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 장애인부 교사를 하던 시절, 젊고 패기넘치는 담당 전도사님께서, 교사들과 함께 시청하고 싶다며 dvd 한편을 케이스에서 꺼내었다. 한국방송 pd인 김우현씨가 연출한, ‘팔복’이라는 기독 다큐멘터리. 아마 감동적으로 감상하신 이도 많았을게다. 스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김우현pd가 지하철에서 우연스럽게 몇 차례에 걸쳐 기행을 일삼는 노인을 만나며 그에게 묘한 호기심이 생긴다. 지하철의 노인, 최춘선 어르신은 한겨울에도 맨발로 서울 곳곳을 유랑하며 다니는 이였다. 그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대며 예수 그리스도를 포교한다. 흡사 거지꼴에 광인같은 노인.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그를 조사하여 보니, 최노인은 지난 시절 김구선생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했던 선각자였고, 경기서부에 광활한 땅을 보유한 대단한 거부였으며,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 등 기독지성인들과 두루 교류하였던 당대의 엘리뜨였던 것. 놀라운 스토리를 숨긴 인물. 이 기막한 지난 날의 선각자는 조국이 통일될 그 날까지 맨발의 포교를 계속하겠노라 말한다. 그의 굳은 맨발의 걸음을 멀찌감치서 담으며, 영화는 작곡가 고형원의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를 마지막으로 페이드 아웃된다.
그날 아주머니 권사님부터, 대학생 청년교사들까지 눈물을 훌쩍훌쩍하며 은혜 속에 영화를 시청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영화상영이 끝나고 감상평을 나누는 시간에, 지금은 예술인 목회를 하고 있으신, 당시 한 청년 교사께서 대뜸 날선 한마디를 던졌다.
“아주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일순간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싸늘해졌다. 나도 놀랐다. 그런데 이 청년 교사가 차분히 지적하는 다음의 첨언을 곰곰히 듣자하니, 꽤 수긍되는 지점이 있었다. 이 지면에 그 발언의 요를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춘선 노인은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한겨울에 신발을 굳이 벗고 다니며, 건강을 해치는 행위는 무익하며 무관한 일이다. 관심도 없는 승객들에게 기독신앙과 큰 연관이 없는 유관순, 안중근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례하며 성경과도 상관이 없다.
둘째, 치료가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약자의 안타까운 병적 행동을, 감독은 영화적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방관했거나, 그 의미를 억지로 감동스럽게 꾸미고 가공하는 연출을 감행하였다.
셋째, 감독이 만일 진정으로 최노인에 관한 올바른 기독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최노인이 정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려 하였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가치있는 측면과, 가족의 곤란함과 승객들의 괴로움 같은 부작용을 담담하게 다루는 방식이 더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대개 다큐멘터리물은 극영화보다 연출의 비중이 훨씬 낮은, 사실적 예술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니다. ‘사실적’이라는 것, ‘사실감’이 넘친다는 것은 도리어 연출의 흔적과 작가적 의도를 그럴듯하게 숨겨두기 딱 좋은 특징이기도 하다. 얄싸한 조명의 위치, 카메라 동선 하나에도 작가의 의도나 영화적 의지는 담겨있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극작가에게 속기가 참 쉬운게 다큐멘터리라는 거다. 영화의 연출자는 절대 티는 안내지만, 사실적인 화면과 이야기의 편집 속에서, 의도한 어떤 류의 관점을 특정하고 관객에게 강요하기 쉽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황혼녁 노인의 인생사. 고인의 설명하기 힘든 마지막 인생길. 그것은 과연 감독의 묘사처럼 맨발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요 찬란한 과거사를 숨기고 살아온 한 은자의 애국과 신앙의 길이었을까. 혹 안타까운 병적 사연을 가진, 가정과 지역사회의 보살핌과 치료가 필요했던 노약자였을까. 우리 장애인부 교사들의 대척에 선 의견들처럼, 한 개인의 역사나 국가사 모두, 어떤 식의 편집의 눈을 거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으로 귀결된다. 맞다. 우리의 온갖 관념이나 시선은 모두 ‘편집’의 산물이다.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편집’의 철학적 막대함을 신조어로 소개한 이는 명지대학교 김정운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 사관들의 관념과 기호에 따라 폭넓게 해석되게 마련이다. 더 노골적인 단어로 말하자면, ‘입맛’과 ‘구미’에 따라 우리들은 ’기억’ 따위, 기꺼이 재구성할 준비가 된 존재들이다. 서른 몇 살 먹은 내 개인사를 뒤돌아봐도 그렇다. 내 어떤 기억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보면, 세상에 그리 역겨운 인생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또 한편으로 되짚자면, 어? 그래도 제법 그럴 듯하고 괜찮았었네 싶다. 기억이란 분절된 편집의 산물일 뿐이니까. 심지어 우리네 기억은 은근히 가짜도 많다. 학술용어로 false memory라던가.
