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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구입한 판소리 음반입니다
국악 음반은 2~300장 정도면 대충 될듯한데
2~3000장 정도 사야 할만큼 많은 음반이 나왔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김연수 도창 <창극 춘향전>
* CD1
1.초입~춘향,몽룡의 출생 내력과 행실 4:14
2.기산영수~방자가 이도령에게 볼 만한 승지를 아뢰는데 2:56
3.방가자 나귀 안장을 짓는데 1:56
4.방자가 이도령에게 광한루의 경치를 아뢰는 데~적성가 5:10
5.이도령이 춘향의 노는 거동을 보고 방자에게 누구인지 묻는데~방자가 춘향에게 산세를 이르는데 4:28
6.이도령이 춘향에게 편지 보내는데~천자뒤풀이 6:22
7.이도령이 춘향과 백년언약을 하는데 5:54
8.이도령이 다녀간 것을 춘향모가 뒤늦게 알고 춘향을 꾸짖는데 4:43
9.긴 사랑가~'정' 자 노래 5:20
10.이도령이 춘향집에 이별하러가는데 3:14
11.향단이가 이도령을 반기는데~춘향이가 이별이란 말을 듣고 서러워하는데 7:59
12.춘향모가 춘향방의 소란이 사랑싸움 때문인 줄 알고 말리러 가는데~방자가 어서 한양으로 가자고 재촉하는데 9:10
총:61:23
* CD2
1.오리정 이별 10:03
2.신연맞이 6:02
3.기생점고 9:47
4.군로 사령나가는데~춘향이 수청을 거절하는데 7:38
5.십장가 9:29
6.옥중가 3:20
7.어사가 남언에 가다가 방자를 만나는 데~만복사 찾아가는데 9:21
총:55:36
* CD3
1.봉사가 춘향의 꿈을 해몽하는데 6:52
2.농부가 10:06
3.춘향모 후원에 단을 묻고 비는데~춘향모 걸인 사위보고 탄식하는데 10:02
4.옥중상봉 11:17
5.어사출도 5:04
6.춘향을 살리기 위해 과부들이 등장하는데 5:06
7.이화춘풍 13:46
총:62:11
* 소리:김연수 박록주 박초월 김소희 김여란 장영찬 박봉선 김경희 남해성 김득수 김동준
* 고수:한일섭,김득수
* 음반해설:노재명
* 녹음:서울장충동녹음실 * 마스터링:김도연
(음반해설서 중)
이 음반은 판소리를 공부하는 학도나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창극사를 이해하고 대명창들의 소리제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 구실을 할 것이며, 귀명창들에게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1세대들의 기량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감상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음반은 광복 이후의 창극 음반가운데 가장 명반으로 꼽히는 기념비적인 음반이라 여겨 여러 음악 애호가들에게 필청을 권하는 바이다.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5집 <김연수 춘향가>
1.천자뒤풀이 6:29
2.이도령이 춘향집 찾아가는 데 4:05
3.춘향 방안치레 4:08
4.이도령과 춘향이 문답하는 데 2:55
5.이도령과 춘향이 백년언약 하는 데 4:44
6.춘향모 뒤날에야 알고 야단나는 데 2:50
7.춘향모 춘향을 꾸짖으며 설움이 받쳐 우는데 3:45
8.춘향모가 음식을 차리는데 2:57
9.춘향모가 하소연하는데~이도령이 증서 써주는 데 4:09
총:36:02
* 소리:김연수 * 고수:이정업
* 음반해설,사설채록:노재명 * 디자인:지구레코드 디자인실
* 디지탈 마스터링:김도연
