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라의 어린이들은 빨간약 아까징끼(赤チンキ)와 노란약 옥도정기(沃度丁幾, ヨードチンキ), 겡게랍(金鷄蠟), 정로환(征露丸), 기응환(奇應丸), 반혼단(反魂丹) 등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했던 이 약들이 동의보감과 대마도의 기이한 연유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면 만감이 교차한다.
대마도에서 제약 산업의 발달과 관련하여 동의보감과 같은 한의서는 물론이고 조선인 포로 출신 한의사와 약방의 역할, 그리고 약종상의 역할도 막중한 것이었다. 약종상(藥種商)이란 약을 짓는 재료를 파는 일을 말한다. 당시 부산에서 한약 재료들이 많이 건너갔다. 조선 수정동 두모포나 초량 왜관 시대에 대마도인들의 3대 수입품이 쌀과 생사, 그리고 약재이었다. 이 중에 약재 수입이 대단히 짭짤했다. 대마인들은 산삼 등 수입 약재를 큐슈의 도수 거리에서 판매했을 뿐만 아니라 약을 등에 지고 다니면서 일본 전국에 팔러 다녔는데 이를 대마약상 또는 다시로 약상(田代藥商)이라고 하여 대마도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연대를 소급하면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 대마번은 100,000석의 가격(家格)을 인정받고 있었으나, 대마의 영토에서는 쌀 4,500석, 보리 15,000석 정도의 수입에 불과하였고, 은광 채굴과 조선과의 무역을 통하여 이를 확충하였다. 이후, 종씨는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한다는 가역을 배경으로 전대(田代) 등 구주에 땅 30,000석을 가증(加增)받았고, 그 외에도 막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내었다. 1858년 덕천막부는 서양 5개국과 통상조약을 맺었다. 막부의 개항 정책 하에서 대마에 개항장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한 종의화(宗義和)는, 이봉운동(移封運動)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이 성공하게 되면, 구주의 새로운 영지 100,000석에 전대(다시로, 田代) 등에 있는 비지(飛地) 30,000석, 광산 40,000석, 그리고 조선과의 무역도 결국은 자신들이 담당하게 될 것이므로 30,000석을 계산하여 합계 200,000석 내외의 신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가현에 있는 도스시(Tosu City)는 옛 다시로 도수(鳥栖)로서 교통의 요지이었고 우리나라 옛 역원 제도의 원과 역처럼, 나그네나 관인이 자고 가는 다시로 원역이 있었다. 그런 번화함 때문에 행인들에게 한약을 파는 약종상 거리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일본의 한의학은 그 진맥과 치료, 기술, 한약 조제와 재료까지 모두 조선에서 건너갔다. 그래서 조선과 거래하던 대마도 사람들이라 이 한약 거리를 만들었다. 도수는 지금 세계적인 제약 단지가 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제약회사는 구광제약(久光製薬)이다. 일본말로 히사미츠라는 이 회사는 대마도 인들이 1847년에 근대제약사로 도수에 설립하였다. 기응환의 특허도 이 회사가 지니고 있고 또 몸에 붙이는 파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가 이 구광제약이다.
일본에서 약재로 대마도와 경쟁한 곳이 일본 열도 중부 서해안에 있던 도야마 번(富山藩)이었다. 동해와 가까워서 조선 초기에 바다를 건너온 조선인들이 시작하였다. 농토가 적었던 도야마 번은 정책적으로 약재를 키웠고 그 역사는 대마도보다 오래다. 대마도에 앞서 도야마가 일본 약계를 평정했다. 뿐만 아니라 도야마 번의 약재상은 "다시마"로 메이지 유신을 이끌기도 하였다. 도야마에서 나온 유명한 약이 반혼단이다. 도야마 반혼단은 어떤 설사 복통도 낫게 하여 일본 전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중국인들이 일본군과 싸우면서도 약은 적국인 일본 약을 찾았다고 한다.
대마도의 비지와 일본의 제약산업의 비약은 동의보감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대마의 비지(飛地) 도수약가(鳥栖藥家)가 실제이기 때문이다. 대마도는 일본 큐슈 여러 곳에 땅을 비지로 소유하고 있었는데 모두 합하면 그 넓이가 대마도 만 했다. 비지에서 각종 작물을 재배하고 생산 시설도 두었다. 이 비지를 만든 자금은 우리 조선이 보내준 쌀(公作米, 歲賜米)이었다. 조선 후기에 해마다 경상좌도 세곡미의 절반인 약 10만석이 대마도에 들어갔는데 그 쌀을 팔아 큐슈의 비지를 늘렸다. 대마도의 비지는 큐슈 여러 곳에 있었다. 큐슈 남쪽 가고시마의 다루미즈(垂水) 같은 먼 곳에도 있었고, 가장 넓은 비지는 현재 후쿠오카현 도수시 일원이다. 원래 대마번이 이 도수 지역을 구입하는데 에도 막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대마인들은 이곳에 조선통신사를 위한 숙박과 휴게 시설을 짓겠다고 거짓 신청을 하여 허가를 얻어 도수 지역을 매입하였다. 이 도수는 당시에 다시로(田代)라고 불렀다. 이 다시로 도수에는 대마도 관리들이 출장 상주하는 대관소가 있어 쌀 생산과 쌀의 창고 보관을 감독하였고 주민들을 관리하였다. 지금은 대마번이 비지로 만든 도수 제약단지는 세계적인 첨단 제약단지로 변신하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의 나비효과는 대마도를 비롯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계속 나타나고 있다.
[졸저 <강역의 기억, 영토의 변경>, 출판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