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 날 문득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먼 유리창 빛이 투명해지면서 우리 집 베란다 너머로 하늘이 푸르게 열렸을 때, 내가 맨 처음 느낀 것은 뜻밖에도 울컥 치미는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 뽀송뽀송한 두 팔을 자꾸 만져보고 언제나 땀으로 끈적거렸던 이마도 만져보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서늘해질 걸 그렇게 뜨거웠던가 하는 원망 같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지난여름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그저 내내 가을이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나 또한 저녁 먹고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가면서 신선한 바람을 즐긴다. 가을이 오니까 참 좋구나 하면서.
그런데 가을이 오면서 내게 새로이 느껴졌던 것은 비단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 뿐만은 아니었다. 새삼스레 새로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포도알처럼 빽빽이 달린 대추가 대추나무 가지에서 흔들리는 소리……. 그건 무겁고 습하고 뜨겁기만 하던 여름 속에서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것이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오후 집 앞에서 부대끼는 무성한 나무 이파리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새삼 그걸 깨달았다. 지난여름은 소리로 느끼기에는 너무 잔인했다. 하지만 이 가을밤 나는 문득 귀를 기울이고 푸른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군청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들의 소리조차 들을 것만 같다. 그만큼 내 마음이 고요해졌다는 이야기일까.
밤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까 내게 가장 친근했던 것은 뒤뜰의 늙은 밤나무가 어린 밤톨들을 떨어뜨리는 소리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해서 긴장감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누군가 장난을 치는가 하고 의심도 해보았다. 그런데 아침에 뒤뜰에 나가 보니 풋밤들이 마당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날카로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면서 그것들은 밤새 후두둑거렸던 것이다. 그 소리가 들리기 전에 뒤뜰의 밤나무는 사실 내게 아무런 감흥도 아니었다. 그러니 깨어지면서야 우리는 비로소 소리를 내고 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 깨어짐과 그 소리로 인하여 나는 이제 밤나무를 다르게 느낀다. 그와 나는 비로소 특별하게 관계 맺어지는 것이다. 내가 잠 못 이루는 동안 저 밤나무도 그랬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책을 펴들고 있다가 문득 생각하는 것이다.
아아, 어쩌면 이제 모두 버릴 시간은 아닐까. 어줍잖게 얻은 것들, 다 내 뜻은 아니었지만, 얼결에 얻은 것들, 다 으깨어지더라도 한 번쯤 살아온 모든 시간들을 다 내던지고 새로이 시작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런 날이면 침대 맡에서 등불처럼 빛이 나는 스탠드를 잠시 끄고서 나는 오래 잠들지 못한다. 가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지만, 실은 가을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반복될 가을이기 때문에 나는 잠시 내 삶의 지나감을,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욕심 많은 내 생, 그, 지나가고 있는 내 생의 한밤중을.
지난번 괴산 매산지 물가에서 하늘을 보았다. 별들은 작고 먼 등불처럼 하늘에 매달려 있었다. 은하수가 흐르던 그 군청색의 밤하늘. 반딧불들이 가끔 별빛처럼 날아들고 무더기 무더기 들국화가 서리를 맞고 있던 그 호숫가에서 나는 무심하고 담담하며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했지만 서울로 돌아오고 난 후 곧 그 다짐을 잊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가을이고 이제 나는 그 때의 다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
만일 가을이 이 혹독한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예를 들어 그저 시원한 어떤 계절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 다짐을 떠올리지 못했으리라. 그러고 보면 지난여름의 그 살인적인 폭염은 가을을 내 생에 처음의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 이 세상에서 내게 다가오는 고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