이 음반이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는 까닭은 김연수가 장기로 하는 대목들이 상당수 담겨 있다는 점 외에도 김연수가 전성기에 녹음했다는 점과 김연수의 성음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는 점 때문이다.병으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녹음된 김연수의 성음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음반은 신선함을 안겨줄 것이다.다만 이정업의 북반주 소리가 작게 녹음된것은 아쉽다.옛 명창들은 대부분 한문에 약해서 사설의 뜻을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 사설이 와전되어 전승되기도 했다.어려서 한문을 공부했던 김연수는 그런점을 문제점으로 생각하고 명창으로서는 드물게 창본을 직접 정리하여 남겼다.김연수는 옛 명창들의 소리제를 손질해서 자신의 개성에 걸맞는 동초제를 완성해냈다.김연수는 자유분방했던 옛 판소리를 근대 청중의 취향에 맞게 정형화 시켜 놓았다.김연수가 창본을 정리한것은 큰 업적이며,김연수의 창본은 이선유의 창본과 함께 귀중한 창본으로 평가받고 있다.이러한 큰 업적은 김연수가 철두 철미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즉,김연수는 확실한 것을 추구 했다.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6집 <김연수 흥보가>
1.제비노정기 5:58
2.흥보가 박씨를 심는 데 2:01
3.가난타령 6:43
4.박타령 6:58
5.박통 속에서 동자가 나오는 데 3:30
6.박속에서 쌀과 돈이 나오는 데 2:21
7.흥보가 밥을 먹는 데~돈타령 8:48
총: 36:19
* 소리:김연수 * 고수:이정업
* 음반해설,사설채록:노재명 * 디자인:지구레코드 디자인실
* 디지탈 마스터링:김도연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4집 판소리명창 박록주 <흥보가>
- 박록주 명창 서거 15주기 추모음반 -
* CD 1
1.처음부터 놀보 심술타령까지 2:42
2.흥보 쫓겨나는데 5:38
3.흥보마누라 탄식 2:40
4.흥보가 환자섬을 얻으러 호방을 찾아갔다가 닷 냥을 받아 귀가 6:35
5.흥보 매품 팔러 갔다가 귀가 9:09
6.흥보가 놀보에게 곡식을 얻으러 갔다가 귀가 13:39
7.도승이 흥보에게 집터를 잡아주는데 6:20
8.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는데 5:29
총:52:12
* CD 2
1.제비노정기 6:23
2.가난타령부터 돈타령까지 8:53
3.비단타령 8:19
4.흥보집 짓는데 4:54
5.놀보가 흥보집을 찾아가는데 6:22
6.화초장타령 3:33
7.제비 후리러 나가는데 2:21
8.놀보의 첫번째 박에서 남사당패가 나오는데 8:11
9.놀보의 두번째 박에서 샌님이 나오는데 2:08
10.놀보의 세번째 박에서 장수가 나오는데 부터 끝까지 3:24
총:54:28
* 소리:박록주 * 고수:정권진 * 도와주신분:이보형
* 음반해설:노재명 * 협찬:한국고음반연구회
* 디자인:지구레코드 디자인실 * 디지털 마스터링:김도연
* 제작:지구레코드
* 다시 듣게 된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
요즘 가장 활발히 전승되고 공연되는 흥보가는 박록주제,김연수제,박봉술제,강도근제,박동진제이다. 이 가운데 박동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송만갑의 흥보가를 직,간접적으로 이어답은 소리제다.그러니 여러 유파의 흥보가 중에서 송만갑의 동편제 흥보가가 예술적으로나,대중적으로나 가장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고 오늘날 까지 살아남은 소리가 되었다.상대적으로 다른 유파의 동편제 흥보가는 접하기가 어렵다. 흥보가는 송만갑이 즐겨 불렀던 장기로서 그의 흥보가는 박봉래를 거쳐 박봉술에게 김정문을 거쳐 박록주와 강도근에게 이어졌다.
