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은 전국교사대회가 서울서 열리는 날이었다. 여의도 공원에서 벌어진 그 행사에 나는 우리 아들을 데리고 갔다. 늘 풍물공연때문에 데리고 가지 못했던 아들을 이번에는 꼭 데려가고 싶었다. 서울로 간 김에 광우병파동으로 한창 진행 중인 서울 청계광장 촛불집회도 함께 참여해 세상을 사는 눈을 넓혀주고도 싶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늘 책과 텔레비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번 서울행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침에 늦잠을 자고 만 것이다. 7시 30분까지 지회사무실 앞까지 가야하는데, 7시 10분에야 일어난 것이다. 김병희선생님이 연락을 해 주지 않았다면 난 그대로 자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서둘러 나왔는데, 비는 내리고 택시는 잡히지 않고 마음만 다급했다. 겨우겨우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는데, 생각보다 선생님들이 적어 무척 아쉬웠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 것인지, 앞으로 점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세상은 다급하게 돌아가고 답답하게 돌아가는데 움직임은 없으니 결국 당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 한동한 갑갑했다. 그나마 창원선생님들과 함께 갈 수 있어 나름 힘이 됐다.
생각보다 여유있게 서울에 도착한 우리는 도착하자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뜨거운 여의도 공원 광장과 뜨거운 햇볕때문에 오랫동안 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정태춘씨가 무대에 올라섰을때는 어찌나 반갑던지. 흰머리가 많은 얼굴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정태춘씨를 보며 새삼 세월의 무상도 느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 열정은 그대로인 것 같아 반갑기만 했다. 잠시 뒤 나는 우리교육 사람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떠나 우리교육이 책을 판매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나 기다리고 있던 유미씨랑 지연씨가 자리에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닮지 않은 아들때문에 한동안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 유미씨랑 책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다시 보낸 원고가 무척 좋았다는 이야기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우리교육 천막 안에서 여러 우리교육 식구들을 만나 무척 즐거웠다. 새로 들어온 기자 세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김고종호 기자와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었다. 내 담당(?) 기자인 이은주기자랑은 경남 소식들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김기언부장님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었는데, 늘 관심을 가져주던 우리 아들녀석이 오자 무척 반가워 하셨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 이진주 기자였다. 이번 6월호를 끝으로 우리교육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아쉽다고 하자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 했다며 그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삿말을 전했다. 오히려 내가 고마워 해야 할 사람인데, 갑자기 떠난다니 정말 섭섭했다. 가볍게 악수로 혹 인연이 닿는다면 이라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는데, 부디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 잠시뒤, 우리교육 기자들은 마감 관계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곧이어 박지희선생님이 찾아오셔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 피곤한 서울행이었지만 이런 저런 만남 덕분에 즐거웠다.
어느덧 전교조 집회가 끝을 맺고 연대집회를 가졌다. 연대 집회 이후, 청계광장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집회장소에서 팔을 들며 투쟁가를 부를 때, 옆에 있던 우리 아들 녀석 제법 흉내내며 즐겁게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청계광장으로 가는 길로 무척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청계광장에 도착한 뒤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생각보다 비싸기만하고 맛없는 음식때문에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구름처럼 몰려드는 집회참여자들 때문에 우리 아들 녀석과 나는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정말 많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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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김진숙씨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사회자의 진행으로 정말 깔끔하고도 흥겨운 하지만 깊이가 있는 집회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오늘이 열 일곱번째 집회라고 하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이나 진행하는 사람들이나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자리가 된 것 같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노래도 부르기도 하고, 고등학생부터 일반시민에 이어 활동가들에까지 차례로 올라와 발언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 많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며 광우병과 FTA비준을 반대하는 목소리르 높이고 촛불을 높이쳐 흔들때는 짜릿함마저 느꼈다. 목이 쉬웠지만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강기갑의원 주장과 노찾사의 '광야에서'를 들을 때 나는 잠시 대학시절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주변에 보이던 초등학생과 부모님들 모습, 중고생들의 모습,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왜 이자리에 있는지 왜 있어야 하는지 다시금 내 자리를 돌아보게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엊그제 집해 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잡혀 들어간 모양이다. 밤 9시가 넘어 동생네 집으로 일어설 즈음 '이명박 탄핵'을 외치며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이던 사람들이 떠 올랐다. 오늘 작은 책에 정태인씨 '부끄럽다, 정말 부끄럽다'라는 글을 읽고 나 또한 함께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들이 잘 못하는 일에 어린 아이들까지 나서게 한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아이들 삶을 생각하며 교사노릇을 한다는 사람까지 촛불집회에 나서는 아이들을 철없는 것들이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워 해야 한다. 지금껏 나만 행복하면 잘 사는 것이라는 자본의 훈육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그것만이 행복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을 부끄럽게 하는 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함께 하는 일이 그 부끄러움을 줄이는 길이다. 행복의 조건은 사회적이다.
지난 주말 우리 아들 녀석과 기분 좋게 전국교사대회와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1박 2일의 여행동안 아이와 자잘한 이야기도 나눴다. 6학년짜리와 손을 잡고 거리를 다녀보기도 하고 어깨를 붙잡으며 서로 웃기도 했다. 내 아이도 우리 아이도 행복한 삶이 곧 사회적인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건 비단 우리 아이뿐만은 아니었다. |
출처: 갈돕선생이 살아가는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갈돕선생
첫댓글 저도 교사대회는 갔지만 시간상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갈때마다 낱낱의 모래알이 모여 푹신한 모래사장이 되는 연대 느낌에 가슴이 뭉클해지곤하죠~ 특히 정태춘씨 노래와 낭독시 땜에 마음이 정화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오랜만에 정태춘씨를 뵈서 정말 좋았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이 촛불이 쉽게 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얻었습니다. 권력자들이 이를 알아야 할 텐데, 도망치려고만 들고 억압하려고만 드니 참으로 문제라 여겨집니다. 더 이상 다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