싸나이 콘스탄티누스의 인생은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로마의 잡신 숭배에 도전한, 기독 신앙의 프론티어일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자신의 제국을 걸맞는 새로운 이념을 찾아 쇼핑하던 중, 영악하게 기독교를 픽업해 낸, 닳고 닳은 야심가일 수도 있다. 뭐가 맞을까나.
그래서일게다. 역사는 다종다양한 관념과 입장들이 자유롭게 다루어지고 소개되어야 하는 것이. 입장과 사관의 자유 경쟁. 그것이 때로는 다소 무규율적으로 보이고, 혼란으로 보일테지만, 장기적으로는 옳고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 곧 자유를 숭앙하고 예찬하는 근대사회의 덕목이요 에티켓이다.
나도 궁금했다. 정부관리들이 별탈없이 유지되던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왜 무리해서 바꾸려고 할까 의아했다.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아마 2년전 쯤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결정적이었던게 아닌가 싶다. 교재 전문 출판기업인 ‘교학사’에서 야심차게 일종의 대안 역사교과서를 발간했었다. 그런데 이 교과서가 왠일인지 심각한 반대와 논란에 부딪혔다. 여러 NGO 단체나 개인들이 교학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집단으로 항의전화를 하거나, 시위 등 실력행사를 하였고, 마침 책의 몇몇 오류들이 언론에 수차례 부각되면서, 이 교과서는 사실상 학교 현장에서 퇴출되었다. 이 사태는 아마도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대목이 결국 정부에서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 때 상황은 내게도 나름 충격이었다. 새로 출시된 교과서 한권 갖고 왜들 이러시나 싶었다. 기존의 역사서술 관점과 다른, 꽤 새로운 역사서술이 시도된 교과서가, 사람들의 일사분란한 보이콧과 비난 속에 오명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사실 이 역사교과서의 논조라는게, 전혀 별난 주장은 아니었다. 예전에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경제사학 전공 학자들, 속칭 ‘낙성대학파’라 불리던 소장파 지식인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역사적 관점이 교과서에 새로이 접목되었던 것이었다. 나는 참 좋아보였다.
아마 대학교 1학년생들이라면 교양필수로 이수하는게 ‘토론의 이해’ 같은 수업일게다. 그런 수업에서도 동성애 논쟁만큼이나 꼭 다루는 주제가, 식민지 시대의 경제발전 문제를 다루는, 이른바 중진자본주의, 혹은 식민지 근대화 논쟁이다. 대학교 1학년만 되어도 신나게 논쟁하고 연구하는 주제라는 말이다. 당장 나부터도 지루한 역사과목 중에서 그나마 가장 신나고 재미있던 연구주제가 바로 이 대목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고교생들 정도의 지력이라면 충분히 풍성하고 품격 높은 논의가 가능한 주제일거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어른들이 나쁜 교과서라며, 친일교과서라며 험악한 말들로 막아버렸다. 그들은 교학사 교과서 같은 새로운 역사책을 여러 경로를 통해 유통되지 못하게 막았고, 사실상 학교 현장에서 퇴출시키었다. 내 생각에 지금의 교과서 관련한 분쟁은, 이때의 사태가 빚어낸 안타까운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스트라이크’에 되갚아준 ‘카운터 스트라이크’랄까나.