송만갑제 소리중에서 흥보가는 박록주에 의해서 가장 잘 전승되어 오늘날 많은 후학들이 박록주제 흥보가를 부르고 있으며 음반도 많이 남아있다. 박록주도 물론 흥보가 음반을 남겼다. 그리고 박록주에게 흥보가를 배운 김소희,박귀희,성창순,한농선,박송희등도 박록주제 흥보가 음반을 냈다. 음반으로 제작된 박록주의 흥보가 완창 녹음은 2종이 있는데,1967년에 녹음된 지구 레코드 소장 녹음과 1973년에 녹음된 문화재보호협회소장 녹음(고수:김동준)이 바로 그것이다. 음반화 되지 않은 박록주의 흥보가 완창 녹음으로는 기독교방송국 소장 녹음(고수:정철호,녹음시기 미상)과 1976년에 문예진흥원의 판소리 조사 사업으로 녹음된 것(고수 미상)이 있다. 이 중에서 문화재 보호협회 소장 녹음은 여러번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되어 박록 주의 녹음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문화재보호협회에 보관되어 있는 박록주 흥보가 녹음은 박록주가 공간사랑 근처에 살 때 유기룡의 주선으로 녹음된 것인데 춘향가,숙영낭자전,남도민요도함께 녹음하여 보관되어 있다. 문화재 보호협회 소장녹음은 1970년대 중반에 비매품으로 제작된 ‘박록주 흥보가’음반,1976년에 문화재 보호협회가 기획하고 지구레코드에서 제작한 [한국전통음악 대전집 41,42]과 1988년에 중앙일보사가 기획하고 서울음반이 제작한 [국악의 향연 30,31],1989년 4월 25일에 아세아 레코드에서 제작한 명창 박록주 흥보전 1~3집에 담겨있다.지구코드 소장 녹음은 1967년에 장시간 음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초판이 소량제작 되었다가 절판되어 한국 전통음악 음반 가운데 가장 희귀한 음반 가운데 하나로 꼽혀 한국전통음악 음반 수집가들에게 수집의 표적이 되어왔다.그러다가 이번에 재발매 되었다.지구레코드 소장 녹음에는 박록주가 잘 부르지 않았던 <놀보 박타령>대목도 담겨 있어 주목된다.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은 문화재보호협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박록주 흥보가 녹음 보다 약10분 가량이 더 긴 106분 40초 짜리 녹음을 담고 있는 음반으로서 인간 문화재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된다.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을 들어보면 한가지 특이 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문화재보호협회에 보관되어 있는 박록주 흥보가 녹음에는 박록주 말년의 전용 고수였던 김동준이 북을 잡고 있는데,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에서는 북반주를 판소리명창인 정권진이 맡았다는 점이다.그리고 정권진은 흥보가를 별로 부르는 일이 없었는데,박록주의 흥보가를 반주한 점도 특이하다고 하겠다. 지구레코드에서 박록주의 흥보가를 녹음할 당시는 김동준이 박록주의 전용 고수로 활동하기 이전이고 김명환은 김동준보다 뒤늦게 서울에서 활동했으며 음반 취입이라면 고수는 으레 이정업으로 통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깨고 지구레코드에서 대명창인 박록주의 흥보가 음반을 3장짜리 장시간음반으로 과감하게 기획하면서도 전문고수를 쓰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주변상황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1960년대 초반,보성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정권진이 소리꾼으로 활동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 무작정 낯설은 서울로 간 정권진은 기댈곳이 없었다. 박록주를 찾아갔다.그 이전에 박록주를 우연히 만나 애기를 나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진이 경찰로 근무하고 있을때, 박록주가 공연 때문에 보성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음식점에서 경찰복을 입은 정권진이 경찰들 앞에서 소리하는 것을 들었다. 박록주는 그 소리가 대명창인 정응민의 소리제(보성소리)임을 알아들었고 정권진의 소리를 귀하게 여겨서, 경찰보다는 서울에서 판소리 명창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그러다가 정권진이 마침내 경찰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간 것이었다. 낯선 서울에서 정권진은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어서 처음에는 비원 앞에 있던 정악원에서 생활하였다. 지금이야 보성소리가 가장 유명한 유파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 서울에서는 보성소리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낯설은 정권진의 보성소리는 팔리지 않아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정권진의 소리 기량을 높게 인정한 사람이 다름아닌 박록주였다. 그래서 정권진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박록주가 박헌봉에게 부탁하여 정권진을 국악예술학교에서 강사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박록주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이보형은 현재 종로구 운현동에 들어서 있는 중앙일보 문화센터 자리에 박록주의 집이 있었는데, 정권진이 종로구 운현동에 있던 박록주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며 아마도 박록주가 종로구 운현도에 살 때 정권진과 함께 지구레코드에서 흥보가를 녹음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정권진이 지금은 명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지구레코드 녹음 당시 박록주와 정권진의 교류상황을 감안하면 박록주의 음박에서 정권진이 고수로 참여한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에서 고수를 맡은 정권진은 본래 고수가 아닌 판소리 명창이므로 북반주가 어설픈 면이 있다. 박록주는 북반주의 박자가 삐끗해도 짜증스러운 내색없이 뛰어난 기량으로 고수의 허물을 자연스럽게 덮어준다. 오히려 어설픈 정권진의 북가락을 박록주가 재미있게 여기며 소리하는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대가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라 하겠다.
