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13승까지 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동료들의 도움을 첫 번째로 꼽는다. 그중에서 경기장 안팎에서 일등 도우미 역할을 하는 후안 유리베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상대한 샌디에이고전에서 13승을 거두며 미디어는 물론 팬들,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과분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미국 데뷔 해에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고 이젠 13승을 지나 14승을 향하고 있는 데 대한 격려와 응원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13승을 기록하기 까지는 제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랐다는 솔직한 생각이 듭니다.
야구는 혼자만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제가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는 가운데 타선과 수비에서 혼신을 다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루키 신분인 저한테 10승도 아닌 13승의 숫자를 선물한 게 아닐까요? 일부러 겸손해 보이려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저스 소속 선수로 활약하면서 팀워크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있고, 한국에서 온 신인 선수에게 넘치는 관심과 애정을 표하면서 절 편하게 적응하게 만들어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헨리 라미레즈가 류현진을 향해 마치 복싱하는 자세로 손을 뻗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사진을 통해 익히 보셨겠지만, 다저스 덕아웃은 엄숙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출전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은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고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저도 선발 경기가 없는 날에는 이런 분위기에 동화돼서 유리베, 푸이그, 헨리 라미레즈 등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 전부터 덕아웃을 시끌벅적하게 만듭니다.
만약 다저스가 아닌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팀이었다면 제가 다소 힘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덕아웃의 흥겨움이 제 성격과 잘 맞아 떨어졌고, 저와 비슷한 코드의 선수들이 가까이 존재하면서 마치 시트콤을 찍는 듯한 장면들을 자주 노출했던 것이죠.
다저스의 악동 커플, 유리베와 푸이그.(사진=순스포츠 박동아) |
이런 점에서 후안 유리베는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전 그 선수를 형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마냥 좋아하는 친구로 가슴에 담았습니다. 푸이그가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 뻔했던 상황에서도 유리베는 그를 달래고 어르고 안아주면서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영어도 짧고 낯을 가리는 저한테 지금은 팀을 떠난 루이즈 크루즈와 함께 먼저 다가와서 나이도, 커리어도 다 내려놓고 진심으로 절 챙겨줬습니다. 만약 이런 선수들이 없었더라면 제가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류현진은 여전히 낮 경기에 대한 적응력은 풀리지 않은 숙제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데뷔 첫 해에 낮경기를 적응하기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샌디에이고전은 이미 기자회견을 통해 말씀 드렸지만, 1회에 점수를 주지 말자고 결심했고, 이 부분은 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매 경기마다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걸 고치지 못하거나 극복하지 못한다면 제가 선발투수로서의 자질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1회부터 파이팅 넘치게 공격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힘든 ‘숙제’도 있습니다. 바로 낮 경기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인데요, 이건 시간 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오후 5시가 아닌 오후 1시나 12시에 등판을 하는 건, 잠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에 경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낮 경기가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가급적 낮 경기에 등판하지 않기를 바라는 솔직한 마음도 있는데요,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또한 극복해 나가야 하는 부분인 것이죠.
내일부터는 콜로라도 원정에 이어 (추)신수 형이 있는 신시내티로 향합니다. 저도 다시 한 번 신수 형과 맞붙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콜로라도 원정 마지막 날 등판이 예정돼 있어 신시내티에서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신수 형이 자신의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해준다고 했는데, 은근 기대가 되네요. 지난 LA에서는 주변 상황이 복잡하고 어수선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신시내티가 요즘 1승이 중요한 상황이라 편하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형과의 만남은 그 전부터 항상 설렘을 줍니다.
면도기 회사의 100만 달러의 제안에도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말한 브라이언 윌슨.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적 후 지난 1일 샌디에이고전에서 첫 승을 올렸다.(사진=순스포츠 박동아) |
참, 어제(1일) 샌디에이고전에서 1-1 동점이던 8회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브라이언 윌슨의 수염에 대해 다들 아시죠? 전 윌슨을 처음 보고 엄청 놀랐습니다. 그의 수염이 제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길었으니까요. 제가 그의 수염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자, 마틴 형이 이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한 면도기 회사에서 윌슨이 수염을 자르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거절한 것 같다고요. 그래서 제가 마틴 형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11억을 준다고 하는데, 그걸 왜 안 자르지? 돈 받고 자른 후 다시 기르면 되잖아”라고요.
그런데 윌슨한테는 수염이 에너지를 부르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하니, 쉽게 자르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전 돈 주고 기르라고 해도 못 기르겠던데, 지저분해서 말이죠. 오늘 일기는 거룩하게 시작해서 수염 얘기로 마무리를 짓게 되네요^^.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오는 9월 7일(한국시간)부터 3연전을 치르는 신시내티와 다저스 경기. 아쉽게도 추신수와 류현진의 맞대결은 볼 수 없지만, 두 선수는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더욱 두터운 친분을 나누게 될 것 같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첫댓글 팀 동료간의 끈끈함.... 다저스가 지금의 성적을 내게해준 원동력 이겠죠~~
앞으로 강북에도 많은 신입선수들이 들어 올 겁니다. 잘 적응 하고 즐겁게 야구단 생활 할 수 있게 기존 선수, 부모님들의 따뜻한 손길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