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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의 단독 공연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미친 짓이었던 것같다. 그래도 무사히 마쳐서 너무나 기쁘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는 기타를 절대 치지 마라는 선생님의 엄명 때문에 연습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월, 화, 수 계속 일이 있어 지방으로 다니고 학교에 가고 연구원에 다니면서 바빴다.
연주회 당일인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막막한 느낌이 밀려왔다.
아침부터 기타를 꺼내서 부지런히 노래 하나씩 점검을 해보니
갑자기 18곡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내가 미쳤지. 갑자기 너무나 큰 사고를 쳤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공지는 나갔는데 이제와서 뺄 수도 없고...
어떤 곡들은 눈을 감고도 칠 수 있겠는데 어떤 곡들은 자신이 없었다.
한참 연습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래도 많지만 노래 사이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넣어야 될지도 막연하였다.
무조건 즉흥적으로 하다보면 자칫 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미 공지가 나간 18곡을 이야기 순서와 흐름에 맞추어 새롭게 배치하고
이야기의 내용을 미리 글로 쭉 적어놓고 그것을 적당히 컨닝하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에 대한 이야기와 노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노래에 얽힌 나의 삶의 이야기를 엮어서
쭉 정리를 하니 무려 A4 용지로 다섯 페이지가 나왔다.
이 작업 하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4시간.
이제 남은 것은 노래를 틀리지 않고 매끄럽게 부르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혼자서는 잘 부르던 것도 알고 사람들 앞에서 부를 때는 코드를 버벅거린다는 생각이 들자
최선의 방책은 미리 악보를 만들어 악보를 보고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자신있는 곡들은 그대로 부르기로 하고 나머지 곡들은 악보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꺼운 <열창주부가요>노래책을 놓고 부르기는 뭐하고 해서
한글워드에다 가사를 쓰고 코드를 밑에다가 달아서 악보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박자까지 일일이 다 표시하면서 악보를 만드려니 그 작업이 만만치가 않았다.
악보를 다 만들고나니 시간은 점차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프린터가 말을 안듣는 것이었다. 황당하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나가는 연구소가 공연장소로 가는 도중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 출력해서 전해받기로 하였다.
출력물과 아울러 캠코더 삼발이도 빌리기로 하였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마침 캠코더를 김형찬씨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에
5시 반 무렵에 종로3가역에서 만나서 돌려받기로 하였다.
원래 캠코더를 받은 다음에 악기상가에 들러 악보받침대를 사려고 하였다.
그러나 악보만드느라 형찬씨와의 약속도 늦어지게 되었고 악보받침대를 사러갈 시간도 없었다.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
형찬씨에게 미안하지만 악보받침대를 사서 역 안의 승강장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종로3가역 승강장에서 바로 캠코더와 악보받침대를 전해받고 바로 다음 지하철을 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너무나 빠듯하였다.
그래서 연구원간사에게 6번째 차량 4번째 승강장으로 찾아오라고 하였다.
열차가 애오개역에 도착하는데 바로 연구원간사가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문이 열리자 바로 물건을 전해주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야말로 007작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과 정성을 빼았았음에도 불구하고 7시가 조금 늦어서야 도착하였다.
기타, 기타발받침대, 캠코더, 삼발이, 악보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옛 노래책 한권, 공연 프로그램복사물과 준비자료,
이 모든 것들을 혼자서 준비하고 다 들고오려니 조금 힘든 게 사실이었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보니 열대여섯 평 남짓한 가게 입구에
<박석교수의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노래 공연>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공연장 정면 벽면에도 예쁘게 꾸민 공연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입구의 탁자에는 내가 옛날에 썼던 <명상길라잡이>와 얼마 전에 출간한 <대교약졸>이 예쁘게 놓여져 있었다.
아내와 소리미님, 푸른숲님은 이미 의자에 앉아서
호박죽과 오뎅국 등의 주최측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주인장은 사람들이 아직 조금 덜 왔으니 숨 좀 돌리고 음식을 조금 드시고 7시반부터 공연을 하잔다.
