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 왠지 몸이 무겁고, 피곤하고 소호 불량이 심했다. 집근처 병원을 찾아 내시경을 했는데 위 식도 정맥류가 있다고 큰 병원에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란다 백병원에 가서 검사를했는데 간경화가 진행 중이란다.
서울 혜성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이미 간경화 3기정도 진행 되었단다. 또다시 유명병원 연세세브란스 소화기내과 에서 진료를 시직했다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 간경화는 간암으로 진행될 확율이 높다고 하신다. 그때부터 울신랑 간이식에대한 공부와 정보수집을 하기 시작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 받고 있을무렵 2005년10월경 드디어 올것이 왔다 식도 정맥류가 터져서 혈변을 보게되었다
바로 세브란스 응급실로 입원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식도 정맥류를 묶고 입원하고 있을때 간이식을 권유받았다.
그당시는 암은 아니였다 그래도 건강한 상태고 이식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이식 병원은 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암센터 4군데서 주로 시행되었다 이젠 언제 어디서 이식을 할지 결정만 남았다.
그러던 으느날 2006년 4월경 간에 종양이 발견되었단다 결국 암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이젠 조금이라도 빨리 이식을 하기로 결정
하고 현대 아산병원 (이승규 박사 우리나라 에서 최초 이식) 으로 갔다.
그런데 처음부터 검사를 다시 시작한단다 씨디랑 자료를 다 가지고 갔는데 다무시하고 검사비만 왕창 나오고 담당 이승규 선생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완전 불친절에 실망이컸다. 한 성질하는 우리 신랑 병원측과 한판붙고 집 근처 암센터로 옮겨왔다.
암센터 소화기 내과 박중훈 선생님 진료 세브란스병원 자료 그대로 넘 친절하시고 자상하게 설명 해 주셨다. 간암인데 위치가 고약 한곳에 있고 또한 간 경화라서 암수술은 할 수 없고 색전술로 치료 하자고 하셨다. 색전술 하고난후 혈소판 수치가 너무 떨어져 이젠 이식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이식외과 김성훈 선생님께 보내주셨다.
본격적인 이식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울 신랑과 혈액형 교차실험 했다.혈액형AB형은 어떤 혈액형도 이식 가능 한데 우리 신랑(O형)과 교차실험 결과 2번이나 제검사 후 김성훈 선생님 께서 호출이 왔다 불행하게도 이식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는 답이왔다 우리 신랑 또 한성질 세브란스 에서는 된다는데 왜 안되느냐고~ 김성훈 선생님 촌철살인격으로 딱 한마디 권용희씨 죽습니다 ~그냥 띵~
물론 중국 병원에도 여러군데 섭외 중에있었다 우리 신랑 중국에서 이식하고 온 사람들 많이 만나서 경험담들 듣고 비자발급 이며 모든준비가 되어있었다.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이식 한곳이 텐진병원, 그다음 베이징 조우양 국립병원 두곳이다.
와우~2006년12월 28일 중국 병원 2곳에서 연락이 왔다 빨리 오라고 12월말에 간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어느 병원으로 갈까 갈등이
많았다. 턴진병원은 한국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수술 후 관리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베이징 조우양 국립병원으로 결정하고
2007년 01월 03일 13시 05분 중국 민항기편으로 서울출발 14시05분 북경 도착 15시 20분 베이징 조우양병원 도착 17시 부터 검사시작
중국 주치의 젊은 의사에게 꼭 혈액형은 AB형으로 이식 해야 된다고 요청하니 중국에서는 동일 혈액형으로 이식 한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05일 16시 00분 이식 준비 치료시작 19시 55분 수술실 입실 21시 40분 수술 시작 06일 04시 10분 척출된 간 루히 신랑이 확인 중국에서는 축출된 간은 보호자들이 직접 확인한다. 06시30분 모든 혈관연결 환료 후 관찰 중 (출혈 부분) 08시 10분 수술 종료 후 중환자실로 이동 10시 00분 의식 회복 4시간 만에 의식회복 순조롭게 회복되다가 07일 22시 10분경 GOT, GPT 6000 으로 급상승 거부반응 으로 회복 불가능 상태 일요일 밤이지만 긴급미팅 (중국 주치의 긴급 출근, 한국도우미, 유리 신랑) 중국 주치의 왈 한국에서 무슨 일 없었냐고 그때 우리 신랑 한국에서 혈액형 O형과 이식 교차 실험에서 불가능 판정이 나왔다고 했단다 의사 왈 이젠 재이식 밖에 방법이 없다고,
