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조지 오웰의 "1984"년이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청소년의 잔혹성과 폭력적인 면을 대변하는 알렉스의 모습에서는 "파리대왕"이
그리고 국가체제와 같은 권력기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 즉 '루도비코'요법같은 시술은 "1984년"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주인공 알렉스는 10대 비행청소년이라고 봐도 상상치 못할 잔혹한 행위를 스스럼없이 행한다.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듣는 알렉스의 극단적인 행위,,,절도, 마약, 폭력, 강도, 강간, 살인...등은
그를 사이코패스와 같은 부류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지만
그러한 이유 즉 사회에 암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국가권력이 알렉스에게 "루도비코'요법(폭력행위를 하려고 하면
고통을 야기하도록 약물을 투여하고 영화로 세뇌교육을 시키는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는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메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감옥에서 루도비코요법을 받은 알렉스는 감옥에서 출소한 후 부모로 부터 버림받고,
자신이 가해했던 사람들과의 우연한 재회로 복수를 당하고 그에 이어 자유의지를 상실한 자신을 이용해 현 정권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처지에 놓이자 더이상 살아가야 의미를 잃고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죽지않고 살아남은 알렉스는 이일로 인해 여론이 들끓자 다시 옛날의 자신으로 되돌아 올수 있게 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시 나쁜 짓을 일삼지만 그러한일들도 시들해지고 어느듯 자신이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시계태엽오렌지는 태엽을 감은 시계처럼 움직이는 인간을 말한다. 오렌지는 말레이시아어 '오우랑' 즉 '인간'
을 말한다고 한다. 즉 "시계태엽 인간"은 다름아닌 자유의지를 빼앗긴 알렉스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국가의 권력이나 제도적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인 알렉스가 비록 '절대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비행
청소년일지라도 루도비코요법과 같은 약물요법으로 자유의지를 꺽고 사회구성원으로 적합한 인물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와같은 사례를 생각 해 보았다. 연쇄살인범,,미성년 성폭력자..등 사회가 묵인할 수 없는
죄질이 아주 나쁜 인간들에게 우리는 사형 또는 화학적 거세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방법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할까?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은 인간들에게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 해 보는 시간들이었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이에 의한 다수의 피해자들의 입장을 생각 해 보면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