그러나 공연을 앞두고 음식을 먹으면 발성호흡에 문제가 있기에 음식은 조금만 먹고 물을 주로 마셨다.
곡목리스트와 같이 부를 노래가사가 실려있는 프로그램표를 나누어주고서는
캠코더와 삼발이를 아내에게 전해주고 난 뒤에 무대쪽으로 가서
기타발받침대를 펼치고 난생처음 만져보는 악보대를 조립하고 기타를 조율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낮달님이 오셨다.
인원은 대략 25명 정도였다. 공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김민수님과 김정호카페의 외기러기님도 오시고 공연 중에 몇 분 더 오셔서 나중에는 30명 정도가 되었던 것같다.
마침내 7시 반이 되고 주인장이 나서서 모임의 성격과 공연의 취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모든 것을 진행하였다.
이야기는 그날 낮에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 초안을 컨닝하면서 적절히 이끌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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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시간은 포크송과 명상 그리고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괜히 어렵거나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가만히 자신과 몸과 마음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우선 몸의 힘부터 빼세요. 몸의 힘을 빼는 좋은 방법은 먼저 몸을 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가만히 마음을 모으면서 동작을 해보세요.
-어릴 때 하였던 팔꼬기 동작을 시연한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동작을 한 다음에 그냥 온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자신의 몸의 느낌을 바라보세요.
들어오고 나가는 자신의 호흡을 느끼면서 몸의 느낌을 바라보면 더욱 쉽습니다.
-목 풀기, 어깨 풀기, 고개 돌리기 등의 간단한 동작을 시연한다.-
자, 명상 쉽죠.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몸이 뻐근할 때 한번씩 해보세요.
자 이제 노래로 들어갑시다. 프로그램을 보시면 뒷장에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따라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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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곡으로 <오빠 생각>을 불렀다. 너무나 쉬운 곡임에도 중간에 코드 하나를 틀렸다.
역시 무대 앞에 서면 보통때보다는 조금 긴장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고 뻔뻔스럽게 계속 진행하였다.
기타 선생님왈, 틀리더라도 중간에 멈추지 마라. 음악은 흐름이다. 흐름이 끊어지면 안된다.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하였다.
다음 노래는 <섬집 아기>와 <얼굴>이었다. 주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노래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잘 따라불러주어서 속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굴>을 반주하면서 그냥 단순하게 쉬운 Dm, Gm, A7을 잡지 않고 하이코드로 다양한 음의 변화를 주려고 하였는데 집에서는 잘 되었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삑사리가 나는 바람에 다시 시작하면서 그냥 단순하게 반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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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우리나라에 크게 유행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리칭이 주연한 <스잔나>라는 영화입니다.
꿈도 많고 질투심도 많던 스잔나는 이복언니의 애인을 빼앗기도 하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치의 병 뇌종양에 걸려서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쓸쓸한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오동잎처럼 사라지지요.
저는 그때 초등학생이어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그 노래는 참 좋아했습니다.
도나츠판으로 앞면에는 정훈희 뒷면에는 리칭의 중국노래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특히 <청춘무곡>이라는 노래가 참 재미있었죠.
중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막 흉내를 내어 "타이야샤사 민짜이슈파샤이라이" 노래를 부르면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너, 중국말 참 잘한다고 칭찬받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부터 중국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아마 그게 저를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만든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자, 당시 유행하였던 <청춘무곡>과 <스잔나>를 부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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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곡>은 곡이 너무나 짧고 간단해서 1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나도 약간은 멋적었고 사람들도 약간 멋적은 표정이었다. 나는 이 노래가 한족의 노래가 아니라 중국의 서쪽 신강성의 위구르족의 민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노래인 <스잔나>를 불렀다. 이 노래는 최근에 연습한 곡이어서 준비한 악보를 보고 연주하였다. 전주나 간주를 준비하지 못해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청춘무곡>보다는 박수가 많이 나왔지만 아직은 신통치 않은 분위기이다. 나 또한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에 썩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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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홍콩과 한국에서 대유행하자 몇 년 뒤에 유사한 영화가 또 하나 나왔죠.
