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2: 25-33
제목 : 시므온의 기다림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 마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기운과 은혜의 풍성함이 추워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석회질 성분이 많아서 비가 오지 않으면 딱딱히 굳어질 수 밖에 없는 땅입니다. 이른 비가 내려야 딱딱한 땅이 부드럽게 되어서 농부들이 밭에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아무리 수고해도 늦은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은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비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비를 기다리는 마음, 이 마음이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700년 가까이 나라를 잃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었던 믿음의 근간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또한 주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으로 들어갔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이제 세상을 평안히 떠날 수 있음을 아주 기뻤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시므온의 모습에서 두 가지의 깊은 신앙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성경은 시므온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500년경 전에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했던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식민지 국가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오랜 역사 속에서, 도무지 하나님의 위로가 보이지 않을 때에 조차도,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평생 동안 이스라엘을 위로할 메시야를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25절 말씀을 보니 성령이 그와 함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성령님의 인도로 성전 안에 들어갔을 때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그와 함께 있었기에 그는 그렇게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령님께서 인도하셨기에 그의 기다림에 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아기 예수로 오시는 메시야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탄의 사건이 단지 2000년 전에 유대 땅에서 있었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이 한반도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탄절을 준비하며 기다리면서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아니 늘 우리 삶과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품어주시고 위로하여 주시는 성령님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희망식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자신의 신앙의 부족함을 내어놓고 믿음 없음을 고백하는 것은 신앙의 미덕이요, 또한 신앙인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한 고백이 우리 삶 안에 들어와 계시며 우리의 속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그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주님의 은혜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인듯 하여 가슴이 아플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루어가시고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이루어 가심을 우리는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때가 늦어진다고 또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가 속히 임하고 이루어지기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기다림이 지치지 않도록, 기다림 속에서 우리가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비록 지금 당장 우리들의 바램들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소망을 갖고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 속에 임하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희망식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시므온이 평생동안 기다려왔던 것이 있습니다. 그건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구원할 그리스도 즉 메시야 였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해서 회춘하거나 갑자가 삶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자신의 일신의 부귀와 영화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을 만났다는 기쁨과 감격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아기 예수 안에서 메시야의 역사를 보았고 이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소금물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소금물은 우리의 갈증을 더욱 심하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우리 삶에 자신이 필요한 욕구의 충족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그건 기다림일 수 없습니다. 기다림은 자고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다림을 겸손함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노력과 내 의지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온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님께 맡겨놓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대림절을 보내면서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은 지금까지 우리가 자신만의 욕구와 갈망으로 채워왔던 삶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내 삶에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임을 고백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특별히 가난한 이웃들과 고통 중에 있는 많은 피조물들을 위해 오시는 ‘주님의 사건’을 내 신앙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다짐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기다림은 결국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들의 변화의 시간들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물들고 찌들어져 있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깨끗이 씻겨지는 시간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탄절이 우리들에게 큰 의미와 은혜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일을 이르실 때와 우리를 향해 가진 계획들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시간을 잘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고되고 힘들지라도, 낙심되며 어려울지라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해주심을 믿고 주님을 잘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려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의 약속임을 알고 우리 자신의 것들을 내려놓고 성탄절을 잘 맞이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과 함께 우리도 새로운 사람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사건을 체험하는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