었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는 그의 한마디는 어떤 말보다 노비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만적이 남긴 이 말은 만적이 처음 말한 것은 아니고, 사마천의 [사기] 진섭세가에서 오광과 진승이 한 말이다. 만적은 중국 사서를 인용하여 자신의 연설에 무게를 더했고, 그만큼 그의 말은 호소력을 더할 수 있었다.
다음은 「고려사」에 전하는 만적의 봉기 전말이다.
어느 날 만적은 동료인 미조이·연복·성복·소삼·효삼과 함께 북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주변의 노비들을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이 선동했다.
“정중부의 난 이후로 많은 고관이 천한 출신에서 나왔다. 왕후장상이 처음부터 씨가 있을까 보냐.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왜 우리만 상전의 매질을 당해가며 뼈가 빠지게 일만 해야 하는가!”
노비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만적의 말에 힘찬 박수를 보내었다. 그들은 만적을 지도자로 떠받들고 그의 밑에 한 덩어리로 뭉칠 것을 굳게 맹세했다. 만적의 선동에 고무된 노비들은 곧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서 ‘정(丁)’자 휘장을 만들어 차며 거사를 약속했다.
“이달 17일에 흥국사에 모두 모여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격구장으로 달려 가, 난을 일으키도록 하자. 우리가 힘을 합해 최충헌과 상전들을 죽이고 또 노비문서를 불태워 이 나라에 천민이 하나도 없게 하면 공경과 장상은 모두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노비문서를 불태워 고려에 천민을 없애버리자는 흥국사의 거사계획은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수천 명에 달하는 노비들이 모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작 거사 일에 모인 노비들은 몇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 거사가 어렵다고 판단한 만적은 다시 거사 일을 21일로 옮기고 보제사에서 다시 거사하기로 했다. 만적은 명령을 내려 모든 노비 동지들이 이 계획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아무쪼록 기밀 유지에 철저함를 기하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