명인기획 명인명창(1) <성우향 춘향가>
1.초입~기산영수 3:16
2.방자가 이도령의 분부듣고 나귀 안장을 짓는 데 2:13
3.이도령이 광한루에서 구경하는 데 (적성가~춘향이 등장하는 데) 9:19
4.이도령이 춘향의 노는 거동을 보고 방자에게 누구인지 묻는 데~방자가 이도령에게 춘향에 대해 아뢰는데 4:46
5.방자가 춘향을 부르러 가는 데 2:56
6.방자가 춘향에게 그른 내력과 산세를 이르는 데 3:53
7.방자가 이도령에게 춘향집 경치를 아뢰는 데 5:38
8.이도령이 천자뒤풀이를 하는 데 7:44
9.퇴령 후 이도령이 춘향집으로 가는 데 5:01
10.이도령이 춘향방의 서화를 감상하는 데 3:50
11.이도령이 춘향과 백년 언약을 하는 데 3:33
12.긴 사랑가 6:43
13.자진 사랑가~춘향이 이도령을 업고 노는 데 5:26
14.이도령이 '궁'자 노래를 하는 데 1:16
총:65:02
* 소리:성우향 * 고수:김명환
* 기획:명인기획 * 음반해설:이보형,노재명
* 협조:이자균 * 디자인:지구레코드
* 마스터편집:한기욱 * 디지탈마스터링:김도연
* 녹음:1974.11.12 명동예술극장 실황
성우향 명창의 첫 독집 음반이 이렇게 뒤늦게 나마 나온 것은 보성소리를 갈구하는 판소리 애호가들에게는 물론이고 보성소리를 연구하는 학자나 판소리 학도들에게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더구나 이 음반은 성우향 명창이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몇차례 판소리 발표회를 가진 일이 있었는데 1974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였던 '춘향가발표회'의 실황녹음을 담은 것이니 기념비적인 음반이라 할 것이다.성우향 명창은 전남 화순에서 나서 6.7세때 안기선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30세가 되도록 정응민,박록주,정광수,강도근,한애순,박초월과 같은 명창의 문하를 거치지만 그가 부르는 판소리는 어디까지나 20세 무렵에 정응민 문하에서 배웠던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가 본령이고 이 가운데 춘향가는 그가 이로서 중요무형 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된 만큼 그의 소리의 결정체라 할 것이다.
명인기획 명인명창(2) <김여란 춘향가>
* 단가
1.강상풍월 5:05
* 춘향가
2.이별가(1)이별차로 나가는데 11:02
3.이별가(2)보내여도 각을 짓고 2:26
4.옥중가 7:20
5.어사와 장모 9:38
7.사또생일 잔치 8:00
8.어사출도 후 춘향이 옥에서 나오는 데 3:45
총:58:21
* 소리:김여란 * 음반해설:노재명
* 기획:명인기획 * 마스터편집,마스터링:김도연
* 디자인:지구레코드
* 고수:김명환,이정업
이번에 제작된 이 음반은 오랫동안 김여란의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사례를 해가며 애써서 녹음한 분이 있어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인데,이름을 극구 밝히지 말아 달라며 귀중한 녹음 자료들을 명인기획에 선뜻 제공하였다.이 음반에 담긴 연주자의 유족들또한 출반을 흔쾌히 승락하고 적극 도와 주었다.그리고 이 음반의 카세트 테입에는 특별히 지구 레코드의 양해를 얻어 지구레코드가 소장하고 있는 김여란의 단가<적벽부>녹음을 수록하여 깨끗한 음질로 김여란의 대표적인 소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김여란의 장기는 그의 스승 정정렬이 그러했듯 단가와 춘향가다.그리고 김여란은 정정렬의 소리를 이은 만큼 아니리가 깔끔하고 붙임새가 탁월하다.그러나 발림을 많이 구사했던 정정렬과는 상반되게 김여란은 발림을 많이 하지 않았다.다양한 붙임새 위에 사설을 아기자기 하게 얹어 나가는 그의 소리는 신중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박을 놓치기 쉽다.그리고 소박함과 매서운 서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듣는 이의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김여란은 판소리명창으로서는 드물게 가곡,가사,시조를 잘했다.어려서 가곡,가사,시조를 배워둔 덕택에 판소리를 부를때와 같은 시창 성음이 나오는 대목을 능숙하게 하였다.다른명창이 지니지 못했던 김여란만의 특기였던 것이다.김여란은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으며,은혜를 입으면 꼭갚을 줄 아는 사람이였다고 많은 이들이 앞다퉈 증언하고 있다. 그는 만년에 노량진의 셋방에서 경제고와 중풍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명창 <심청가> Vol. 1
* CD 1 :
1. 심청가 해설 06:02
2. 초입~심봉사와 곽씨부인 태몽꾸는데 07:07