역시 한 젊고 꿈많은 아가씨가 불치의 병에 걸려서 죽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진추하라고 하는 새로운 스타가 주연을 맡았죠.
영화는 사실 좀 그렇고 그런 영화였지만 음악은 참 좋았던 것 같애요.
삽입곡인 <One Summer Night>는 당시 심야방송을 거의 휩쓸었죠.
팝송은 조금있다 부르고 여기서는 그 중의 중국 노래인 <우연>이라는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중국현대문학의 유명한 시인인 서지마라는 시인의 시입니다.
가사가 참 아름다워요. 가사를 먼저 풀이하죠. 첫사랑의 아련한 마음을 노래한 시랍니다.
영국시인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과 약간 유사한 풍인데 그것은 서지마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유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지마는 중국의 김소월이라 할 정도로 서정적인 시를 잘 지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또한 비행기 사고로 삼십대에 죽은 것도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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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지긋이 감고 중국시를 낭송하였다. 다른 분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듣고 있는데
낮달님은 역시 시인이신지라 눈을 지긋이 감고 감상하였다. (시의 내용은 바람새 홈페이지의 <음악한곡의 추억>에 올려놓았으니 참고하세요.)
이 노래는 전주를 연주하였는데 아뿔사 순간적으로 약간의 착각이 있어 삑사리가 났다. 너무 큰 삑사리가 나니 계속 진행할 수가 없어 다시 시작하였다. 비록 다시 시작하였지만 그런대로 잘 불렀던 노래였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큰 박수가 나왔고 사람들의 표정도 조금씩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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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노래도 중국노래입니다.
노래 자체는 아주 오래된 노래인데 90년대에 <첨밀밀>이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가 있지요.
등려군의 <저 달이 내맘을 말해주지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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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이라는 말이 나오니 몇몇 사람들은 아하~ 하면서 반긴다. 등려군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약간은 애잔하면서도 절실하게 불렀다. 중간에 한 번 정도의 코드 실수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무사히 부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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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를 중국 노래는 우리에게는 <꿈속의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인 <몽중인>입니다.
원래 이 노래는 1942년도 상해에서 방영된 영화의 삽입곡이었는데 일본에서도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0년대 이후에 유행하였죠. 아마도 일본을 통해서 수입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꿈속의 사랑>의 가사은 약간 퇴폐적이죠.
"싸랑해썬 안될 싸람을 싸랑하는 죄이라써... 어이 맺은 하루밤의 꿈..."
그러나 원 중국노래의 가사는 원래 몽환적이면서도 애틋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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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어로 낭송하고 번역하였다. 낮달님은 역시 눈을 지긋이 감고 감상하셨다. (이것 또한 바람새의 <음악게시판>에서 찾아보시면 됩니다.)
낮달님은 중국노래 가운데 이 노래를 제일 잘 불렀다고 하셨는데 내가 생각해도 이 노래를 제일 잘 불렀던 것같다. 이미 바람새 모임과 청개구리친구들 모임에서 불러보았기 때문에 훨씬 노련하게 불렀던 것같다.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왔다. 아~ 이 맛에 사람들이 가수를 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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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중국노래는 그만하고 팝송으로 넘어가볼까요.
어린 시절 저의 집에는 라디오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집안 공용이었죠.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에 아버지가 저에게 조그만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를 선물해주셨습니다.
밧데리가 라디오보다 커서 고무줄로 밧데리를 감았던 그 작은 라디오가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어느 날 조그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 <Sealed with a Kiss>라는 노래가 제 가슴에 팍 꼽혔습니다. Kiss는 알겠는데 Seal 이라는 단어를 몰라 사전을 찾아보니 봉하다 그런 뜻이더군요.
