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 강진 주작산을 오르다 - 기기묘묘한 암릉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 향연

[서리풀]

천상의 화원, 강진 주작산을 오르다

기암릉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 향연

벼르고 벼르던 주작산 진달래 출사였다.

2023.4.3. 밤 11시에 서울 충무로역을 출발, 5시간 이상 걸려 전남 강진 주작산 입구에 도착했다. 수도권에서는 워낙 먼 남쪽 산이다 보니 다녀오기가 쉽지않은 곳이다. 자동차로 왕복 10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시간절약과 일출사진을 위해 통상은 전날 밤 11시경 출발하는 게 상례다. 주작산은 인접한 덕룡산과 함께 봄철 4월이 되면 기암괴봉 사이사이로 피어난 진달래꽃밭이 특히 유명하다.

올해는 봄철 날씨가 더워 매화, 개나리, 벚꽃, 진달래 등이 다른 해보다 1-2주 정도 앞당겨 피고 있다는 소식이다. 4월 4일에 가면 혹시 늦지는 않았을까? 일기예보에는 이날 오후부터 전국에 비가 온다던데 날씨는 괜찮을까? 이런저런 걱정 속에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출사에 나섰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다행히 날씨는 괜찮았다. 진달래 개화상태도 거의 절정 즈음인 것 같다.

4시 30분 경 주작산 자연휴양림을 출발, 수양리재를 거쳐 5시 20분경 일출포인트 현장에 도착했다. DSLR카메라에 삼각대까지 넣은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려니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숨 가쁘다.

해가 뜰 시간은 아직 멀었으니 천천히 오르자고 다짐하지만 길을 모르는 필자로서는 경험자들의 꼬리를 놓치면 안된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이니 더욱 그렇다. 암튼 겨우겨우 현장에 접근, 랜턴을 켜고 조심스럽게 바위절벽을 기어올랐다.

일출 전망이 좋다는 위치에 일단 자리잡았다. 절벽 위여서 삼각대 놓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다. 자칫 발이라도 헛 디디면 수십길 바위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카메라 앞에 진달래꽃이 병풍을 치고 웅장한 기암절벽들이 한 눈에 펼쳐져 있는 조망포인트가 최선이다.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해가 뜨기를 기다렸지만 역시 일기예보가 틀리지았았다. 구름 속에 약간의 붉은 여명이 보이는 듯 했지만 해는 한참 오른 다음에야 제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멋진 일출사진은 포기하고 이제부터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암릉을 따라가 본다.

와, 절경이다. 기기묘묘한 바위 사이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꽃, 진달래꽃들! ‘천상의 화원’이란 표현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니겠는가?

진달래가 많은 산들이야 강화도 고려산이나 여수 영취산, 대구 비슬산 등 전국에 여러 곳 있지만 기암절벽 속에서 피어난 진달래꽃동산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이곳 주작산-덕룡산 암릉이 단연 최고다. 

주작산은 기둥바위, 촛대바위, 대포바위, 돛단배바위, 공룡 이빨바위, 집게바위, 병풍바위, 칼날암릉 등 일일이 이름붙이기도 쉽지않은 기암들이 즐비하다. 굳이 진달래꽃밭이 아니더라도 암릉산행 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한 바위능선이다.

불과 40-50분 정도(마지막 소형차주차장에서 출발하면 30분 이내) 올라 이런 절경을 볼 수 있다니 놀랍다. 젊었을 적 10여 년 동안 암벽등반을 해본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기암절벽에 비교적 익숙한 편인데도 진달래가 만발한 주작산 암릉의 아름다움에는 감탄사를 연발하지 아니할 수 없다.

주작산 정상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로프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들도 만난다. 우리 일행의 인솔자는 로프구간은 위험하니 가지않는게 좋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절벽이라도 로프가 있다는 건 안전장치가 돼 있다는 게 아닌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막상 가보니 별로 어려운 구간은 아니다. 로프를 타면 누구나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 로프구간을 넘을 때 마다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일반암릉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기암괴석들을 만나고, 진달래 바위능선도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필자는 오래전 해남 달마산과 두륜산, 그리고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월출산도 등산해본 적이 있다. 이들 산 역시 산세가 웅장할 뿐 아니라 기암괴석의 전시장들이라 산행의 묘미가 짜릿하다. 왜 땅끝 해남의 산들은 대부분 기암봉이 많을까?

주작산은 오소재에서 두륜산과 이어진다. 주작산 역시 행정상 주소는 전남 해남군 북일면이다. 주작산 종주는 수양리재에서 오소재까지 4.5km, 약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암릉을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 산행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

자동차를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두고 산행을 했을 경우에는 택시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오면 된다. 택시요금은 22000-25000원 정도. 주작산과 덕룡산을 모두 종주할 경우에는 8-9시간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 산악회 산행대장까지 했던 필자의 지인이 오래전 주작덕룡산을 종주해보고 꽤 힘들었다고 말했던 게 새삼 떠오른다.

지금부터 15년 전인 2008년 10월. 혼자서 넘었던 설악산 공룡능선도 생각난다. 험난하기로 이름난 그 공룡능선을 위험을 무릅쓰고  '나홀로산행'으로 도전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탈출루트가 없어 반드시 끝까지 넘어야 하는 '죽음의 능선'이다.

그때 만 해도 젊은 시절이라 무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과거에는 실제로 공룡능선을 넘다가 탈진하여 죽은 산악인들도 여러명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필자는 공룡능선을 가기 위해 한계령에서 출발하는 서북주능선코스를 택했다.

한계령-서북주능선-끝청-중청-대청봉-소청산장 1박-희운각대피소-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 코스로 총거리 23.2km, 2일간 여유로운 산행으로 합계 18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이중 첫날 서북주능선코스는 대청봉 경유 소청산장까지 9.7km, 7시간, 둘째날 공룡능선 코스는 소청산장에서 희운각대피소를 거쳐 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까지 13.5km, 약 11시간이 걸렸다. 필자로서는 실로 대장정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 주작산-덕룡산도 '남도의 공룡능선', '작은 공룡능선'이라 부르지않던가? 당시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후 썼던 졸시 한 수를 여기에 옮겨본다.

주작산 암릉 역시 규모는 작지만 내겐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난 공룡능선과 다름 아니다.

꿈을 꾸었다

운해雲海 속을 걷고 있었다

바다 위에는 거대한 파도가 출렁이고

공룡, 공룡의 무리가

하늘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승천을 위한 처절한 몸짓이었다

난 구름 위를 춤추며 나아갔다

아! 샹그릴라

형형색색의 꽃들이 깊은 계곡을 수놓고

뻗어내린 가지, 가지 마다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능선 마다 거대한 동화나라 바위성城

그 너머로 신선들의 옷자락이 펄럭이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났다

아, 그것은 하늘나라가 아니었다

나는 거대한 공룡의 등을 기어오르는 한 마리 개미

샛길도 없는 길

떨어지면 죽는 외줄을 타고 있었다

굽이쳐 꿈틀대는 웅장한 등줄기

거칠고 험난한 쥬라기 능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글,사진/임윤식)

[마이산]

시인이요, 암벽 등반가이자 사진작가가 아니면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글과 무리무리 진달래 꽃동산(?)이 기암절벽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절경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도전에 찬사를 보냅니다.

[서리풀]

과찬의 말씀! 암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