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루목산장
버스 안에서 푹푹 찌는 히터 바람에 고생하다가 인제에서 내리니 알싸한 냉기에 몸이 오그라들지만, 지형도 살필 겸 산행 깃점으로 잡은 노루목산장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다.
번지 점프대가 있는 합강교를 건너고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내린천은 꽁꽁 얼어 붙어있고 살을 에이는 듯 칼바람이 불어와 택시 타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산 쪽으로는 깍아지른 절벽을 이루고있어 올라갈 수도 없어 꼬불꼬불한 도로를 마냥 돌아 노루목산장에 이르니 능선이 시작되지만 역시 절개지를 이루고있어 올라가지 못한다.
노루목마을 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산으로 붙으면 돌로 쌓은 참호들이 나오고 벌목된 나무들을 피해 능선으로 오르니 참호들이 파여 있으며 흐릿한 족적이 보인다.
▲ 얼어붙은 내린천
▲ 노루목산장
▲ 노루목에서 바라본 한석산줄기
- 549.9봉
잡목들을 헤치며 바위 지대를 따라 올라가면 왼쪽으로 인제 시가지가 펼쳐지고 내린천 맞은 편으로 협곡을 이루고 있는 절벽들이 작은 그랜드케논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녹색 송전탑을 지나고 무덤이 있는 안부를 넘으니 급한 오르막이 시작되며 굵은 노송들이 군락을 이루고있는데 송이와 관계되는지 붉은 색 비닐 끈들이 곳곳에 매어져있다.
아름드리 적송들이 쭉쭉 뻗어있는 바위 봉에 오르면 얼어붙은 내린천이 내려다 보이고, 약초꾼들이 버렸는지 쓰레기들이 널려있으며, 곳곳에 수직 벼랑을 이룬 험한 봉우리들이 보여 바짝 긴장된다.
6.25 전쟁 때 사용한 듯한 오래되어 황폐한 참호들을 지나고 벙커들을 넘어서, 역시 큰 벙커가 자리잡고 있는 549.9봉에 오르니 잡목들이 빽빽하지만 인제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전략적 요충지라는 생각이 든다.
▲ 노송봉에서 내려다본 내린천과 인제시내
- 암봉들
거센 잡목들을 헤치고 노송들이 서있는 봉우리를 넘어 돌로 쌓은 참호들이 어지럽게 연결되는 벙커 봉에 오르니 족적은 사라지고 암릉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약간씩 눈이 덮혀있는 좁은 바위지대를 따라가면 양 옆으로는 급한 사면이 이어지고, 찬 바람은 쉴새없이 불어오며, 까마귀들의 울음 소리가 기분 나쁘게 숲을 울린다.
나뭇가지들을 헤쳐가며 바위들을 잡고 암봉 하나를 넘으니 다시 급한 암벽이 이어지고, 고사목을 잡아가며 소나무들이 서있는 너럭바위 봉에 힘들게 올라서니 깊은 협곡이 아찔하게 내려다 보이고 앞에는 험한 바위봉이 이어져 걱정스러워진다.
바위 사이로 간신히 내려가 시커먼 바위들을 타고 높은 암봉으로 올라가면 뚝 떨어지는 급한 벼랑이 앞을 가로막아 길을 찾다가 되돌아 온다.
눈 덮힌 사면을 엉덩이를 대고 미끌어지며 내려가니 암봉을 우회하는 희미한 족적이 보이고 너덜을 길게 돌아 암릉지대를 통과하고 나니 비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어렵게 통과한 암봉들
- 984.6봉
잡목들이 울창한 좁은 길을 잠시 오르면 구덩이 하나만 파여있는 봉우리에서 능선은 남쪽으로 꺽어지고 잠시 후 밑에서 올라오는 지능선 하나와 합류한다.
유순해진 등로를 따라 984.6봉으로 추정되는 벙커 봉에 오르니 삼각점은 찾을 수 없고, 따뜻하게 햇살이 내려오며 한석산으로 잘못 생각했던 소뿔처럼 생긴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암릉들을 우회하고 눈 덮힌 미끄러운 사면을 올라 연신 봉우리들을 넘으면 시야가 조금씩 트이며 피라미드 처럼 뾰쫏 솟은 주걱봉과 가리봉이 마터호른처럼 인상적으로 보인다.
벙커들을 지나고 한석산으로 생각한 큰 암봉에 오르니 꼭대기는 위험해서 오를 수 없고 그제서야 눈을 덮고있는 육중한 한석산이 저 멀리 보이지만 거리도 만만치않게 남아있어 마음이 급해진다.
▲ 소뿔처럼 보이던 암봉
▲ 암봉에서 바라본 가리봉
- 한석산
뚜렷해진 능선을 서둘러 내려가 자주 갈라지는 지능선들을 조심하며 적적한 눈밭을 한참 올라도 한석산까지는 아직도 봉우리 몇개가 남아있어 기운이 빠진다.