한국 사람들은 공존을 참 싫어 한다. 까칠하고 튀어나온 부분은 어떻게든 억세게 갈아버려서 둥글둥글한 몽돌로 만들어버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사람들이다. 일사분란함을 너무 좋아한다. 예전에 내가 주로 만나고 다니던 분들은 하나같이 ‘똘레랑스’를 입에 달고 다니던 분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분들의 ‘관대함’이란 어디까지나 자기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의 관대함이었다. 그건 반 평 좁다란 고시원 방구석보다 협소한 관용이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해서 보였던, 우리 사회의 이름 높은 지식인들, 저명한 사회 운동가들의 어떤 강압적이고 비타협적인 불관용. 나는 그로 인해서 속이 상한 반대편의 이들이 지금의 또 다른 강압적 정책집행을 낳았다고 본다. 물론 조심스럽게.
마지막으로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 백서도 아니고, 국가의 일사분란한 표준 사관도 아니며, 옳은 역사에 관한 가이드북도 아니다. 교과서는 그냥 애들 가르칠 때 참조하는 보조자료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가 현재의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중차대한 문제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뉴스에서 매일 첫 면을 다룰 문제인가도 회의가 든다. 교과서말고는 인쇄물이 별로 없던 빈궁하던 시절에야 교과서 논조가 대단한 일이었겠지만, 요즘처럼 온갖 역사서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교과서의 권위는 예전과 비할 바가 못 된다.
‘역사’라는 장중한 단어에 가슴이 뛰는 나이든 어른들과는 달리, 실용적이고 젊은 학생들에게 이 문제는 그정도의 절박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예 틀린 논의는 아닌데, 뭔가 불편스럽게 좀 과장되어 있고,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을 들끓이는 어떤 기획의 내음이 느껴진다. 별 일 아니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까지 요즘 우리 한국인들을 들끓일 만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그러나 어쨌든 굳이 선택하라면, 유초등 교과서는 역시 예전처럼 국가가 주도해서 편찬해내고, 중등과정의 교과서는 다종다양한 지필철학과 역사서술 방법론이 시도 되었으면 좋겠다. 정부에서도 이번 국정교과서 발간이 어디까지나 한정적이고 때 되면 검인정 체제로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글쎄. 그냥 지금 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화를 시도하면 더 순탄하지 않을까. 어쨌든 약속했다면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그 약속이 지켜졌으면 한다. 다종다양한 사관과 역사적 입장들이 소개되는 풍성한 역사학계, 재미있고 볼 것 많은 교과서들이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종류의 교과서, 게다가 '국정'이라는게 우리나라 격에 안맞다 느끼는 이가 많다. 교학사 교과서 같은 새로운 역사서술의 시선도 우리 사회가 충분히 소화하고, 색안경을 끼지 않고 건조한 태도로 논의할 수 있는, 나는 우리나라 학교가 그 정도 수준은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바깥의 다혈질 시민들이 어깨에 힘을 조금만 빼주셨으면 좋겠다. 정작 학생들은 놀라울만치 차분한 편이다.
마지막! 한국인의 가슴, 그 뜨거움이 나는 항시 개운치가 않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스럽다. /
첫댓글 그래요.
이런 생각과 글과 말은 그리고 더군다나 마음은
누군가가 정해서 나오는게 아닌데....
이 소란도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우리의 역사가 되겠지요.^^
요즘에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역사책들 교과서보다 더 재미 있고 권위 있는 선생님들이 쓰신 책들 도서관에 쫙 꽂혀 있고 다들 그걸로 공부하는 시대인대...
안타까워요...
재희씨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최춘선 할아버지의 맨발은 통일의 개인적 열망에 대한 자기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도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세례요한도 메뚜기먹고 기인처럼 광야생활을 하셨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