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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거듭남) 확정 성화에 대한 사계 님의 글 비평 3
닉네임 추천 0 조회 118 22.06.06 19:48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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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6.06 21:14

    첫댓글 의의 주입을 꺼려하는 이유는 인간의 행위 즉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천주교나 감리교는 영의 상태 변화 즉, 의의 주입을 강조하기 때문에 알미니안주의가 뿌리가 되고, 우리 개혁주의는 법적정 칭의 즉, 의의 전가를 강조하기 때문에 전적 은혜인 것이죠

  • 작성자 22.06.07 08:14

    글쎄요. 의의 주입 자체를 꺼릴 필요는 없습니다. 의의 주입이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만 꺼리면 됩니다. 하지만 의의 주입도 구원의 큰 은혜입니다. 의의 전가를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의의 전가'만'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율법주의 진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칼빈 선생님이 중생의 도리를 얼마나 강조하셨는지 잊으시면 안 됩니다.

  • 22.06.07 08:20

    @닉네임 칼빈과 어거스틴은 의의 전가만 주장했고, 특히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의의 주입을 적대시했습니다.
    결국 의의 주입은 천국 상급은 인생의 공로를 주장하게 되지요.
    포도원주인이 일꾼들에게 그 삯을 공평하게 준 예화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칼빈과 어거스틴의 중생, 성화는 성령님에 의한 빛의 조명입니다.
    조명에 의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겁니다.

  • 작성자 22.06.07 08:42

    @카리타스 여기에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가톨릭 교회 탓에 '의의 주입'이라는 말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16세기가 아닙니다. 반대를 하시려면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가 잘 귀를 기울이셔야지, 의의 주입이라는 말을 썼다고 무작정 행위구원론자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까?

  • 22.06.07 10:14

    @닉네임 님이 의의 주입을 인간의 영에 주입된 것으로 주장하는 게 맞다면
    의의 주입이 되는 순간 신인협동으로 흘러갑니다. 자유의지가 생기게 되는 거고, 의의 유일성은 훼손되고 말지요.
    섭리론과 견인의 관점에서도 논리상 의의 주입은 맞지 않지요.

  • 작성자 22.06.07 10:51

    @카리타스 성화 자체를 부인하시는군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은혜도 있습니다. 다만 이 은혜를 칭의의 근거로 삼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은혜가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의의 주입이 없다고 하는 개혁신학자는 없습니다. 용어만 달리 쓸 뿐이지요.

  • 22.06.07 11:03

    @닉네임 성화를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중생은 성화로 이어지는데 완전 성화는 없는 것이지요.
    제가 문제제기하는 것은 의의 주입으로 신자가 주체적인 자유의지가 생기냐는 겁니다.
    님은 성화에 있어서 신인협동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2.06.07 11:11

    @카리타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3).

    그 신인협동은 바울부터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바울부터 정죄하고 오십시오.

  • 22.06.07 12:16

    @닉네임 결국 님은 천주교처럼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시는군요.

    서신서에 행위를 권면하는 구절들이 있는데 신자에게 성령의 조명과 말씀을 통한 권면으로 전진하게 하기위함이라 하였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바울도 그렇고
    우리 신자들 마음의 상태입니다.

  • 22.06.06 22:43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3MR/98

    위 링크 글에서 “결정성화(물론, 중생과 중복하는)는 우리에게 마음과 의지와 애정에 대한 기본적인 새로운 전환을 제공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욕구를 가진다.”는 존 프레임 목사님 말씀에서 “우리에게 마음과 의지와 애정에 대한 기본적인 새로운 전환을 제공”은 무엇을 뜻합니까? 칭의 전 회심이나 칭의 후 점진성화를 뜻합니까?

    이 문장을 ‘중생은 우리에게 마음과 의지와 애정에 대한 기본적인 새로운 전환을 제공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욕구를 가진다.’로 바꾸면, 안 됩니까?

  • 작성자 22.06.07 09:13

    저도 이 부분을 여러 번 봤는데,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프레임 목사님은 여기서 'reorientation'이라는 말을 쓰셨는데, 이 책 전체에서 'reorientation'이라는 말은 결정성화를 설명할 때 두 번 말고는 쓰신 적이 없습니다. 중생 부분을 읽어봐도 이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중생과 겹친다(overlap)는 말도 정확히 무슨 의미로 쓰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레임 목사님의 생각을 추적할 또 다른 근거는 "41. 중생과 회심"의 첫 대목인데, 여기서 '객관적, 주관적'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확정성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시지 않아, 프레임 목사님의 정확한 생각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원칙은 '좀더 분명한 구절을 가지고 해석을 하자'입니다. 구원 서정을 가장 분명히 밝히신 분이 레이몬드 목사님이시고, 저는 그래서 여태껏 레이몬드 목사님의 틀이 맞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현재 제 생각은, 레이몬드 목사님이 제시한 구원 서정이 옳다고 생각할 근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계 님과 같은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사계 님의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22.06.07 09:34

    그리고 제안을 하나 드리자면, 중생을 "초기 성화"라고 표현하시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실제로 토마스 보스턴 목사님이 중생을 설명할 때 쓰신 표현입니다.

    1. Initial sanctification, which is the implanting of the seeds of grace in the soul at first, and is the same with regeneration, 1 John 3:9 wherein the Spirit of Christ comes into the man's heart with his graces, and takes possession of him for God. The whole soul is cast into a new mould and frame, and the image of God is drawn anew upon it. <An Illustarion of the Doctrines of Christian Religion>

    번역본이 없어 영어로 쓴 점 죄송합니다.

  • 22.06.08 22:46

    @닉네임
    답글 늦어 죄송합니다. 주말에나 여유가 생길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2.06.08 22:55

    @카나리아 朴埰同 괜찮습니다. 아무 때고 여유 있을 때 쓰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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