길도 없는 미끄러운 급사면을 힘겹게 올라 암봉 하나를 우회하고 미역물줄기나무와 온갖 덤불들이 빽빽하게 차있는 봉우리를 힘겹게 넘는다.
벙커와 참호들이 꽉찬 잡목지대를 이리저리 돌아 올라가면 붉은 깃발이 보이고 마지막 벙커 봉을 넘어 올라가면 넓은 헬기장에 군 시설물들이 있는 한석산(1119.1m)이 나온다.
정상에 오르니 한쪽에는 산불조심이라 쓰인 깃발이 휘날리고 있고, 중앙에는 오석으로 만든 "한석산점령 51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시설물 옆에는 쓰러진 깃대와 함께 삼각점(설악 25/1987 재설)이 보인다.
5시간 가까이나 걸려 도착한 산정에 서서 소주 한 잔에 김밥을 먹고 휘둘러 보면 가리봉 너머로 대청봉이 작게 보이고, 귀청에서 안산에 이르는 서북능선이 뚜렷하며, 점봉산에서 북암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길다랗게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 한석산 정상
▲ 한석산 정상
▲ 한석산에서 바라본 설악산
- 매봉
차 바퀴 자국이 찍혀있는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잣나무식수" 이정목이 서있는 곳에서 능선으로 들어가니 오늘 처음으로 "호산 신명호"의 표지기 한장이 보여서 반가워진다.
벌목되어 있는 개활지를 지나고 임도를 건너 참호들이 어지럽게 파여있는 능선을 올라가면 "인제군 오지탐험대" 의 표지기들이 간간이 붙어있다.
미끄러운 눈길을 지나 헬기장 같은 공터가 있는 매봉(1062m)에 오르니 아무런 표식도 없고 나뭇가지 사이로 한석산 정상의 시설물이 잘 보일 뿐이다.
잡목들이 꽉 들어찬 희미한 남동쪽 능선으로 들어가면 암봉이 나타나고 급사면 바위 지대를 조심해서 내려가면 동쪽의 험준하게 생긴 암봉으로 지능선이 갈라져 나간다.
길도 없는 사면을 미끄러지며 내려가니 오른쪽 피아시마을 쪽으로 지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방향을 잡아 왼쪽능선으로 들어가면 암릉들이 나타나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많이 서있다.
▲ 개활지에서 바라본 매봉
▲ 매봉 정상
▲ 매봉에서 바라본 한석산
- 649.9봉
양쪽으로 급사면을 이루고있는 좁은 바위 지대를 따라가니 암봉들이 연달아 나오고 송이채취 지역을 알리는 헝겊들이 간간이 걸려있다.
찬바람 부는 암릉지대를 넘고 우회하며 깊은 협곡을 이루고있는 건너편 봉우리들을 바라보면 깍아지른 절벽들이 멋지게 보인다.
험준한 암봉을 간신히 통과하고 노송들 사이에 구덩이 하나 파여있는 봉우리를 내려가니 절벽이 나타나는데 우회하는 길인줄 알고 급사면을 몇분동안 내려가다 너무 위험해 올라온다.
되돌아와서 잘 살펴보면 노송봉에서 약간 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트래버스해서 가보니 역시 족적 있는 능선이 나타나며 내려갈려고 했었던 곳을 바라보니 깍아지른 벼랑을 이루고있어 순간 아찔해진다.
역시 바위 지대들이 계속 나타나고 일몰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내려가니 삼각점이 있는 649.9봉이 나타나며 발 아래로 31번 국도와 얼어붙은 내린천이 보여 안심이 된다.
▲ 협곡을 이루고있는 봉우리들
▲ 험한 암봉
▲ 험한 암봉
▲ 잘못 내려가다 올라온 절벽봉
▲ 649.9봉 정상
- 31번국도
뚝 떨어지는 바위지대를 이리저리 내려가면 반갑게 티브이 안테나 선이 나타나고 낙엽들에 미끄러지며 능선을 내려가 송전탑을 만난다.
이곳에서 애초 계획했던 원대교로 떨어질려면 오른쪽 남서 능선으로 가야하는데 절벽이 있을 지형이라 간혹 걸려있던 붉은 비닐끈을 보며 왼쪽으로 꺾어진다.
낙엽 수북하게 덮혀있는 지능선을 내려가면 무덤들이 보이고 곧 펜션 한채가 서있는 31번 국도가 나오며 앞에 원대교가 보인다.
인제 쪽으로 조금 걸어가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을 흔드니 산과 사진을 무척 좋아한다는 분이 선뜻 승합차를 세워준다.
피아시를 지나고 얼어붙은 내린천을 달려가면 노루목에서부터 힘들게 올라갔던 능선 너머로 개골령에서 광치령을 지나 대암산으로 길게 이어지는 또 다른 오지의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