짧은 영어실력으로 풀이해보니 키스로 봉한 편지였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해 헌책방에 가서 팝송 책을 사고서는 그 노래 나오기를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별이 빛나는 밤을 찾아 많이 방황하였습니다. 그때 서울에서는 <꿈과 음악사이에>, <0시의 다이얼>,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등의 방송이 있었지만 부산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다 노래가 나오면 급히 노래책을 펴서 따라부르곤 하였죠. 얼마나 뿌듯하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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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또한 최근에 연습한 곡이어서 준비한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처음 카포를 잘 못잡는 바람에 음역이 너무 낮게 되고 그래서 멋드러지게 부르지 못하였다. 역시 백번 이상 불러본 곡을 가지고 나가야지 그냥 조금 부른 곡으로는 잘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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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매일매일 별이 빛나는 밤을 방황하다 보니 자연 팝송의 도사가 되었죠.
당시 도니 오스몬드라는 어린 가수가 부른 <A Time for Us> 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참 좋아하였죠.
그런데 한번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나오더군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더군요. 그래서 거기에 쏙 빠졌죠.
그러나 그 노래는 좀처럼 나오지도 않고 팝송책에도 가사가 나오지가 않더군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에 전축을 사서 LP를 조금씩 사곤 하였는데 스크린뮤직 LP 판 중에 올리비아핫세와 레너드화이팅이 전면에 나오는 판이 있어 샀죠. 그래서 맨날 듣곤 하였는데 제 짧은 영어실력으로는 도저히 청취가 안되더군요. 그래서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3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윈드버드, 우리말로 바람새라고 하는 홈페이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홈페이지는 70년대의 추억의 포크송을 들려주는 비영리 음악사이트인데
어느 겨울밤 아내랑 맥주 한잔 마시며 추억의 포크송을 찾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죠.
그때부터 열심히 다닌 사이트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와보세요. 참 좋습니다.
거기서 어찌어찌하다가 마침내 이 노래의 가사를 찾게 되었죠.
30년만에 다시 찾은 노래입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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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노래책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곡조를 불러가면서 코드를 채보한 것이다. 전주와 간주 없이 그냥 불렀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 노래의 흐름에 몰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충분하게 감정을 넣어 부를 수가 있었다. 낮달님도 팝송 중에서는 이 노래가 제일 좋았다고 하시던데 노래 부를 때 느낌이 오면 듣는 사람 역시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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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으로 마지막 곡은 방금 전에 이야기하였던 홍콩영화 <사랑의 스잔나>의 대표적인 힛트곡입니다.
진추하와 아비라고 하는 남녀듀엣이 부른 곡이죠. 당시 심야방송에 참 많이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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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도 코드에 자신이 없어서 악보를 미리 준비해갔던 노래 중의 하나이다. 역시 생각보다는 제대로 노래가 되지 않았다. <사랑의 스잔나>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선곡을 하다보니 나의 목소리와도 조금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연습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노래가 영 싱겁게 되고 말았다. 다음부터는 청중들의 취향도 중요하지만 나의 음색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고 철처하게 연습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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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중고등학교 때는 워낙 팝송에 심취해서 국내 가요는 별로 듣지 않았습니다.
당시 포크송의 쟁쟁한 가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러다 대학 들어와서 비로소 포크송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숙방에 야전전축이 있었는데 당시 금지판이었던 김민기님의 판을 구해서 자주 듣곤 하였지요.
그 판 있었으면 지금은 꽤 비쌀텐데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그냥 사라졌습니다.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등의 좋은 곡이 많이 있었지만 저는 특히 이 노래를 좋아하였습니다.
한대수님이 작곡한 곡이죠. <바람과 나>입니다.