3. 심청의 탄생과 곽씨부인의 죽음 14:30
4. 심봉사 곽씨부인의 죽음을 알고 실성하는데~곽씨부인 상여나가는데 13:12
5. 심봉사 함께 죽기로 작정하는데(주과포혜) 4:37
6. 심봉사 집으로 돌아오는데~심봉사 젖동냥 다니는데 11:20
* 총 56:50
* CD 2 :
1. 심청이 밥 빌러가는데~심청 장성후 상승상댁 건너가는데 13:29
2. 심봉사 딸 기다리다 물에 빠지는데~중이 물에 빠진 심봉사를 구하는데 10:15
3. 심봉사 공양미 삼백석 권선하는데~심청 아버지를 위로하는데 11:38
4. 심청 공양미 삼백석에 물을 팔고 행선을 준비하는데 22:38
* 총 58:00
* 창 : 김소희 조상현 장영찬 안향년 성우향 성창순 박옥진 김경희 북 : 김동준(추정)
* 기획 : 사운드스페이스
* 현대음향이 보유한 음원을 사운드스페이스가 인수하여 이엔이미디어에서 출반한 음반으로 CD로는 처음으로 선보임. 이전에 현대음향에서 LP와 카셋트로 출반한 적이 있음. Vol. 2와 함께 출반되었음. 자세한 해설서를 달아 2장을 한 장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음. 사운드스페이스 www.soundspace.co.kr 을 방문해 보세요.
* 아래의 내용은 사운드스페이스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 1970년대 판소리계 주역! 당대 최고의 名人·名唱들의 구수한 입담과 소리가 잔잔한 感應을 전한다.
▣ 김소희, 장영찬, 안향년 명창의 생생한 소리를 감상 할 수 있는 귀중한 음반
▣ 30대 중반의 조상현 명창의 소리와 40대 초반의 성우향, 성창순 명창의 소리를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음반
이 음반은 1970년대 초에 녹음되어 현대음반에 의해 5장의 LP음반과 4장의 카세트 테이프로 출반 된 적은 있으나, CD음반으로 출반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여 년 만에 CD음반으로 빛을 보게되어 더욱 기대 되는 창극음반이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은 一人多役으로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해내지만 '심청가'는 창극 형식으로 녹음된 음반이다.
이 음반의 처음은 대금 반주 하에 조상현 명창이 해설하고 있으며, 안향년 명창의 최고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고, 성우향 명창의 소리는 대차게 성창순 명창의 소리는 아기자기하게 들린다.
김소희 명창은 후배들에게 양보한 듯하여, 많은 소리를 하지 않은 것 같으며, 조상현 명창의 소리는 우렁차게 들린다. 장영찬 명창은 전성기 소리에 비해 쇠퇴한 느낌이 있는데, 이는 당뇨의 증세가 나타난 시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소희, 장영찬, 안향년 명창의 생생한 소리를 감상 할 수 있는 귀중한 음반이고, 30대 중반의 조상현 명창의 소리와 40대 초반의 성우향, 성창순 명창의 소리를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음반이다.
이 음반을 듣자면 걸죽한 재담에 빠져들게 된다. 신이 나다가도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의 판국으로 몰아가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신바람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 진하게 배어들어 마음 깊은 바닥에 이르러서야 청중들을 놓아주는 판소리의 진정한 멋을 느끼게 한다.
▶ 연주자
김소희(1917 - 1995 : 전북 고창 출생)
유랑 가극단의 가설포장 안에서 들리는, 이화중선 명창의 심청가 중 "추월(秋月)은 만정(滿庭)허여......"로 시작하는 느린 진양조에 간장을 녹이는 진계면조의 구슬픈 소리를 듣고, 소리의 길로 들어선 김소희 명창. 1930년에 송만갑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김소희 명창은 국창이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한 판소리의 대가였다. 뛰어난 무대 매너와 맑은 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며,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을 비롯해, 민속예술원 설립원장, 국립창극단 부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정열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을 다니면서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었다. 김소희 명창은 판소리 뿐 만 아니라 다방면의 예술에 뛰어나, 그의 서예 실력은 국전에 입상할 정도로 명필이었다.
