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사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과학 관련 책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흐름이 보인다.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진화론과 신경 과학 관련 서적의 급증이다.
신경 과학 책이 과학 출판계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점은 이해가 가능하다. 뇌 과학을 흥미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다양한 분석 및 진단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고, 그 분야로 몰린 과학자의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 과학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배울 수 없었던 최근 지식이니 이 새로운 지식의 급증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허나, 진화론 관련 책의 급증에는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진화론을 배웠고, 대학 입시에서도 관련 문제를 풀어야 했으며, 진화론이 최근에 와서야 지식의 엄청난 축적이 일어난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뇌 과학 지식의 급증과 비교했을 때 진화론 지식은 새것에 대한 추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옛것에 대한 재발견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왜 우리 독자들은 지금 진화론 서적들을 읽은 것일까? (출판계가 팔리지도 않는 진화론 책을 마구 찍어내지는 않을 테니 이 질문은 성립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재밌으니까"가 일차적인 답이다. 하지만 조금 더 큰 틀에서 생각해보자. 이에 대한 대답의 단초를 나는 몇 년 전에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팀에게 들었다. <신과 다윈의 시대>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모 PD가 내게 질문했다.
"다큐를 위해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아십니까? 약 30퍼센트입니다. 그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내 즉각적인 대답은 이랬다. "종교적 이유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하는 말.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대답이 가장 많습니다. 이것은 대체 뭐죠?"
진화론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충격적인 조사였다. 대체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진화론에 대해 뭘 배우기(배웠기)에 이런 대답이 나왔을까? 잠시 눈을 감고 내 학창 시절의 생물학 시간을 회상해보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용불용설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한 기린 그림,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헤켈의 발생반복설을 뒷받침한다고 알려진 배아 발생 그림,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그래서 진화 관련 계산 문제에 자주 등장한다) 하디 와인버그 공식, 이것이 전부였다. 혹시나 해서 헌책방에 들러 최신 생물 교과서도 훑어보았으나, 역시나 근 20년 동안 우리 학생들이 진화론에 대해 배웠던 내용은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떠올린 내용들이 진화론의 핵심도 아니며 심지어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난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에른스트 헤켈의 그림은 과학사가에 의해서 명백한 조작으로 판명 난 지 오래되었는데도, 생물학 교과서에는 버젓이 '진화의 발생학적 증거'라는 항목으로 등장해왔다. (불행히도 이 날조된 그림은 우리 중학교 교과서와 일부 과학 도서에서 아직도 퇴출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대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은 어떤가? 대학에서 일반 생물학을 수강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있다. "이 부분(진화론)은 중·고등학교 때 이미 배웠으니 그냥 넘어갑니다. 진도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우리는 진화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구닥다리 정보로 공부해야 했고 심지어 틀린 내용을 밑줄 치며 배워왔다. 이것이 한국의 진화론 교육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여론은 이상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진화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 "진화론의 빛에 비추지 않고는 생물학의 어떤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지는 대목이고, 나처럼 진화론 연구와 소통이 업인 사람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진화학자들의 도움 없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 교과서를 소신껏(?) 집필해온 과학 교육학자도 공범이 되는 순간이다. (내 주변에 있는 진화학자 중에 과학 교과서 집필에 불려간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과학 출판계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진화론 관련 서적들은 우리의 이런 '결핍'을 채워주는 보충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관계'의 맥락에서 진화론을 창조론과 대비시키는 책들은 또 다른 한국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009년에 실시한 EBS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개신교인 중에 60퍼센트 이상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 국민의 60퍼센트 정도가 "창조론도 진화론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가?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는 오늘도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라는 황당한 기사가 메인 화면에 띄워져 있다. 이 단체는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에 근거하여 진화론을 거부하며 진화론이 창조과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홈페이지에 나온 그들의 비장한 미션은, "복음 전파의 커다란 장애물인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밝히고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을 드러냄으로써 창조의 신앙을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실제로 이 단체는 지난 30년 동안 교회와 학교 등지에서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쳐왔고, 심지어 창조론의 관점으로 쓴 생물 교과서를 공인 교과서로 만들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 단체를 창립하고 이끌어온 명예회장이 대학 교육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현재 회장이다. 게다가 그는 작년 이맘때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의 과학기술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공적으로 카이스트(KAIST)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조용했다.
단 한명의 교수만이 "사이비 과학을 촉진시키는 것이 주목적인 협회를 만든 사람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것은 카이스트의 모순"이라며 공식적으로 항의했을 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 어디에서도 창조과학을 주창하는 사람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지는 않는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히겠다"며 결성한 단체의 장을 대학 교육 정책의 수장으로 두지는 않는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던 분이 대통령이 된 이후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창조론 선전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 하이라이트! 얼마 전에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몇몇 일간지의 한 면을 도배한 어떤 개신교 목사의 광고물은 한국 개신교의 진화론 이해 수준을 정확히 드러내주는 경우였다. 그 목사는 "다윈의 학설처럼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도 어느 산속이나 정글에서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역사상 그것을 본 일이 없다"면서 진화론을 비판하고 창조론을 이야기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윈의 '생명의 나무' 개념만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질문인데, 그 큰돈을 써가며 신문에 광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현재의 침팬지나 원숭이는 몇 백 만 년, 몇 천 만 년 전쯤에 인간과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현재 우리와) 사촌 종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으로 진화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론의 기본을 배운 초등학생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이런 기초 지식마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전 세계 과학계에서 창조과학이 서 있을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보수주의 기독교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창조론(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은 단 한 번도 정식으로 과학 시간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가령, 지적 설계론 교육 여부를 놓고 5년 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벌어진 한 재판에서는 보수 기독교인인 판사마저도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딱 잘랐다. "논쟁이 있으니 창조론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자"라는 솔깃한 슬로건에 사려 깊은 기독교인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대체 논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치 "역사 해석에 논쟁이 있으니 한일합병의 허구성도 함께 가르치자"라는 식의 황당한 제안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전 분야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에서 창조론 운동은 뜨거운 감자 같은 것이다. 무시하자니 엉뚱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다뤄주자니 마치 그들과 동등한 논쟁 파트너가 되는 듯 하고…. 이런 맥락에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김명주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창조론(특히, 최근의 지적 설계론)에 대한 무시 전략을 버리고 한번 제대로 상대해주겠다는 뜻을 보여준 첫 번째 공식적인 문건인 셈이다.
이 책은 세계 지성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로 불리는 존 브록만이 편집하고 16인의 세계적 석학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지적 설계론을 비판한 책으로서 생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물리학자들이 글을 썼다. 가령, 시카고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 터프츠 대학의 인지철학자 다니엘 데닛,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하버드 대학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가급이 참여했는데, 이런 필진들이 지적 설계론 하나만을 다루기 위해서 함께 힘을 합했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이다. 이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각각 다르지만 지적 설계론에 대한 입장은 한결같다. 지적 설계론은 사이비 과학이거나 기껏해야 저질 과학일 뿐이라는 것.
물론 과학과 종교의 관계 맥락에서 지적 설계론을 다룬 책들은 국내에도 이미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런 주제가 식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책인가? 이제 창조론을 다룬 책들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내가 앞에서 한국의 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할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진화론과 창조론 이슈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죽지 않았다. 이번 정권에 들어와서 더 심각해졌으며. 과학 교육의 관점에서도 더 많은 논의와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쟁점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 식탁(책)의 음식들을 잘 소화해낸다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거나 창조론 논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일차적으로 권할만한 책이지만, 전국에 계신 모든 과학 선생님들께도 일독을 권해드린다. 창조론에 경도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팁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