이 노래를 특히 좋아하였던 것은 자유로운 삶, 바람처럼 얽매임 없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그때부터 명상을 추구하던 기질이 있었죠. 명상은 바람처럼 얽메임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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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또한 옛날에는 많이 불렀는데 최근에는 별로 부르지 않아 코드에 자신이 없어 악보를 준비하였던 노래이다. 이전까지는 주로 아르페지오로 반주하다가 처음으로 스트로크주법으로 연주하였다. 이 노래도 썩 잘불렀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노래이다. 중간에 한두 군데 박자가 약간 어긋난 부분도 있었다. 주로 클래식으로 치다보니 스트로크는 아직은 그다지 익숙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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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가에는 통기타가 유행이었죠.
그래서 저도 대학 들어와서 비로소 그렇게 가지고 싶던 기타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포크기타를 사지 않고 클래식기타를 샀습니다.
쇠소리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이가 있는 것 같아 선호하였죠.
물론 클래식은 전혀 모르고 포크기타 가운데서도 그냥 코드 잡고 뚱땅거리거나
간단한 아르페지오로 반주하면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하였죠.
그 중에 제일 쉬운 게 양희은 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죠.
당시 대학가에는 양희은님의 노래가 참 많이 불려졌는데 그 많은 노래 가운데
저의 마음을 끌었던 노래는 세노야를 작곡하였던 김광희님이 작곡하였던 <가난한 마음>입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치열한 경쟁과 화려한 쾌락이 난무하는 도시보다는 조용한 시골에서 순수한 삶을 추구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한 저의 성향과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가사가 참 명상적이잖아요. 나는 돌아가리라 쓸쓸한 바닷가로~ 다시는 오지 않을 영원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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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중간에 틀리거나 버벅거린 부분은 별로 없었지만 노래를 부를 때 깊게 집중이 되지 않아 감정을 제대로 싣지 못하였다. 그냥 중간 작 정도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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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님의 노래 가운데 또 좋아하였던 곡은 <내 님의 사랑은>이라는 곡이었습니다.
<따로또같이>라는 듀엣의 이주원님이 작곡하신 곳으로 알고 있는데
곡조도 아름답지만 노랫말이 참 고와서 좋아하였습니다.
당시 젊은 대학생으로서 어찌 사랑에 대한 갈망이 없었겠습니까?
사랑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잘 표현된 노래지요.
이 노래는 평소 자신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악보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중간에 버벅거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노래를 아시는 분들은 같이 따라 부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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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슬로우락 아프페지오로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두 소절 정도 엉뚱한 코드를 잡았다. 그러나 곧바로 제 코드를 잡아서 그런대로 무사히 넘어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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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명상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말 겨울방학이었습니다.
날짜까지 기억합니다. 1981년 1월 25일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제 고등학교 친구이자 대학 동창의 권유가 명상과 만나게 되었죠.
처음 이 친구가 저에게 요가와 명상을 권유한 것은 광주항쟁이 있었던 80년, 그해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요가라고 하면 뚱뚱하고 돈많은 아줌마들이 살빼기 위해서 하는 미용체조
내지는 깡마른 사람이 꼰 다리 또 꼬고 비틀어서 해괴한 동작을 취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였죠.
저는 사회학과를 다니는 친구가 너무나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요가에 심취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죠.
그래서 친구가 요가를 권할 때마다 많이 뭐라고 꾸짖었죠. 그러나 그 친구는 집요하게 전도하였죠.
이듬해 1월 25일 전두환의 쿠데타때문에 학사일정이 엉망이 되어
1월 하순경에 기말고사를 치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디 갈 데가 없어 친구를 따라 요가를 수련하는 곳으로 갔죠.
그러나 바로 그날 저는 완전히 요가와 명상에 미쳤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 담배는 물론이고 고기와 생선까지 끊고
오로지 깨달음을 향한 경건한 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시락은 주로 감자 삶은 것 몇 개와 오이 당근을 먹기도 하고
자취하면서도 밥하기가 귀찮아서 식빵 한쪼가리와 오이 당근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였죠.
술, 담배, 고기를 떠났으니 당연히 화류계도 떠났습니다.
히말라야의 깊은 동굴에서 평생을 구도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히말라야에서 구도하는 것은 나의 길이 아니고
속세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남인 제가 깊은 구도를 위해 속세를 떠나면 부모님에게 너무나 큰 불효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현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대학원도 진학하고 결혼도 하였습니다.
