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난해하다. 이 책은 개개의 생물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연을 유전자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지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다른 이론을 제시한 것이라기보다는 생물체를 보는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그것도 참으로 흥미로운 전혀 새로운 관점이다.
생물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하해 왔다는 다윈 이론이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데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이는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이 책은 다윈주의에 입각하여 자연선택에 기초한 사회성에 관한 이론의 토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킨스가 이 책을 쓴 것은 다윈주의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논점에 대하여 진화론이 초래하는 결과를 두루 살펴보기 위해 썼다고 했다. 즉 그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관점에서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책은 먼저 생명의 출현으로부터 시작한다.
태초에 지구상에는 원시스프가 존재했다. 그곳에서 생명체의 씨앗이 되는 유기물이 탄생하고 그것이 오랜 시간 존속하거나, 복제 속도가 빠르거나, 복제의 정확도가 높은 안정한 분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명의 기원을 상상한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수프에서 두 번째 샘플을 취할 경우, 두 번째 샘플에서는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 면에서 우수한 분자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물의 진화이며, 그 메카니즘은 바로 자연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자연선택을 보는 관점은 유전자의 간점과 개체의 관점이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관점은 사실은 서로 같다. 같은 하나의 진실에 대해 두 개의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전자는 개체 내에서 개체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 이론의 주요 주제, 즉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의 개념, 이기주의의 유전학적 정의, 공격적 행동의 진화, 친족 이론, 성비 이론, 호혜적 이타주의, 속임수, 성 분화의 자연선택 등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하나씩 다양한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생물체를 대하는 관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즉, 생명체는 단순한 생존 기계로,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 된 로봇 운반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주목되는 것은 유전자이다.
따라서 동물의 행동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은 모두 유전자가 이기주의와 관련된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그것은 순전히 저자의 필력 덕분이다. 이 책은 다양한 이론들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친근한 사실들로 비유해서 설명하지만, 초반부는 생소한 용어들에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따지고 보면 유전자가 만들어낸 기계일 뿐이라는 점에서 다소 허탈해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저 유전자 보관소이며 껍데기일 뿐이라는 말일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외면을 하고 싶어도, 보편적 사랑이나 종 전체의 변영과 같은 것은 진화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냉철했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참 하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명체의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분자다. 우리는 모두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 기계다. DNA는 스스로 자기 복제를 한다. 스스로 자기의 사본을 만든다.
이 일은 생명 탄생 이래 쉬지 않고 계속된다. 처음 수정되었을 때는 설계도의 원본 하나가 들어 있는 한 개의 세포였지만, 성장하면 10의 15제곱 개의 세포로 복제된다. (1-> 2-> 4-> 8-> 16-> 32->,,,) 또한 DNA는 신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이나 엄격하게 제어한다.
즉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일생 동안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을지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중 단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무에서 시작한다.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한편, 유성생식은 유전자를 섞는다. 이는 개체의 몸이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을 위한 임시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자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이다. 우리의 임무를 다하면 우리는 폐기된다. 그러나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영원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다양한 형태의 행동으로 표출된다. 가족계획, 세대 간의 전쟁, 암수의 전쟁 등의 장에서는 그 구체적 사례들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밈에 대해 약간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태초의 수프처럼 인간에게는 문화라는 수프가 있다. 태초의 수프에 유전자가 있듯이 새롭게 등장한 자기 복제자의 이름을 밈(meme)이라고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지금은 이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밈은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건너다니듯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그러나 밈 사본의 수명은 유전자 사본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밈의 사본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에 인쇄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이 앞으로 수백 년이라도 존재할 것이다. 수명보다 다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기계다. 그러나 유전자 기계로서의 우리는 몇 세대를 유전자 자체는 불멸일지라도 각자의 유전자 집합은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 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 버린 후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다.
모든 생명의 원동력이자 가장 근본적인 단위는 자기 복제자다. 우주에서 자신의 사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자기 복제자 덕분이다.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작은 입자들이 우연히 마구 부딪쳐서 출현한다. 자기 복제가가 일단 존재하면 자신의 복사본을 한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복제 과정도 완벽하지 않으며 자기 복제자들의 집단 내에는 몇 개의 다른 변이체가 생긴다. 이 변이체 중 어떤 것은 자기 복제 능력을 잃고 소멸하나, 어떤 것은 새로운 묘법을 획득한 것은 자기의 조상이나 다른 변이체들 보다 자기 복제의 효율이 훨씬 좋다.
그리하여 개체 군 내에서 많아지는 것은 그들의 자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은 가장 강력하고 재주 있는 자기 복제자로 채워진다. 우주의 어느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