월 화 수 요일날 간이 많아 나오니까 기대 해보자고 (AB형) 혈액형도 가능 하다고, 월 화 2일 지나는 동안 이미 나는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미 소변은 혈류 소변 간기능 완전 정지상태 10일 수요일 15시 30분 재이식 동의서 작성 2박스 물량의 AB형 혈액도착
오른쪽 동맥으로 몸속 혈액을 빼면서 왼쪽 동맥으로 다른 사람 AB형 혈액으로 수혈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체질 변경 한 후
재이식 입실 20시 20분 나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재이식은 ~걍~성공 이였다 그런데 24시간 지난 후 겨우 의식회복
했다 지금 부터 힘겨운 삶에 사투가 시작 되었다. 자가 호흡을 할 수 없기에 호흡기 착용을 하고 악몽같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수치가 95 이상 되어야 호흡기 제거가 가능 하단다 일주일이 지나도 수치가 모자란다 94정도 이정도면 근사치 우리 신랑 한성질 호흡기 제거 해 주라고 또 날리법석 주치의 승락 그런데 자가호흡이 쉽지않았다 그래서 페에 물이찼다 옆구리 뚫어서 호수 넣고 많은 양에
흉수(500CC)을 뺐다 일반 사람 2-3일만에 일반병실로 오는데 나는 2주일 만에 일반 병실로왔다 이젠 하루라도 빨리 귀국 하고싶었다
결국 1개월이 지나 귀국해서 바로 암센터 김성훈 선생님께 진료시작했다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회복하고 있던중 9개월쯤 지나 마트에
갔다가 다리에 힘이없고 어지럼까지 동반 바로 암센터 응급실로 입원 검사한 결과 거부반응 GOT,GPT 300 T,BILL, 황달 2.5 이상 수치가 올라갔다 곧 바로 1인실 입원 이식 환자는 감염 때문에 1인실에 입원해야된단다. 거부반응 치료제 스테로이드 처방 GOT,GPT 1000 까지 올라갔다. 그래서 스테로이드 양을 높여 치료해서 조금씩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성훈 선생님 2주면 퇴원
가능 하다고 말씀하신다 일반 보통 2주퇴원이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2주가 다되었는데 다시 수치상승 김성훈 선생님
급 당황하신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다른 병원으로 가도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일본에서 임상실험 거친 일명 OKT3 라는 거부반응
치료약이 있는데 우리나라 에는 서울대 병원 한곳에만 있단다 (딱1명분10병)그도 위험해서 치료 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하신다 이젠 시간없다 서울대 병원에 의뢰 해 보신단다 마지막 희망이다. 서울대 병원에서 약을 보내 주었다. 치료 하기 시작했다 처음 2일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불덩이였다 간수치는 급 내려오기 사작했다 이젠 희망이 보인다 일주일 되니까 GOT,GPT (T,BILL황달) 완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OKT3 라는 약과 김성훈 선생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있다 (참고로 OKT3 라는 약은 우리나라 다른병원 에는 없는 약이다) 나는 중국에서 한번 죽고 한국에서 한번 죽고 두번 죽은 목숨이다. 이젠 천수를 누릴 수 있겠지
~~오늘도 화이팅 아~자~자~~
첫댓글 두번 죽고 두번 산 사람!
대단한 사람이네요.
한번도 하기 힘든 이식을 두번이나 하고, 다시 서울대병원에서 또 한번 생명을 얻고..
귀한 목숨 건강하고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세요.
힘든만큼 이제 건강하게 살고있습니다~
박병호님도 건강관리 잘하셨요~^^
소중하고도 귀중한 글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하늘에서는 귀한 천사님을 우리곁에 보내 주실려고~~
그리도 인고의 고통을 주셨나보다.. .
함께 노력 하신 부군님의 노력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저며 오네요~~
환자는 아파서 모르지만은 ~ 보호자의 답답한 심정은 저리도 서러울진데~
우리 귀한 재생의 목숨 고맙고,감사하게 잘 가꾸어 갑시다.
고생하신 권용희 부회장님~ 그 모든 고통과 병기를 극복 하시고~
우리 곁에 살포시 오셔서 함께 우생 발전을 위하여~
수고 하여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꾸~어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