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경(裴玄慶)은 처음 이름이 백옥삼(白玉衫)이며, 경주(慶州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사람이다. 담력이 남달리 뛰어나 군졸 출신으로 여러 차례 승진하여 대광(大匡)이 되었다.
태조가 청주(靑州) 사람인 현율(玄律)을 순군낭중(徇軍郞中)으로 임명하자, 배현경이 신숭겸과 함께,
“지난 날 임춘길(林春吉)이 순군리(徇軍吏)로 있으면서 모반을 꾀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죄를 자백하고 사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곧 그가 병권(兵權)을 장악하고 자신의 출신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현율을 순군낭중으로 임명하니, 신들은 저으기 의아스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반대하므로,
태조도 이 말을 옳게 여기고 병부낭중(兵部郞中)으로 바꾸어 임명하였다.
태조가 전국을 정벌하는 과정에 배현경이 크게 전공을 세웠다.
태조 19년(936)에 그가 위독하자, 태조가 그의 집으로 가서 손을 잡고, “아아! 운명이로다. 경의 자손을 내가 감히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태조가 문을 나서자 곧 배현경이 죽었으므로 어가(御駕)를 멈추고 나라의 비용으로 장사를 치르는 일을 돕게 한 뒤에 환궁하였다. 시호를 무열(武烈)이라 하였으며, 아들은 배은우(裴殷祐)이다.