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 칼럼: 먼저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치시절 수용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유대인 젊은 의사가 나치에 의해 붙들려 악명 높은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매일 매일 동료들이 선택되어 가스실에서 죽어나갔습니다. 모두들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바닥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곧 다가올 죽음을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씻거나 면도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 의사는 깨어진 유리병을 몰래 주어 매일 아침 깨끗하게 면도를 했습니다. 곧 죽을 사람인데 면도를 하는 그를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침마다 깨끗이 면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재소자들의 조례 후, 간수들은 사람들을 추려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스실로 갈 사람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의사를 나치가 망하는 그날까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매일 아침 깔끔하게 면도를 했기 때문에, 왠지 깔끔한 그를 간수들은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에게도 물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왜 매일 면도를 했느냐고. 그는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살려주실 것이라는, 이 시간이 반드시 지나 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희망의 고백으로 매일 아침 면도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이길 정도의 고난만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미리 포기하고 말아버려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끝나버린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이길 정도의 고난만 주십니다.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솔제니친”도 스탈린의 비판한 죄로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혔지만, 그 곳에서 『암병동』,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등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지 못할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어려움만 허락하십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십니까?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어려움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기 때문입니다. 진주조개처럼 말이지요. ‘고린도전서 10:13’을 표준새번역 버전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당한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0:13)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겨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시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일찍 포기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