물론 결혼의 조건은 같이 명상하는 도반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미팅은 물론이고 소개팅에서도 제가 항상 물어본 것은 "혹시 명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였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는 명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명상 이야기만 나오면
여자들은 고개를 저으면서 떠나갔죠. 참 많이 차였습니다.
다행히 같은 동아리 내에서 마음에 드는 짝, 저기 캠코더 찍는 저 여인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서 지금은 아들 셋 놀고 복딱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박사학위도 받고 마침내 지금 있는 상명대학교에 부임한 것이 92년도 가을이었습니다.
대학교수가 되고나니 현실과의 조화를 위해 눌러왔던 깨달음에 대한 욕구가 치솟아 올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친듯이 구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는 존재의 근원을 깨치고 싶은 갈망이 너무나 강하였습니다.
존재의 근원, 생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면 산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듬해 93년도 여름방학때 마침내 사랑하는 아들과 토끼 같은 두 아들을 두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죽기를 각오하고 무기한 단식수행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떠나기 이틀 전에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불렀던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79년도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최현군이라는 학생이 부른 <백팔번뇌>라는 곡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약간은 비장한 마음으로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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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분위기는 나의 음색과도 맞고 노래 부를 때 감정의 몰입이 잘 되는 노래이다. 최근 출판사에 가서 몇몇 사람들을 놓고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적이 있는 노래이다. 이 날은 그런대로 잘 불렀지만 중간에 약간 느슨하게 처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이 날 부른 노래 가운데서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던 곡이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감동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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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경상북도 상주의 어느 오두막집에서 무기한 단식 끝에 49일째 아침에
마침내 제가 원하던 그 무엇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환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회복식을 시작하였죠. 물론 오랫동안 굶었기 때문에 미음부터 시작하였죠.
그러다가 회복식 사흘째에 명상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찾아왔습니다.
내면의 궁극적인 깨달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세상 속에서의 삶이고
이 현실 속에서 삶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이 더욱 깊은 깨달음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저는 현실속에 살고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저 히말라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진정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인류의 문명사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민단체를 기웃거리고 또 만들기도 하면서 역사, 문명,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여러분들이 보신 <대교약졸>은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제도의 개혁 없이 그저 마음만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명상을 공부하고 종교를 공부하고 또한 심리학과 심리치료를 공부하면서 제도의 개혁만으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둘이 서로 만야야 합니다.
그 둘의 만남을 추구하다보니 지금 <미래사회와 종교성연구원>이라는 단체의 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사회운동 속에 종교성이라고 하는 새로운 화두를 고민하고 이 둘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체입니다.
이곳 주인장도 바로 우리 연구원의 회원이십니다.
자, 통합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의 화두는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과 주변을 둘러보세요.
작게는 내 마음 속에서 감성과 이성이 나누어져있고, 현실과 이상이 괴리되어 있고,
크게 보면 영남과 호남이 나누어져있고 좌와 우가 나누어져있고 남과 북이 나누어져있습니다.
이제는 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오작교를 놓아야 합니다.
<바위섬>을 부른 가수 김원중님이 부른 <직녀에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북의 만남을 기원하는 노래로서 운동권에서 많이 불려졌죠.
그러나 저는 이 노래를 심리치료를 하면서 부른 적 적이 있습니다.
내 내면의 억압되었던 모습들을 인정하고 만나고 싶다는 바램을 노래한 것이죠.
여기서 직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욕구, 나 자신의 사회적 욕구 등으로 억눌러왔던
나의 순수하고 여리고 착한 그러나 때로는 지나친 억압 속에 뒤틀린 나의 모습이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이제는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성숙하고 싶은 바램을 담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 같은 심리치료 집단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였던 노래입니다.