1934년 콜롬비아 레코드에 춘향가를 취입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타계하기 전까지 많은 레코드 취입을 하였으며, 또한 그의 문하에서 많은 명창들을 길러냈는데 그 중에서도 안향연, 김동애, 안숙선 등이 손꼽힌다.
조상현(1939 - : 전남 목표 출생)
12살 때부터 정응민에게 소리를 배웠고, 후에 서울로 상경하여 박녹주에게 소리를 배우며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완벽하게 조화된 연기력과 타고난 성량을 발휘하여 무대 주연을 도맡아 왔다. 조상현 명창은 창극무대는 물론 라디오방송, TV출연으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서편제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제의 소리를 정재근 - 정응민으로 이어받은 소리꾼으로 강산제(보성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다. 82년 제2회 국악 대상을 수상했으며, 91년에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남도립 남도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후학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장영찬1930 -1981 : 전북 순창 출생)
명창 장판개의 차남으로 13세에 조상선 명창으로부터 단가를 배우고, 60년대 중반까지 박록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임방울 명창으로부터 적벽가와 수궁가를 이수하였다. 또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심청가 전 바탕을 이수하였다. 빼어난 목 구성과 정교한 부침새로 판소리계의 큰 재목으로 꼽히다가 지병인 당뇨로 52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안향년(1945 - 1981 : 전남 광산 출생)
부친인 소리선생 안기선, 정응민,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70년대 초반에는 소리판을 휩쓸었고, 창극 무대의 춘향, 심청, 황진이와 같은 주역은 거의 모두 안향년 명창이 독차지하였다. 안 명창의 소리는 정말 미려하였다. 소리가 기름지면서도 반듯반듯하게 가락을 이어가는 품새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상성과 하성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소리가 겁날 정도로 서슬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안향년 명창은 1981년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요절한 천재명창이라는 수식어가 그녀 앞에 붙어 있다.
성우향(1933(호적:1935) - : 전남 화순 출생)
10살 때 안향년 명창의 부친인 안기선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제외한 네바탕을 배웠다. 1977년에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 대통령상상 수상(당시 2위 성창순, 3위 안향년), 1988년에 KBS국악대상을 수상하였다. 성우향 명창은 보성소리의 모범을 가지고 있으며, 보성소리를 가르키는 명창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자를 두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후보로 지정되어 있다.
성창순(1934 - : 전남 광주 출생)
16세에 김연수 창극단에 입단하여 연극활동을 하였으며, 공기남 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정응민 선생으로부터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를 배웠으며, 박록주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78년에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1991년에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박옥진(1934 - : 전남 진도 출생)
12세 무렵에 아성창극단에 입단하여 국악활동을 시작하였다. 14-5세때 김연수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전황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웠다. 젊을 때에는 뛰어난 미모와 미성으로 여성 국극단에서 공주 등의 역할로 장안에서 인기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해금 연주자 김성아의 모친으로 70년대 후반에 국악계를 떠났다.
김경희(1920 - 1989(?) : 전북 고창 출생)
김소희 명창의 동생으로, 김여란, 정권진,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동생 김정희와 함께 창극, 국극 활동을 많이 하였다.
북 : 김동준(1925 - 1990 : 전남 화순 출생)
1938년에 박동실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박봉술과 김연수 선생으로부터도 판소리를 배웠다. 1970년 무렵에 아예 판소리를 그만두고 고수로 나섰으며, 결국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북 반주로 1980년대에는 완창 판소리 공연에서 각광을 받았다.(* 북 가락으로 판단하여 김동준 고수로 추정함)
