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 헤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난관 앞에 서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데, 심각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시시때때로 가속도가 붙는 이 위기 앞에서
그 누구도 잠시라도 멈춰보자는 말을 하는 이가 없습니다.
아니,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영향력이 없고
실제 모든 힘의 중심에는 세계를 뒤흔드는 다국적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와
불합리함으로 뒤엉킨 국제질서와 국제정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탱할 배경으로서의 군사조직과 무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시점에서 Jeremy Rifkin의 위치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가 『생명권 정치학』을 내놓았을 때 환호했고,
그의 다른 책들도 눈에 띄는대로 읽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이름을
지난번 헌책방 나들이 때 다시 만났고,
내가 한창 관심을 쏟고 있는 ‘엔트로피’를 말한 것이라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골라 들었던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불편함이
저 깊은 곳 어디에선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엔트로피’를 말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엔트로피’라는 말은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지만
물리적 사실로서의 엔트로피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저 Rifkin 자신의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핵심은 인간이 자신의 본분을 벗어나
우주의 질서를 거스르며 살고 있고
그 때문에 인간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이라고 하는 생명세계가 위기로 내몰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읽은 그의 다른 책에서 한 내용과
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은 것이니
결국은 지루한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동어반복을 피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엔트로피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끌고 온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구체적 실천의 방법에 대한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단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말 말고는 다른 것이 없으니
끝까지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엔트로피라고 하는 물리적 사실 자체도 곳곳에서 왜곡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의 논리를 극대화시킬 의도로 보이는
69쪽의 “엔트로피 법칙은 모든 우주이론의 초석”이라는 말은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구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와 세계질서라고 하는 측면에서의 동력원의 흐름을 볼 때
엔트로피가 결코 모든 것의 기반일 수는 없다는 것이고,
결국 거칠고 근사치의 답 말고는 내놓지 못한
뉴턴 물리학의 ‘열역학 제2의 법칙’을 가지고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를 했지만,
요리 재료 자체가 요리의 재료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니
책을 다 읽고 남은 것이라고는
한 마디 말뿐인데,
“우리는 이 세상의 시중꾼”이라는 335쪽의 선언,
그 한 마디를 읽으려고 이 책을 다 뒤졌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억울하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다시 Rifkin의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것이고,
그저 또 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 볼 일이 남았으니
그렇게 가 볼 참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