먼저 내 내면속에서 순진한 아이와 억압하는 어른이 서로 만나고,
그리고 내면의 순수와 진실을 향한 이상과 외면의 이 냉혹한 현실이 서로 만나고,
좌와 우가 서로 만나고, 나아가 남과 북이 서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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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사실 처음부터 선곡하였던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의 과정을 이야기하다보니 이 노래가 어울리겠다싶어서 선곡 마지막 단계에 채택하였던 곡이다. 그러다보니 전주와 간주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였다. 노래는 그런대로 잘 불렀지만 너무 짧게 끝나서 완성도가 낮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때는 스스로 약간 시간에 쫓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계가 이미 9시가 15분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곡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공연을 마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직 두 곡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앗, 하고 악보대 위에 있던 프로그램콘티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콘티를 보지 않고 그냥 나 혼자서 이야기를 주절주절하였는데 다시 보니 글쎄 김민기님의 <아름다운 사람>과 사월과 오월님의 <님의 노래>가 빠진 것이었다. <님의 노래>는 원래 <백팔번뇌> 앞에 부를 곡이었는데 그만 빼먹었고 김민기님의 <아름다운 사람>은 마지막 합창곡으로 준비한 곡이었는데 그만 빼먹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시작할 때 알게 모르게 이 많은 곡을 어떻게 다 부를까 부담이 많이 되었던 것같다. 그래서 두 곡이나 빼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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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네요. 사월과 오월님의 <님의 노래>를 빼먹다니...
사월과오월의 백순진님께서 이번 공연의 축하글도 주셨는데 아시면 섭섭하시겠지요.
저기 첩자분들이 있어서 돌아가서 분명히 일러바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간도 없고 하니 마지막 곡만 부르도록 하지요. 가사는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자, 이 노래의 가사를 보세요. 참 아름답죠.
1절의 어두운 비 내릴 때 처마 밑의 한 아이는 바로 내 속의 억압된 아이입니다.
이제는 먼저 내 속에서 통합을 이루어야 하겠죠.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는 내 내면의 아이를 달래줄 때, 나 자신의 어두운 모습조차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줄 때 내 마음은 활짝 피어납니다.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물론 그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세찬 바람 속에서도 거친 들판을 힘차게 달려가는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홀로 우뚝 서야 합니다.
새하얀 눈 속에 우뚝 서있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죠.
김민기님이 작곡하고 현경과 영애님이 부른 노래
<아름다운 사람>을 다 같이 합창하면서 오늘 공연을 마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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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합창을 하였다. 이 노래는 평소 자주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코드잡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줄 알았는데 중간에 한 군데 코드를 놓쳤다. 그러나 얼른 다시 정상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기나긴 공연을 마친다는 생각에 약간 들떴나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 중 누가 원래 있던 곡은 다 불러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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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님의 노래> 이 노래를 빠트려서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였죠.
이 노래, 제가 참 좋아하는 곡입니다. 곡조도 아름답지만 가사도 참 멋있잖아요.
가사는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김소월님의 시입니다.
휴, 천만다행이네요. 나중에 백순진님에게 혼나지 않을 수있게 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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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노래도 연습을 미처 많이 하지 못해서 멋진 전주와 간주를 넣지 못하고 그냥 코드 잡고 아르페지오로 반주하였다. 한 시간 넘도록 세 손가락으로 연주를 하니 아무래도 손가락에 무리가 가서 그런지 나중에 Gm코드를 잡을 때는 근음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마지막 곡을 멋지게 반주해야 하는데 근음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서 참 아쉬웠다. 이절까지 무사히 다 부르고 나니 손가락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래도 우아한 백조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지막 인사말을 하였다.
---자, 아마추어의 어설픈 공연에 찾아와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연습이 부족하여 중간 중간 틀린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첫 공연의 목표는 완주였습니다. 일단 무사히 완주하게 되어 기쁩니다.