명창 <심청가> Vol. 2
* CD 1 :
1. 장승상댁 부인이 만류하는데~심청 선인들 따라가는데 11:48
2. 심청 임당수에 빠지는데 19:06
3. 심청과 어머니의 만남~심청의 환생 11:15
4. 화초타령~심청황후가 되어 맹인잔치를 열기로함 16:26 * 총 58:43
* CD 2 :
1. 심봉사 뺑덕이네와 황성길 떠나는데~뺑덕이네 도망가네 20:43
2 방아타령~심봉사 안씨맹인 만나는데 9:04
3. 부녀상봉과 심봉사 눈뜨는데 15:26 * 총 45:21
* 창 : 김소희 조상현 장영찬 안향년 성우향 성창순 박옥진 김경희 북 : 김동준(추정)
<조상현 판소리 창극 춘향가 1,2,3,4>
*cd1
1.초입 4:51
2.적성가 7:47
3.이도령,춘향 그네타는 모습 보는데 7:55
4.방자,이도령에게 춘향말 전하는데 9:33
5.춘향집 건너가는데 4:38
6.춘향모 나오는데 6:07
7.춘향 출생내력 이르는데 4:18
8.사랑가 12:13
총:58:02
*cd2
1.이별차 가는데 8:00
2.이별고하는데 8:29
3.춘향모 자탄하는데 7:16
4.훗날 기약하는데 6:59
5.춘향,이도령 이별하는데 12:46
6.춘향이 상사의 정 5:14
7.신연맞이 5:59
8.기생점고 하는데 2:57
총:57:53
*cd3
1.행수기생 나가는데 4:17
2.군로사령 나가는데 8:15
3.춘향,사령따러 나가는데 2:58
4.사또,춘향에게 수작하는데 4:32
5.십장가1 9:42
6.십장가2 9:52
7.춘향,옥에 갇혀 탄식하는데 3:27
8.이도령,과거급제하는데 8:40
9.농부가 7:10
총:59:00
*cd4
1.박석치 올라선데 15:23
2.어사,춘향집 들어서는데 6:21
3.옥으로 춘향 찾아가는데 8:21
4.어사,춘향 옥중상봉1 3:13
5.어사,춘향 옥중상봉2 4:00
6.사또 생일 잔치 하는데 13:54
7.춘향,어사앞에 나오는데~끝까지 14:59
총:66:06
* 도창:정권진 * 이도령:조상현
* 춘향:김동애 * 춘향모:신형희
* 방자:은희진 * 향단:안숙선
* 변학도:강종철 * 대금:서용석
* 아쟁:박종선 * 북:김명환
* 사설정리:정연숙
* 진행:박승원
(음반해설서 중)
판소리는 남도 무속음악에 근원을 둔 극음악 형식의 종합예술로서 최고의 명인적 예술성을 요구하는 음악이다.우리나라 전통음악 중 가장 인기 있는 장르중의 하나이며 서양음악의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문학적인 요소와 연주적인 요소,음악적인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구성이 되고 있는 음악이다.판소리의 형성시기는 조선시대 숙종말기에서 영조 초기에 해당하는 18C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지금까지 발견된 판소리 문헌중 가장 오래된것이 1754년 영조30년 유진한이 한시로 쓴 만화본이고,춘향가의 시작은'숙종대왕 즉위초에 시하년풍하고'로 시작되고 있고 이러한 사설이 초기 음악의 생성 과정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명인기획 명인명창 (3) 부부국악인 <지영희.성금연>
* 지영희
1.해금산조(1) 9:54
2.해금산조(2) 3:15
3.태평소 독주-염불 2:20
4.태평소 독주-굿거리 1:41
5.태평소 독주-능게 2:07
6.태평소 독주-네나리 2:27
* 성금연
7.가야금산조 10:58
8.가야금병창 새타령 8:08
9.가야금 독주-흥(성금연 작곡) 5:02
10.가야금 독주-무용곡 휘모리,자진허튼타령(성금연 작곡) 4:46
총:50:5
* 해금,태평소:지영희 * 가야금병창:성금연
* 해설:노재명,이진원 * 기획:명인기획
* 도와주신분:지성자,이성희 * 편집:김도연
지영희는 1909년 8월14일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내기리에서 경기 세습무 지용득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조항련에게 호적을,정태신에게 양금을,지용구에게 해금을,양경원에게 피리를,김계선에게 대금풍류를 ,방용현에게 대금산조와 풍류를,최군선에게 농악을,오덕환엑0P 무용장고를,박춘재에게 경기소리와 서도소리를,신쾌동에게 거문고 산조를,김상기에게 거문고 풍류를 배웠다.지영희는 1945년에 국악원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53년에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대한국악원의 이사로 취임했다.그리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에 미국,프랑스를 비롯한 세계각국에서 공연을 했고 1973년에는 중요무형 문화재 제52호 시나위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성금연은 1923년 4월 10일 전남광주에서 부친 성기봉과 모친 이복덕 사이 3남 8녀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다.성금연은 최막동에게 가야금풍류와 산조를,조명수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안기옥에게 가야금산조를,정정렬등 여러 명창에게 판소리를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를 배웠고 아쟁,해금,단소는 자득했다.성금연은 1945년에 해금,피리,태평소의 명인 지영희와 혼인하였다.그후 두 명인은 서로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민속악의 발전을 위해 함께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