다음 기회에 또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그러나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앵콜곡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준비한 곡이 없어서 그냥 평소 좋아하는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를 아르페지오로 반주하며 박인희 버전으로 불렀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이 따라불렀다. 이제는 그만 일어서려고 하는데 주인장은 여전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박인환이 작사하고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나는 기타를 내려놓았다. 공연이 끝나자 소리미님이 오셔서 꽃다발을 주셨다. 낮에 청개구리친구인 이은미님의 꽃가게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 정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공연이 끝나자 공연 중간에 들어왔던 양천구의 서울시의원이 나와서 인사를 하겠다고 하였다. 꽤 풍채가 좋고 바지 정장을 입은 중년의 아줌마였다. 물론 나에 대한 인사보다는 다가올 선거를 대비해 지역구민의 모임에 인사차 참석한 것이리라. 답례로 노래를 한 곡 부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반주를 부탁하였다. 노래는 방금전에 불렀던 <떠날 때는 말없이>였다. 손가락이 조금은 피곤하였지만 마지막으로 봉사하였다.
기타를 완전히 기타집 속에 넣고 악보대도 접어서 넣고 난 뒤에 사람들과 같이 간단하게 와인파티를 하였다. 거기 오신 청중들이야 대부분 지역주민이었지만 나의 첫 개인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와 주신 소리미님과 푸른숲님은 멀리 상계동에서 오셨고 낮달님은 멀리 과천에서 와주셨다. 그리고 김민수님, 외기러니님은 직장 마치고 바로 달려와주셨다. 그 분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한턱 쏘기로 하고 바로 차를 몰고 나와서 사당사거리로 갔다.
사당사거리에 오니 시간은 벌써 10시 반이 넘었다. 아내는 차때문에 바로 집으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낮달님의 아지트인 <상투와 댕기> 민속주점으로 들어갔다. 그날 공연에 대한 축하의 인사와 냉정한 평가도 들었다. 무려 1시 넘어까지 신나게 이야기하고 놀면서 마지막에는 추억의 뽕작을 몇곡 불렀다. 뽕짝하면 또 박뽕짝아닌가. 비내리는 고모령, 사막의 한, 추억의 소야곡, 애수의 소야곡, 고전들을 몇곡 섭렵하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종업원들이 시간 다되었다고 한다. 아쉬움을 남기며 자리를 떴다.
너른돌의 공연후기 끝.
첫댓글 헠!! 너른돌님 정열에 고개숙여집니다.자세히 읽고 또 오겠습니다.
학무님 안녕하세요. 음악적으로 보면 어설픈 아마추어의 치기 어린 학예회 수준입니다. 어여삐 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타연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린 손가락이 온전하지 못한 가운데 열심히 기타연주와 노래를 해주신 너른돌님, 우린 편안하게 앉아 귀한 공연을 감상 했지만 그 시간의 즐거움을 선물하시기 위해 많은 수고의 뒷얘기를 들으니 더욱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상투와 댕기는 제 아지트
가 아니고 어느 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서너번 갔습니다. (바로 정정함^^) 리얼한 후기를 읽으니 낮달의 후기는 매우 엉성했다는...^^*
와~ 진짜 기네요...<그래서 삑사리가 나는 바람에 다시 시작하면서 그냥 단순하게 반주하였다.>요기까지 보고 눈이 아파 나중에 봐야겠어여...^^
@@@@ 우째 저렇게 완벽한 복사를~ 다 명상과 너른돌님의 휼륭한 인품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솔직히 5분전 말한 것도 잊어버립니다.. 상당부분...
낮달님, 무신 말쌈을~ 낮달님의 후기는 한편의 아름다운 시요, 산문이고요, 저의 후기는 레포트 수준입니다.^^ 김민수님, 제가 다 기억하는 게 아니구요 미리 준비해간 대본의 원본을 조금 활용하였죠.
대단하신 너른돌님...다음 발표회때는 저도 함께 할 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른돌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자리에 참석치 못했지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아이구 손바닥 아퍼라^^
배꽃님 감사합니다. 팬이 한 명 늘었네요.^^ 학무님, 학무님의 힘찬 박수에 계속 절을 하느라 저도 고개가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